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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의 작품읽기

정선규 시인
사랑 나무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10333 등록일: 2014-03-09

사랑 나무

 海月정선규

 

아니면 모든 시간이 재가 되어 허공에 흩어지기 직전의 불꽃일까?

사랑으로도, 그리움으로도 번질 수 없는 꺼질 듯 흔들리는 무력한 불꽃일까?

삶은 가고 오는 것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떠난 사람과 새로이 오는 사람, 그 사람 어깨 뒤에서 꽃 지고 잎 피는 계절이 바뀐다.

하늘과 땅 사이에 사는 사람과 나무들 사이로 바람이 분다.

가고 오는 것, 떠나고 만나는 그 사이로 마음이 천천히 회전한다. 윤회한다.

슬픔이 기쁨에게, 기쁨이 눈부심에게로, 눈부심이 다시 눈물로 이어지며 도는

이 세상 삶이란 얼마나 애틋하고 그리운 것이던가.

미주 너 없는 하루를 살아내는 일이란 게 정말이지.

주미가 없었다면, 주미 속에 미주 네가 없었다면 참아내기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김 하인 작가의 국화꽃 향기 그 두 번째 이야기에서 나오는 대목이다.

정말 이토록 그리움으로 키우며 밤하늘에 별을 올려다보며 반짝반짝 키워 목구멍으로 삼켜내는 것이 사랑일까?

1992년도일까? 아무튼, 내 어머니께서 대전 성모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나는 처음 이 세상에서 가장 안타까운 죽음과 얼굴을 마주했다. 당시 어머니 병실은 6층 있었는데 마침 아버지께서 어머니 옆을 지키시겠다 하여 마음 놓고 모처럼 마전 집에나 들러 필요한 옷가지와 수건 등 몇 가지 필요한 물건을 가지러 가는데 누군가 4층에서 엘리베이터를 세웠는데 수술실에서 하얀 천으로 덮여 침대에 실려 나오면서 침대를 부여잡은 채 따라가는 보호자들의 눈에서는 통곡과 눈물의 파장이 하나의 그래픽처럼 그려져 갔다. 죽은 사람이라고는 어릴 적 내 외할머니 입관하시던 날 굳은 모습밖에 전혀 보지 못한 아주 낯설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가슴이 짠했다. 나중에 집에 다녀와서 병실에서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어느 젊은 새댁이 첫 아이 낳으려고 병원에 왔건만 글쎄 의료진의 고뇌일까?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을까? 그것을 아는 사람은 우리 중에 아무도 없었다. 다만 안타까움만 그리움이 되어 무성한 숲을 이루었을 뿐이다. 하지만 아닌 것은 아니겠지. 어쩌다가 아이와 산모를 한꺼번에 다 잃게 된 것일까? 그것도 결혼해서 아주 평범하고도 소박하게 첫 아이를 얻고자 했던 결과가 두 사람을 포기하고 손 한번 제대로 써 보지 못한 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이별의 전주곡이 되었을까? 세상에 홀로 남겨진 저 외로운 남자의 상처는 어찌한단 말인가? 그렇게 이별 말고 다른 것은 없었더라는 말인가? 그래 안 되면 애를 살리던가. 산모를 살려내던가. 빠른 의료진의 결단과 응급처치가

불가피했을 것이거늘 어찌하여 생으로 자식 잃고 아내 잃어야만 한단 말이던가. 그래 아직도 대한민국이 의료후진국이란 말인가? 만약 내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어떻게 하든 아내를 살렸을 것이다. 아이야 다음에 다시 낳던지 얻지 못할지라도 아내의 존재는 다시 얻을 수 없는 돕는 배필이기 때문이다.

내 젊은 어느 날 내게 사랑은 너무 써. 하는 영화를 보았다. 왜 그녀에게만큼은 사랑이 달콤하지 못하고 썼을까. 글쎄 잡힐 듯 이루어진 듯하면서도 어디에서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같은 시련의 아픔 속에서 아픔만큼 성숙해지기 위한 속사람이었을 사랑의 대가였는지도 모른다.

그를 사랑하고 가까이하기엔 너무 멀어져만 가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성숙하리만큼 깃들여진 채 달려왔을 것이리라. 그렇게 운명은 잔인했다.

이제 결혼하고 알 콩 달 콩 살 날 만하니까. 사랑의 뿌리까지 뽑혔다.

비록 나는 당사자가 아니었지만 사람 사는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앞으로 오늘 하루만 살고 죽을 일도 아니요. 그렇다고 모래까지만 살 수 있는 시한부 인생은 아니겠기에 남의 일만은 아니었다. 과연 사람은 무엇으로 살까? 왜 살아야 할까? 끝없는 고뇌와 번민에 빠져 내 가슴은 자꾸만 아련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역시 그것뿐 나에게는 남의 일이었을 뿐 세월은 무정하게도 빠르게 흘러 잊고 살다가 마전 침례교회 시절 점심을 모두 마치고 과일 한 접시 즐기면서 결혼 이야기의 전개 상황 중에서 아이 이야기가 나오는 통에 나도 모르게 불현듯 그때 일과 맞닥뜨렸다. 다른 이야기는 분명하게 떠오르는 말이 없으나 꼭 한 가지 이야기가 있다. 만약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나는 절대 아이를 선택하기보다는 아내를 살리는 방향으로 일관했으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내 아내는 어떻게 했을까? 불을 보듯 뻔하다. 어쩌면 이것은 남자와 여자의 조화 즉 돕는 배필로서의 나누어진 역할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여자는 모성애를 통하여 사랑으로 자기실현을 할 것이고 남자는 아내를 통하여 사랑이라는 자기실현을 이룰 것인데 이것이 인류의 합일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남자와 여자의 합일은 이렇게 서로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자기를 사랑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목적이 따르는 삶이라 할 것이다.

김 하인 작가의 국화꽃 향기 그 두 번째 이야기를 보면 미주와 승우의 사랑에 버금가는 또 한 사람의 사랑을 엿볼 수 있다. 경동 모텔 주인 곽 주경이다. 아내와 함께 스쿠버다이버였던 그는 어느 해인가? 스쿠버 동호회에서 아내를 만났으며 그야말로 결혼해서도 여간해서 그런 스쿠버 자리에 빠지지 않는 열정적인 사람들이었는데 불행하게도 그들의 사랑의 한 귀퉁이에 악마가 끼었는지 그게 화근이 되었다. 그 어느 날엔가 그와 아내는 스쿠버 동호회에 함께 참여하였다. 바로 경동 모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가까운 바다였다. 그런데 그의 아내는 불행하게 거대한 시멘트 구조물인 삼발이 즉 불가사리같이 생긴 건데 방파제 이쪽저쪽에 쌓아서 거센 파도를 죽인다. 그녀는 혼자서 바다 밑에 잠긴 삼발이 구조물 그 안으로 들어갔다가 아마도 인공어초 역할을 하는 그 안쪽에 전복 같은 것이 주렁주렁 열렸으리라. 생각했었던 모양인지 문제는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다른 회원들이 아무도 못 봤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대형 삼발이로 이어진 곳은 보통 1km나 수백 미터를 땅과 경계인 인접 바다에 산봉우리 높이로 얕은 바다 위에 쌓아놓은 곳이다. 바다 밑을 얼기설기 메운 그 시멘트 발 사이로 사람은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있는데 대신 순간의 방심으로 사고가 일어난다. 사방으로 네댓 개의 틈 같은 구멍이 뚫렸는데 한길을 택해 가면 막다른 시멘트벽이 나오고, 또 다른 틈으로 들어가 2, 30m 나아가다 보면 막다른 시멘트가 나오고 거대한 삼발이를 적재해 놓은 바다 밑은 까딱 잘못하면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가 되는 것이다.

보통 등에 메고 들어가는 스쿠버 장비인 공기통은 2, 30분 바다 밑에서 숨 쉴 수 있도록

해준다. 이리저리 10분 정도 해저를 탐색하는 데 소비했던 그녀는 삼발이 속으로 들어가 해산물을 채집하는 데 5분에서 10분 소요를 예상으로 나머지 공기의 양으로 손쉽게 수면까지 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방파제 미로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산소는 떨어져 가면서 결국, 불행한 사태를 맞이했던 것이리라. 심히 유감스럽게도 아내를 잃고 만다. 그 후 그는 아내를 잊지 못하는 애틋한 사랑 때문일까? 모텔 앞바다 바위섬 뿌리인 암반의 기슭 수심 12m쯤 물살의 흐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교묘한 작은 협곡 그 사이에 단단하게 고정된 유리 집을 가지고 있었다.

유리 집은 사각 진통유리로 된 형태의 서랍 크기 정도였고 옆면 상단부에 우체통처럼 길쭉한 구멍이 나 있었고 두께는 두껍고 유리 상자 머리 부위에는 조혜수라는 아크릴 글씨가 붙여져 있고 세로로 혜수네 집이란 푸른 글씨가 있었다.

유리 집 속에는 정말 곽 주경이 말한 그대로 코팅된 가족사진과 갓난아기일 때부터 지금까지 자란 아이들 사진들이 사오십 장은 족히 될 만한 분량으로 들어 있었다.

마치 경북 경주시 양 북면 봉길리 뭍에서 바다 쪽으로 한 200m 떨어진 곳에 있는 신라왕의 수중릉 바위 가운데 못처럼 파인 그 바다 묘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나라 병사들까지 축출시킨 후 삼국을 통일한 문무대왕처럼 말이다.

그리고 대호와 채 은 이는 바닷속에 제 엄마가 산다고 해놓으니까 아이들은 제 엄마가 하늘도 산도 아닌 바로 옆에 사니까 철썩이는 이 넓은 바다가 전부 다 엄마의 품 같은지 아이들은 밝고 명랑하게 쑥쑥 잘 자라주더라는 것이다. 물론 그에게도 적잖은 위로가 되었다.

미주와 승우의 사랑 못지않게 정말 애틋하다. 미주와 승우는 대학 시절 대학연합 모임인 CD S 선후배로 만나서 승우의 짝사랑은 시작되었고 끝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처럼 미주가 모임을 탈퇴하고 시나리오 쓰는데 2년간 몰두해서 쓰지만, 충무로 어디에서도 빛을 보지 못하고 어렵게 살아가면서 영화 한방 터뜨리기 위해 몰두한다. 그들은 이렇게 헤어졌다가 영화감독과 MB C 한밤의 팝 세계 P. D로 만나 결혼한다. 승우보다 2살이 연상인 미주는 서른넷 승우는 서른둘 하지만 삶은 그렇게 녹록하지만은 않았다. 그녀의 임신과 함께 위암 3기의 위기는 뜻하지 않게 정란의 권유에 마지못해 찾아가 찍은 복부 X레이 사진 속에서 찾아온다. 임신의 기쁨도 채 가라앉기도 전에 불행이 닥친다. 끝내 미주는 산부인과 의사인 정란에게 승우에게 이 사실을 비밀에 부쳐줄 것을 부탁하고 자신을 버리고 아이를 선택한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수술과 항암치료를 모두 거부하며 많은 번뇌와 번민으로 시달리며 잠 못 이루다가 점점 뿌리 깊어가는 통증의 줄기가 온몸을 타고 흩어져 뻗어 내리는 고통 속에서 오직 단 하나의 어린 생명 즉 미주 자신과 승우의 사랑의 뿌리를 놓지 못하여 고통이 더해질 때마다 뒤늦게 알고 폐교까지 같이 내려온 승우가 미주의 친구인 산부인과 의사 허 정란으로부터 익힌 링 겔을 맞으며 잠 이루고 말기 위암으로 치닫는 통증에 시달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10개월을 버티고 살다가 드디어 그렇게 원하던 딸 주미를 낳는다. 처음에는 환자의 상태를 고려하여 자연 분산으로 가지만 결국, 실패하여 아이와 엄마를 다 잃을까 싶은 두려운 마음에 할 수 없이 제왕절개를 하는데 피가 멎지를 않는다. 이렇게 미주는 마지막 순간 간호사가 안겨주는 주미를 안고 숨을 거둔다. 그녀의 일생이 다하기 전 이 미주는 혼자 남겨질 승우와 아이를 걱정하며 매우 가슴 아파한다.

남자 혼자서 어떻게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낯선 여자에게 뺨을 얻어맞고 우는 모습이 떠오르고 머리카락을 쥐어뜯겨 비명을 지르는 소리

더러운 양말을 신고 머리도 빗지 않은 초라한 모습과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서 열리지 않는 대문 앞에서 쪼그리고 우는 모습에 10대에 가출하여 불량소녀가 된다. 몸과 마음을 마구 굴릴 것이고 술과 담배에 찌들 것이고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주미를 자신의 자식처럼 솔직하게 키우면서 아내와 엄마의 자리를 메워줄 수 있는 사람은 친구인 산부인과 의사 허 정란임을 생각하게 된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예전부터 대학연합 모임 인 CD S 에서 알았으며 특히 정란은 주미를 자신의 손으로 자식처럼 받아냈다.

그래서 미주는 죽기 전에 이들에게 선물을 남긴다. 손수 물레를 돌려가며 정성 들여 만든 컵이다.

승우 것. 주미 것. 정란 것을 가마에서 구워 꺼내보지도 못하고 병원으로 실려가 주미를 끝으로 세상을 떠난다. 또한, 승우에게도 정란과의 재혼하라는 유언을 남기지만 승우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자신의 아버지가 필리핀영사로 있으면서 한국대사관 대사의 딸이었던 서영은의 그 가슴 시린 짝사랑을 못 잊어 바다를 건너 찾아온 영은 까지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오직 미주만을 사랑하다 결국, 영은 다시 바다 건너 필리핀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렇게 승우를 사랑하고도 고백 한 번 해보지도 못한 여자 정란은 부산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떠날 준비를 한다.

항상 나무처럼 그 자리에 서서 그녀에게 느꼈었던 사랑의 향기 국화꽃 향기를 맡으며 자연 속에서 아내를 만나 이야기하고 사랑했던 남자. 이 세상에 남자 혼자 애를 키우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며 오직 오리온 성좌를 지키며 별탕을 끓어놓고 승우와 주미를 기다리겠다며 돌아오지 못할 먼 여정에 잠들었다. 오늘도 주미는 참 행복하겠다. 저 어두운 밤하늘에 오리온 별 집에서는 엄마가 주미와 아빠를 기다리고 아빠는 땅에서 함께 살고. 이날을 위해 오직 죽기를 위해 살아가는 남자 그의 이름 승우. 벗겨지는 양파처럼 가슴만 아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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