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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의 작품읽기

정선규 시인
자전거 끄는 남자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12190 등록일: 2010-10-16
자전거 끄는 남자
가끔은 아는 분들과 산책길에서
가을 아래 그윽한 가을 향기를 마시며
중후한 남자들만의 대화를 나눌 때가 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바스락 이는 낙엽이 없어
가을 햇살이 말리는 언어가 아직은 구성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쉬움을 달래면서 투박한 운동화 닳아가는
밑바닥 소리에 귀 기울이며 갑니다
저는 늘 걸어 다니는 것이 습관이 되어
먼 거리이든 가까운 거리이든 무조건 걷고 봅니다
하지만 게 중에는 꼭 자전거를 타고 나오시는 분이 있지요
서로 깊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전거는 끌고 사람은 걸으며
갑니다
그런데 여기에 꼭 한 사람 이 사람은 한 번도 자전거를 타고
나온 적도 없고 타는 것을 본 사람도 없습니다
같이 걸으며 대화를 나누면 좋으련만 어떻게 된 사람인지
남이 끌고 가는 자전거를 낚아채서는 끌고 갑니다
그것도 무엇이 바쁜지 보이지 않은 정도로 빠르게 말입니다
하루는 이상하다 싶었지요
백일이면 백일 일 년이면 일 년을 보아왔지만
그 사람이 자전거를 끄는 것은 봤어도 타고 가는 것은
전혀 본 사람이 없다 싶어 옆 사람에게
"이형 참 저 사람은 이상해 자전거를 타지 않고 늘 끌고만 가"
라고 한마디 했습니다
그러자 이형은 저 앞에 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타는 것이 자전거이지 끄는 게 자전거야 차라리 끌려면
포장마차나 끌지그래"
그는 빙긋 웃으면서
"형님 내가 자전거는 잘 타는데 타기만 하면 떨어지니
탈 수가 있어야지요. 알아서 들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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