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없는 육체의 향기
海月정선규
요즘 왜 내 일상은 아이러니하다. 분명히 나 아닌 또 다른 매우 낯선 가죽옷을 지어 입었으리만큼 생활의 리듬이 떨어져 나오고 있다. 굳이 꼬집어서 말한다면 현실과 꿈속이다.
현실과 꿈속에서 나도 모르게 헤맨다. 왠지 비가 올 것만 같은 우울한 날씨만 되면 선뜻 떠오른다. 비를 맞으며 미친놈처럼 멍하게 아무 생각도 없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생각의 뇌사상태에 빠져 꿈같은 현실 속에서 하염없이 걷고 또 걸어가는 것이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으며 아무도 발견할 수 없는 산속 깊이 말려 들어가는 것이다. 몸이 내 몸이 아니랄지. 영혼이 내 영혼이 아니랄지. 맹종인지 순종인지 그냥 맹목적이다. 마치 로봇처럼 누군가에 의해 몸은 움직이지만, 생각 없는 영을 받았는가?
아주 멀쩡하게 멍하게 몽유병 환자처럼 자신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으며 무엇을 하는지 전혀 모른다. 쇠 깎는 선반을 보고도 멍하게 손을 밀어 넣고 때로는 자신이 다친 것도 아픈 것도 모른다. 영혼의 불감증에 시달린다. 세상에 영혼 없는 육체도 있을까? 아니 어쩌면 어느 순간부터 다른 사람의 육체를 빌려 입었는가? 하지만 전혀 낯설지 않아 그만 현실에 안주해버린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얼핏얼핏 계단을 오르고 내려올 때마다 이상하게 계단을 보지 못한다고 할까. 하나의 계단이 아찔아찔 두 개의 계단이 하나로 겹쳐 보인다고 할까. 얼마 전에 인애가 한방병원 갔다가 두 개의 계단을 하나처럼 발을 내딛다가 그만 앞으로 굴러떨어졌다.
마침 아무도 없었기에 망정이지 누가 보면 대낮부터 술 취한 주정뱅이 정도로 보아 넘겼을 것이다. 다기가 삐 끈 겹 질러지기는 했지만 요행일까. 다행일까. 큰 외상은 없었다. 그날 아침이 참 이상했다. 어제 첫날 인애가 한방병원 들러 허리 X레이 사진 찍고 전기장판 깔아놓은 것일까? 아주 따끈따끈한 침대 위에 누워 송골송골 이마에 땀이 나도록 푹 침을 맞고 부항을 뜨고 간호사의 말에 따라 3층 물리치료실로 올라갔다. 좌우지간 시원하고 개운하게 물오르는 찜질을 하고 난쟁이의 쏘아 올린 공처럼 톡톡 튀어 올라 감질거리는 전기치료 잘 받고 매우 홀가분한 몸과 마음으로 병원을 나섰다. 다음 날 허리 통증이 심한지라 또 인애가 한방병원을 찾아갔다. 그리고 여느 때와 똑같이 2층에서 침을 맞고 부항을 뜨고 3층 물리치료실로 올라갔다. 아니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며 꿈일까? 생시일까? 분명히 어제 그 시각까지 물리치료실이었던 곳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 자리를 보니 무슨 정형외과인지 이름은 보이지 않은 채 현관문에 대문짝만한 정형외과의 글씨가 한눈에 들어오고 안을 보니 가운데에 책상 하나를 놓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둘러앉아 있고 환자 한 사람이 항생제를 맞고 있었다. 순간 나는 눈이 번쩍하고 돌았다. “어! 이상하다. 분명히 3층은 물리치료실인데.” 아무리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이쪽저쪽을 다 돌아다녀 봤지만, 이상하게 단 하루 사이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물리치료실, 버뮤다 삼각지역인가? 나는 정신없이 2층으로 내려와 간호사한테 다시 한 번 물었다.
“3층이 물리치료실 맞지요?” “네, 3층으로 가세요.” 한다. 참 이상하다. 이상하다. 다시 3층으로 올랐더니 역시 정형외과만 있고 물리 치료실은 귀신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생각하다 못한 나는 “그래 먼저 머리부터 디밀고 보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에 서 있던 남자가 내 손에서 물리치료 뭐 쪽지라고 해야 하나. 뭐라고 해야 하나. 얼른 빼앗아 가며 “저 안으로 들어가세요.” 한다. 막상 들어가니 어제 내가 들어왔던 물리치료실 분위기가 난다. 하지만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어떻게 이렇게 하루 동안 변했을까? 어제는 내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분위기만 상기 되어 떠오르는 것이다. 거참! 이상도 하지. 이게 무슨 일일까? 내가 알기에는 이 한 건물 안에 인애가 한방병원뿐인 것으로 들어서 알고 있는데 어떻게 한방병원에서 정형외과까지 있으며 물리치료실을 같이 쓰는가? 나는 왜 진작 몰랐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꿈속에서 아득하게 멀어지는 현실 같았다. 그런데 이틀 후에 다시 인애가 한방병원 물리치료실을 가보니 얼리리 또 바뀌었다. 아니 하루 오만 번의 생각으로 이사하는가보다 싶었다. 정형외과는 무슨 놈의 정형외과, 아주 보기 좋게 크게 인애가 한방병원 물리치료실하고 글씨가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내 정신적인 착란을 보는 듯했다. 그런가 하면 영주공공도서관을 나오면서 삼봉병원 가야지 하는 마음에 나오는데 넋 나간 사람처럼 내가 지금 어디로 가는지 아무 생각 없이 걷기만 한다.
꼭 내 육체를 지배하는 다른 영혼이 잠들어 있다는 기분이다. 육체와 영혼의 잘못된 만남의 깊은 후유증 같기도 하고 내 영혼을 도둑맞은 기분이다. 혹시 영혼이 육체를 가지고 장난치는 것은 아닐까? 내가 다른 영혼을 받았는가?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정말 정신적 착란만 화려해진다. 때로는 내가 매우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먼지의 원자들이 둥둥 떠다니며 내 귓전에 윙윙 벌레 울음소리 내고 정신은 멍하여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해도 도대체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도 못하겠다. 내 머릿속이 빙빙 돌아가며 어지럽다. 세상이 단 한 번에 휙휙 돌아나간다. 때로는 내가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싶어 쉬기도 하면서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정신이 맑아지겠지 싶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보기도 하고 자고 나면 괜찮겠지 달라져 있겠지. 아니 달라질 거야.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때로는 한 일주일만 푹 쉬면서 밤이고 낮이고 잠만 자는 것이 내 소원이다. 아침 땡, 점심 땡, 저녁 땡, 그렇게 아무것도 먹지도 않고 잠에만 취해 있고 싶다. 아니 어쩌면 마취에서 깨어나기 싫은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 방 사람들이 자주 들락날락 바뀌면서 신경이 많이 예리하게 섰다. 힘들고 짜증만 나고 혼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이게 사는 것인가? 사람은 왜 살아야 하는가? 단풍잎은 왜 빨갛게 타오르는 것인가? 하루가 천 일 같은 좋은 날은 내 생에 언제 오려 하는가? 참자, 참자, 참아야지. 꾹꾹 짓누르면 마음이 우울하다. 뭐 좋은 일이 있어야 살맛이 나지. 그저 되씹고 씹는다. 언젠가 자인 병원에 갔을 때에도 길을 헤맸었다. 분명히 어제 X레이 검사 할 때 2층 영상촬영실에서 찍었던 기억에 간호사가 “어딘지 아시지요.” 하고 물어도 “예, 나도 알아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단순에 2층으로 뛰어오른다.
그런데 이게 아닌데 2층 전체를 헤매도 X레이실은 없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만 해도 전혀 알 수가 없다. 내가 X레이실이라고 알고 들어갔던 방에는 다른 간호사들이 있었다. “여기가 X레이 검사실 아니냐고 물어보고 세상에 이런 청천 병력이 또 어디 있더란 말이냐. 피 검사 하고 소변 검사한단다. 나보고 소변 받아 왔으면 거기에 놓고 가란다. 나는 어이가 없이 간호사들한테 물었다. “그럼 X레이 검사실은 어딘데요?” 이제는 간호사들 쪽에서 어이없다는 듯이 내 얼굴을 빠끔히 올려다본다. 간호사가 내 손에 들고 있던 쪽지를 빼앗아 가더니 대충 눈으로 가볍게 훑어보더니 “아저씨 1층이잖아요. 여기 보세요. X레이 검사실 1층 쓰여 있네요.” 면박 준다. 참 안 웃자니 참담하고 웃자니 바보가 되는 느낌이다. 사람이 미쳐도 웃음이 나올까? 허허실실 아무 이유도 없이 뜬구름 잡듯 나올까? 왜 이럴까? 마치 내 안의 기름이 다하여 가고 있어 더는 아무것도 밝힐 수 없는 밑바닥만 긁는 밑바닥 정신은 아닐는지. 나도 나를 모른다.
내가 왜 이렇게 망가지는 것인지 다만 현실과 꿈속에서 멀어져가는 꿈만 같다. 현실 아니면 꿈이고 꿈 아니면 현실이려니 하고 그냥 생긴 대로 살아갈까? 반의적, 반전, 반의어, 비슷한 말, 반대말, 이것이 무엇일까?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 되며 엎치락뒤치락
지지고 볶으며 대조를 이루는 삶에서 회복의 변환을 도와 살리는 문법이 아닌가? 때의 변화기를 생성해야 한다. 이제 임자가 있으니 내 몸도 생명도 내 것이 아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에스더의 최고의 긍정의 믿음을 다하여 보는 삶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