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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
세월의 편지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10051 등록일: 2013-09-02

세월의 편지

 海月정선규

 

푸르게, 푸르게 물이 빠지던 여름은 이제 9월의 초가을로 접어들고 있다. 오늘 아침에 보고 저녁때 이르면 한 키나 더 소복소복 녹음이 짙푸르게 부풀어 오르며 더위를 상기시켜 주었던 여름. 이제 그의 다이어트 시절이 되었으니 짙푸르던 녹음도 소록소록 녹아 들어가는 바람으로 가을이라 할 것이다. 마치 여름 내내 사랑의 편지를 써 놓고 붙이지도 못한 채 가버리는 사랑처럼 하지만 떨어지는 갈잎을 편지 삼아 애틋하게 편지에 바람을 붙여 보낼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어느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가을 편지를 받아 읽을 것이다. 폭살, 폭살 입가의 주름이 생기도록 여름이 남기고 간 편지를 읽으며 감쪽같은 사연에 밤하늘의 반달을 바라보며 중얼거릴 것이다. “감쪽같은 사랑이 초승달이 되어 떴구나.” 어이하여 감쪽같아라. 달집 반을 어둠 속에 감추어 반 만하게 나온 것을 보니 임신한 듯 배가 불러라. 임신하였구나?” 참여하는 행복을 달게 받으리라. 그래 그때 누나도 그랬었지. 벌써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충남 논산에 있는 한국 타폴린 입사를 했는데 세월이 얼마나 빨리 날아가던지 금방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면서 겨울이 되어 새해를 맞이하면서 월급날이었다. 그동안에 누나한테 얻어먹은 것도 있을 겸 새해 기분이나 내보자. 하는 마음에 누나한테 넌지시 물어보았다. “누나 뭐 사 줄까? 뭐 먹고 싶은 것 없어?” 누나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는지 1월 그 추운 정초에 먹을 수도 없는 포도를 사달라는 것이 아닌가. 참 황당했다. 그런데 옆 사람은 도대체 누구를 거들고 싶은 마음이 있든지. 한 술 더 민망하게 거들었다. “누나 신 것이 먹고 싶은가 보네. 여자들은 임신했을 때 신 것이 먹고 싶다고 하던데.” 가슴이 순간적으로 쿵 하고 내려앉았다.

어쨌든 다른 것은 생각하지도 싫고 다만 포도에 집착했다. “누나 정신 나갔어. 이 추운 겨울에 포도가 어디 있어. 읍내 시장에 가도 안 팔아.” 아무 말도 없었다. 나도 더는 뭐라고 대꾸할 여지도 없었다. 생전 여자를 사귀어 본 적이 없는지라 어르신들 말씀대로 역시 여자는 상상도 못 한 아니 알기도 무서운 요물이었다. 시간은 정말 무디게 흐르면서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왕성하게 커지는 가운데 점점 힘들어져 갔다. 차라리 단둘이 있을 때 기회를 통해서 귓뜸 하든지 세상 처음 이렇게 억울할 때가 다 있나. 그래, 그래도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니까. 그렇다 하고 어디 가서 겨울에 없는 포도를 사오지 똥 싸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차근차근 매듭을 풀자 포도 사다 주면 뭔가 하는 말이 있겠지.” 그 추운 날 옷도 제대로 입을 정신도 없이 가게를 향해 뛰었다.

아주머니 봉봉 하나만 빨리 주세요.” 나는 누나 앞에 봉봉을 내놓았다. 그러자 보는 둥 마는 둥 쳐다보지도 않고 사왔네.” 태연하게 말한다. 누나를 대하면 대할수록 도저히 모를 그 미로 속으로 하염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누구한테 이야기 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너도나도 다 알고 있으니 어디 도움 청할만한 데도 없고 의논할 사람도 없어. , 그렇다고 누나를 데려다 의도가 무엇이냐. 고문하면서 따질 수도 없으니 매우 난감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옆 건물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동생이 누나하고 나를 불렀다. 자식이 지금 어떤 상황인데 전화하려면 혼자 갈 것이지 도움도 안 되는 것이 왜 부르는지. 참 눈치가 없다. 아무튼, 공중전화가 있는 가로 등불 아래까지 같이 좀 가달라는 것이 아닌가. , 나도 어지간히 인복도 없다. 그 와중에 바람이라도 쐴 겸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길을 걸었다.

그런데 막상 가서 보니까. 전화는 동생이 하는 것이 아니라 누나가 했다. 얼핏 옆에서 들으니 남자의 목소리가 났다.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는 내 알 바가 아니었다. 왜 그랬을까? 오직 내 마음은 이게 무슨 경우인가? 이게 무슨 난리인가? 핵심을 어디에 놓고 있을까? 도대체 어떻게 누나 마음을 정확하게 읽을 수가 있을까?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누나가 전화를 끊더니 이번에는 동생이 집으로 전화한다고 나섰다. 지금 생각하면 평생 내가 겪을 여자를 그때 다 겪은 듯하다. 슬금슬금 내 옆으로 와서 선다. 그리고 하는 말이 가족 이야기를 하고 나서는 내게 물었다. “통화 다 들었지.” “밋밋한 대화였다. 누가 남의 남자 이야기 듣자고 했든가? 하는데 누나 말은 그 사람은 그냥 아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알고 있으라는 말이다.

나는 완전히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지금 무슨 플레이를 하자는 것인지 어렵게 말하지 말고 쉽게 말하면 될 것을 빙빙 꽈배기처럼 잡고 틀고 틀어만 대고 있으니 나는 모르쇠로 일관할 수밖에 누구 머리를 아주 깨뜨리려고 작정을 했는가? 누나의 의도를 모르겠다. 의도가 뭘까? 했더니 쉽게 말해서 그 남자와는 아무 관계도 아니다. 그러니 우리 사귀자 하면 될 것을. 뭘 그렇게 사흘 길을 놔두고 먼 40일의 광야 길을 돌았든지 그래서 나한테 자신의 가족에 사돈의 팔촌까지 다 이야기하고 앨범까지 다 보여주었던 것인데. 이 여자 경험이 전혀 없는 내가 그렇게 어려운 일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냥 그러면 그런가 보다 하는 것이지. 그러니까 포도가 먹고 싶다고 한 것은 검은 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누나를 정말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알고 싶어서 그랬다. 요물, 요물, 세상에 이런 요물이 또 어디 있을까? 매우 보수주의적이었던 나에게 지금은 몰라도 그 당시에는 전혀 씨알도 안 먹히는 일이었다.

어디 여자가 남자보다 연상이란 말인가?

이제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마치 둘이서 소꿉장난을 한듯하기도 하면서 참, 나 같은 사람을 뭐가 그렇게 좋다고 물, 불 가리지 않고 덤볐든지 말이야 말이지 누나가 아깝다. 능청스럽게도 나는 그때를 가리켜 그 겨울의 편지하고 중얼거리면서 피 미소를 쪼갠다. “이 사람아, 누나는 내 임자가 아니네. 따로 있네. 역사를 왜곡하지 마시게.” 감 쪽 감의 얼굴 아니 감 한 켠 이라. 밤하늘의 달은 제 모습을 반으로 쪼개어 한쪽은 구름 아래 감추고 남은 한쪽만 빛이 되어 있었다. “그래 그래서 내가 속았다. 뭐 순진한 게 죄더냐?” 시간이 가면 다 나올 법한 반달 이놈아! 이제 어디 가서 감하나 갔다 쪽 하고 쪼개어 반반씩 나누어 놓지 마시고 다 내어 오시게나. 세상에 비밀은 없다네. 다만 시간 좀 벌어보겠다는 것이지. 감 쪽은 없네.” 이러다가는 자다가도 웃겠다. 조금 있으면 플라타너스 잎이 떨어지겠다. 그 밑에서 햇살이 잔뜩 발린 플라타너스 잎에 김밥이나 싸 볼까. 아니 정말이지. 그럴 싸 하다. 밥 한 숟갈 떠서 아직 다 마르지 않은 플라타너스 잎에 올려놓으면 감는 거야. 햇살이 알아서 다 할 것이고 바삭바삭 입안을 감돌아 감미로운 가을의 선율을 타고 흐르는 음악을 들으며 낭만의 시간을 보내는 게 뭐 그리 큰일이라고. 아니면 사랑하는 그녀에게 플라타너스 잎 편지를 써서 주는 거야. 그리고 소녀의 소년이 되어 만나는 거야. 가을 편지를 가을 소녀에게 주는 거야. 이게 최고의 선물이 아니겠어.” 이렇게 가을이 쌓이면 일곱 색깔 무지갯빛 너울이 될 거야.”

바람이 불면 너울지며 나부끼는 아름다움을 채색하리라. 그 깃발 아래 빨간색 지붕 아래 분식집에서는 가을 김밥이 잘 무르익어 갈 것이다. 해마다 가을이면 나는 그렇게 김밥을 싸고 싶었다. 햇살이 얼마나 기름진 것인지 아니 얼마나 지름 지게 하는 것인지 알고도 싶고 기름 한 섬 짜면서 섬유질 한 근이나 마셔볼까. 나이만 먹었지. 아직도 똥, 오줌도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어린아이 같은 나를 좋게 말한다면 순수성에 콩깍지 씌운 것이고 좀 아니다 싶어 말한다면 미진아, 같아진다. ! 이제 정말 가을을 갖는 낭만의 꿈은 없을 것이다. 가을만 하여 덥지도 않으면서 춥지도 않은 채 선선한 바람에 거닐어가는 가을 그 지경 범위가 감쪽같이 일관적이다. 갈증 난 잎에 붉은 얼굴의 사절이라. 역시 가을은 짧기만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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