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천사
海月정선규
사람이 살아가는 것에서 살아가는 모양과 모습이 그 직업과 더불어 많고도 더 많지만, 빛도 없는 곳에서 이름도 없는 삶으로 살아지는 사람이 많다. 물론 그것은 운명일 수도 있고 자신의 삶에서 도전과 긍정의 산물일 수도 있다. 6, 70년대만 하더라도 백의의 천사라면 다 알아주고 여자아이들에게는 선망의 꿈이기도 했던 간호사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누가 백의의천사 라고 알아주거나 칭찬하고 손 잡아주며 애잔하게 고맙고 고맙다고 인사 한마디에 지나가는 말이라도 배려하고 격려해주는 시대는 이제는 영원히 우리의 곁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간호사라고 하면 그저 병원에서 일하는 아주 그럭저럭 평범하고도 별다를 것이 없는 현실이 되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글쎄 그렇게 추앙받아 하얀천사로까지 군림했던 그들의 시대는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의료의 질이 떨어진 탓일까? 아니면 시대의 흐름 속으로 마냥 흡수되어 가고 마는 것일까? 요즘에는 남녀의 평등시대가 되면서 여자가 아닌 남자도 간호사직에 머물고 있다. 그렇다고 뭔가 확실히 달라지거나 기대할 것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조용히 아니 어쩌면 막연히 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또한 그 시대적 배경과 오늘날의 시대적배경의 다름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박정희 대통령시절 독일로 우리의 광부와 간호사들이 얼마나 많이 해외로 나갔던가? 그것도 돈을 벌기 위해서 이뿐만 아니라 나이팅게일의 삶이 전해지면서 모든 간호사의 입지를 백의의천사로 굳히기에 아주 적당한 요건과 환경을 마련해두고 있었다. 특히 1, 2차 세계대전속에서 간호사 인력의 역할이 컸다 할 수 있겠다. 이제는 그조차도 시대의 자막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직업적인 사람들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간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하여 살아가는 사람들로 여겨지고 있다. 글쎄 그렇다고 해서 뭐 특별하고 헌신적이고 큰 간호사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도 아니고 보면 더욱 더 그렇다. 그렇다고 전쟁터에서 살이 터지고 피흘리는 병사들을 돌보고 생명을 구하는 현실도 아니고 참 그야말로 지금은 다 지난 추억의 이야기가 되었다. 좀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 자질이 의심스럽거나 부족한 사람도 있다. 그래서, 그래도, 그리할지라도 어떻게든 더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세상 풍경이 된지도 이미 오래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그녀들의 삶은 고즈넉하고 더 아름다워 심히 보기 좋기에도 보암직한 좋은 생각들을 많이 주기도 한다. 그렇다. 이제는 그들이 전사가 된 것이다. 어쨋거나 저쨋거나 IMF가 터지고 남편을 대신하여 직업전선으로 밀려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니까 먹고 살기 위한 수단으로 가면 갈수록 전락하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참 그래도 지금도 빛에 가려서 이름 없이 헌신적인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그녀들도 많다. 내 생명을 다루지 못하고는 남의 생명을 다룰 수 없는 그녀들만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런 일을 신으로부터 받았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사명감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환자들의 마음을 잘 알아서 보듬어주고 치료해주며 함께 있어주어야 할 그녀들이기에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 낮에는 병원에서 환자들과 부대끼고 집에 돌아가서는 아이들에 남편에게까지 부대끼며 혹은 그 가족들과 부대끼며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다보면 백의의천사는 점점 퇴색되어 갈 수 밖에 없다. 남을 나처럼 섬긴다는 것은 정말 신이 주신 능력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세상은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말하자면 자신의 꿈이나 소신 그리고 자질을 통하여 인재 배출이라는 이 사회의 커다란 이치를 버리고 단순히 먹어야 살고 살아야 일하고 일해야 또 먹고 그래야 살아지고 그야말로 또 하나의 원불교를 보는 듯하다. 돌고돌아 무엇이 될 것인지 또는 무엇을 하려는지도 모른 채 남이 도는 돌고 그러다가 습관이라는 것이 생겨 버리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야만 하는 고통과 비운으로 애써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 사회는 점점 사랑이 식어가면서 하나의 이기주의적인 나만을 실현하는 도구로 전락할지도 모르겠다. 꿈은 잃고 사명감도 퇴색된 채 살아남기 힘든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의 고착화가 가져다주는 압박 그리고 강박관념 속에서 무의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 억눌린 사슬에서 벗어나서 자유 하기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한 껏 어려운 시대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밟고 올라가야만 하고 남을 이겨야만 내가 잘 살 수 있는 사회적 구조 속에서는 당연히 사랑은 식어갈 수밖에 없으며 사명감과 헌신과 봉사정신을 발휘하여 자신의 업무를 다 하고자 하는 길은 더 막힐 것이다. 사실 모든 것은 자질이 문제가 아니라 정신이다. 자신의 삶을 규모 있게 꾸미고자 한다면 어느 누가라 해도 자질을 뛰어넘어 반드시 자신의 일을 다해나갈 것이다. 가정에서는 엄마와 아내로서 누나와 동생으로서 딸로서 하얀 천사로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추어나가기는 그리 쉽지 않다. 가정을 섬기고 직장을 섬기며 부대끼지 않을 수는 없다. 어떻게 보면 그녀들만의 안식처나 삶은 없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가 아주 오래된 고정관념으로 그녀들을 바라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환자들에게 시달리는 그 고충이야말로 정말 그녀들의 삶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알지 못하는 무지의 지경이 되리라. 사람인지라 수십 명, 수백 명의 환자들을 그것도 정신적으로 다 돌보기에는 정말 역부족일 수밖에 없으며 지치고 피곤하여 그저 쉬고 싶다는 생각을 만들어주어 오히려 의료서비스의 질을 끌어내리는 결과를 자초할 수도 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그중에서도 간호사와 환자사이에서 발생하는 의무와 사명은 어느 한쪽에서만 잘해서도 지켜서도 안 되고 서로 지켜주며 존중하는 관계로의 발전이 있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대한다는 것 그것도 정신의학적의 분야에서 일한다는 것은 글쎄 내가 알기에는 정말 보통의 마음가짐으로는 감히 감당할 수 없는 또 일반 간호사들과는 다른 열악한 환경의 차이는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요즘 세상은 사람이 미쳐가고 있다. 스스로 미치는 것인지 세상이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인지 사람이 세상에서 미치게 하는 것인지 정말 심각한 세대에 살고 있다. 말하자면 그 만큼 정신보건이라는 것이 더욱 절실해지고 필요로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뭔가를 하지 않으면 답답하고 미칠 것만 같아서 숨이 콱콱 막히고 비가 오면 미친 사람처럼 비를 맞으며 뛰어다니고 싶어지는가 하면 하염없이 어느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다가 죽고 싶다거나 마음의 상처를 잊기 위해서 밤낮없이 미친 듯이 술을 마시고 여자와 가까이하며 즐기고 정신적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마약을 하고 쾌락을 쫓으며 심지어 피흘리기에 빠르다. 그래서 요즘 사회적인 큰 문제로 떠오르는 것이 묻지마 범죄가 아니겠는가 ? 말이다. 사람은 서로의 삶이라는 것이 있고 가는 길이 다르고 생각이 달라서 다양한 특성 속에서 많이 다투고 부대끼며 살아간다. 뭔가를 늘 시한 포탄처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들의 사냥감처럼 쫓기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절대 말이 없거나 하지 않거나 느닷없이 뭔가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들 그 속에 정신건강의학이 있고 의사와 간호사가 존재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모든 것은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단순히 정신의학적 지식과 간호사의 자질만 있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환자 역시 환자의 근성을 버리고 내놓아야만 할 것이다. 힘들고 지치고 고단하고 고달프게 일하느라 쓰러질 것만 같아도 때로는 자신의 건강 몸조차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자질을 뛰어넘어 환자를 먼저 생각하고 달려오는 그녀들이 있다. 모두가 잘 되는 사회 서로가 하나 되는 사회 환자와 간호사 사이에 봉사와 사랑의 치유가 있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필시 환자의 의무를 하는데 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