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주세요.
海月정선규
작년 12월 크리스마스가 며칠 지난 추운 어느 날 오후의 일이다.
마침 근처에 볼일이 있어 대전 동구 삼성 동 삼성타운 앞을 지나가고 있을 때 바람이 얼마나 차던지 눈앞에 눈물이 엉겨 붙어 고드름이 눈병처럼 생길 것 같이 뻗어오는 불길한 느낌으로 언짢았다. 평소에 추위를 많이 타기 성격인지라 살포시 두 손을 뻘쯤히 호주머니에 꽂고 걸어가면서 양파가 부럽다 싶더니 그리움이 되었다. 겹겹이 테를 치고 있는 껍질을 생각하며 번데기가 되어서라도 꼭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해는 점점 짧아져서 몽당연필 한 자루처럼 해 그림자를 짧고 배불뜨개 어색한 남자를 연상시켜 주고 있었다. 걸어가다 보니 어느새 보기에도 소박하고 단아하면서 아담하게 보기 좋은 크기만 한 붕어빵을 굽는 포장마차가 서 있었는데 홀연히 주인아주머니인 듯한 한 여인의 신발에 불이 붙어 타고 있는데 아니 옷까지도 탈 지경인데 아는지 모르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들고 나온 또 다른 슬리퍼를 놓고 불을 끄느라 정신이 없었다. 긴장한 듯 잔뜩 발에 힘주고 죽어라. 불 밟더니 불이 좀 가라앉았다. 싶을 때 지그시 발에 힘을 가해 땅에 비벼댔다. 다행히 모든 상황은 이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끝나는가 싶어나는 삶에서 억센 의지가 돋보이는 아주머니를 바라보며 “아자! 대한민국 아줌마는 살아 있다.” 찬사를 더하며 대한민국 아줌마의 기질은 세계적인 명성의 뿔이다. 중얼중얼 구슬 서 말은 세는듯했다. 고단하고 힘든 삶에서 그래도 희망을 노래하며 붕어빵 굽는 열정은 모르긴 몰라도 천사의 머리에 두 뿔을 반올림해 올린 모습처럼 영광의 면류관을 쓴 듯 반짝반짝 색채가 나며 돋보였다. 이 행복이 오래가면 얼마나 좋을까 마는 다음 순간 다시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간 아주머니는 어떻게 된 일인지 이번에도 불에 타고 있는 다른 것을 들고 나와 신에 붙들린 사람처럼 다리를 들었다 놓다. 반복하다, 담뱃불 비벼 끄듯 질근질근 발로 밟아 끄고는 다시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갔다.순간 주위는 다시 숨죽인 듯 조용해지는가 싶은 마음으로 나는 다시 가던 길을 재촉하는데 순간 다급한 여자의 목소리가 달팽이관으로 예리하게 찢어져 들어왔다. “도와주세요. 도와 주세요” 급기야 여자의 흐느낌이 배어 있는 음파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나는 얼른 몸을 돌려 포장마차 안으로 쏜살같이 뛰어들어 가보니 하얀 말 통에 이미 불은 붙어 있었고 아주머니는 진압하고자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아주머니의 손에서 인정사정 두지 않고 얼른 빼앗아 밖으로 가지고 나왔고 뒤따라 나온 아주머니는 당황하여 연방 “어떡해. 어떡해. 아저씨 119에 신고해주세요. 아니 제가 119에 신고할까요?” 횡설수설 울먹이며 타는 말 통에 물을 부었으나 오히려 불길은 더 거세게 저항을 해왔다. 그때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꼬마가 자신의 목에 걸린 손 전화를 만지작거리더니 “여보세요. 119이지요. 아저씨 여기가 어디냐면요. 삼성 동 삼성타운 앞인데요. 지금 불이 나서 막 타고 있어요. 빨리 오세요.” 신고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나저나 온통 휘발유 냄새가 진동하여 코를 찌르고 휘발유통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다급해진 나는 주위에 물 묻혀 불 덮을 헝겊이나 천을 찾아보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어떻게든 끄고자 다시 물을 끼얹었으나 역시 휘발유는 물보다 센 것일까? 불은 더 거센 파도를 치며 춤으로 사위어 올랐다. 아주머니는 신들린 사람처럼 주체할 수 없이 울며불며 뭐가 뭔지 분간 없는 몸부림만 더해져 여전히 끄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주위에 사람들은 모여들었고 다들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아주머니는 누군가 언제인가? 파 심어 먹었는지 고추 심어 먹었는지 모르지만, 뒤에 있는 스티로폼 상자를 발견하고는 막무가내로 가져와 안에 있던 흙을 불에 던졌다. 그러나 말 통에는 휘발유가 3분의 1 정도 채워져 있었고 불은 위에서 아래로 타 내려가는 상태인지라 흙은 다 아래로 떨어지거나 말 통 밖으로 떨어지니 전혀 효과가 없었다. 어떤 아주머니는 더 두었다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소리 질렀다. “아저씨 그러지 말고 얼른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 가서 소화기 빌려다 끄세요.”하지만, 아파트 안에는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었으니 당연히 관리사무소가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는지 알 턱이 없으니 괜히 내가 헤매는 동안 불은 더 커지겠다 싶기도 하고 그동안 누가 번지는 것을 막아야 하는데 대신해 줄 사람이 없었다.
우선 불 주위를 둘러보니 조금만 더 바람이 세게 분다면 포장마차 천막으로 번지겠다. 싶으면서 널브러진 종이와 휴지 등으로 옮겨 붙겠다. 싶은 판단이 서는지라 소방차가 올 때까지 번지는 것만 막아보자 해서 탈 만한 것들은 모두 불 옆에서 다 멀리 치웠다. 이제 다 탈 때까지 기다리던가. 소방차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겠다 싶은 마음으로 모든 사람의 접근을 차단하고 지켜볼 뿐이었다. 마침 옆을 지나가던 아저씨가 "불 끄려고 그래요. 예" 하고는 덮으면 불이 꺼진다며 널빤지를 가지고 와 덮으려는 것을 말렸다. “아저씨 치우세요. 나무를 불 위에 올려놓으면 불이 더 탑니다.” 시간이 왜 그렇게 길던지 마음이 아득했다. 누군가 아파트 안으로 달려 들어가는 듯하더니 아파트 안에서 몇몇 아주머니들이 나왔는데 동 대전감리교회 김 향미 권사님도 있었는데 다들 놀란 표정이었다. 나는 다시 흙 있는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는데 바로 이 순간 사이렌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고막을 찌르더니 양쪽에서 소방차가 들이닥쳤다. 한쪽은 대전 동부소방서였고 다른 한쪽은 대전 중부소방서였다. 구급차 한 대와 소방차가 벌떼처럼 몰려오더니 소방관이 부리나케 차에서 소화기를 가지고 내려 급히 불을 진압하고 드디어 상황은 종료되었으나 포장마차 주인아주머니는 어떡하느냐고 울부짖으며 까라지고 말았다. 이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동 대전감리교회 김향미 권사님이 껴안으며 토닥토닥 등을 두들겨 주면서 위로하며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119에 신고해준 영특한 꼬마에게 참, 고마웠고 불 끄겠다고 널빤지 가지고 오신 아저씨와 주인아주머니와 스티로폼 흙 가져왔던 아저씨도 고맙고 아저씨 빨리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가서 소화기를 빌려 오라고 소리 지르던 아주머니께도 고맙다. 그때 우리 모두는 기쁘게 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