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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의 작품읽기

정선규 시인
산다는 것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9468 등록일: 2013-05-25

산다는 것

海月 정선규

 

흔히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놓고 말하기를 전혀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첫인사를 나누곤 한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외모에서 풍기는 서정에 불과할 뿐이다. 내가 처음 입에 술을 댄 것은 이미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마당에서 콩 타작하시는 아버지께서 선규야! 막걸리 한 잔 사와라.” 심부름시키면 덜렁덜렁 한 손에는 주전자를 꿰차고 또 다른 한 손으로는 오백 원짜리 한 장 들고 뭐가 그렇게 좋은지 부릉부릉 차 소리를 내면서 가게로 간다. 내 지금 기억으로는 오백 원어치면 딱 한 주전자였는데 그걸 들고 가면서 구수한 막걸리 냄새에 못 이겨 한 모금 한 모금 마셨다. 아버지는 주전자를 흔들어보시고는 왜 이렇게 조금이야. 막걸릿값이 또 올랐나?” 하시면서 양재기에 따라 젖은 목을 측이셨고 어느 때에는 밭에 나간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께서 돈 천 원에 주전자를 들려 가게로 보내면 일단 동네 가게에서나 혹은 술집을 들러 천 원어치 한가득 막걸리를 채워서는 밭에 다 갈 때까지 한 모금 두 모금 살짝 곶감 빼먹듯이 감질나게도 잘 빼먹었다. 그러던 것이 나중에는 큰 집에 할아버지 제사를 드리러 가서 음복한답시고 입에 술을 대기 시작했고 우리 작은 사촌 형과 죽이 척척 잘도 맞아서 훔쳐 먹었다. 심지어 술에 취해 아무도 몰래 사랑방에 기어들어가 자다가 제사 시간이 되어 온 가족이 기다리고 불러도 대답이 없어 끝내 가족들끼리 제사를 다 지내놓은 다음 부스스 눈을 떠 일어나 안방으로 건너가면 이미 모든 상황은 끝이 났고 다들 어디 있었느냐? 어디 갔다 왔느냐 난리가 났었다. 그러던 것이 경주에서 보일러 시공 기술을 배우겠다며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한국설비라는 조금 한 가게에 들어갔다. 마침 그런데 그때가 봄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참 일거리는 떨어지지 않고 늘 있었고 직원은 나 혼자뿐이었다. 기름보일러를 가게에서 꺼내어 둘이 들어서 차에 싣고 또 들고 계단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힘들었다. 너무 무거워서 때로는 그대로 손을 놓고 싶은 적도 여러 번이었다. 아무튼, 경상도 말은 워낙 빠르고 억양이 억세어 쉽게 잘 알아듣기 쉽지 않은데다가 사투리는 말도 못하게 나를 괴롭혔다. 한 번은 보일러를 놓을 때 일이었다. 사장은 보일러를 앉히기 위해 힘껏 보일러를 한껏 치켜들고는 나를 향하여 말하기를 정군아! 밑에다 공가라. 공가라.” 하는데 도대체 공 가라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있어야 움직이지 도통 알아먹지를 못하니 , .” 하고 서 있는 것이 다반사이다 보니 참 사장은 얼마나 속이 터지고 답답했겠는가? 사장은 사장대로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들었던 보일러를 내려놓고 자기가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긴 막대기를 지렛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그때야 나는 공가라 해서 공이 어디 굴러가는가 잡아야지 하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다발로 욕을 들었는데 참 지금 내가 생각해도 사장 말대로 시근인지 치근인지 그랬다. 나중에 집에 가서 매형한테 물어보니 시근은 돌대가리이고 치근 이빨이란다. 얼마나 무안하던지. 아무튼, 그렇게 한 석 달을 공구 이름 하나도 모르는데다가 사투리에 말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위인이 일한다고 따라다니다 보니 술은 낮이고 밤이고 일할 때마다 물 마시 듯 들이켜야 했고 심지어 지금은 어느 지역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집주인이 바로 집 앞에 있는 저수지에서 붕어를 잡아왔다며 회를 떠 가지고 왔는데 처음에는 도저히 비린내가 나서 못 먹겠다. 뒤로 빠졌는데 맛있다고, 맛있다고, 한 번 먹어보라고 해서 먹다 보니 나중에는 나도 모르게 입에 익어버렸다. 술에 취해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집에 들어가면 누나나 매형은 술 조금만 마시고 빨리 가서 자라면서도 꼭 말 꼬리를 붙이곤 했다. "처남! 그래도 집은 제대로 찾아왔네!" 이것이 술과의 인연의 단초였다. 경주를 떠나 서울로 또 다시 대전으로 다니면서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꼭 남자들은 술 한 잔이 있어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내가 잘 했네. 네가 잘했네. 나는 그게 진심이 아니었다는 둥 속에 있는 말을 터놓는 것은 좋은데 거기에 대한 후유증이 이제는 알코올에 밀려 폭력으로 이어졌다. 다 잘 해보자고 오해를 풀자는 뜻에서 술 한 잔에 화해하고자 시작한 일이 점점 삼천포로 빠져 흉기를 찾고 죽이네! 살리네! 온갖 협박과 욕설이 난무했다. 그나마 불행인지 다행인지 몰라도 나는 말리는 사람이 되어 정말 칼을 휘두를까 봐 한가운데 비집고 들어가 말리곤 했다. 역시 후배들과의 술자리에서도 잠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평소에 일상생활 속에서 만나면 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왜 굳이 꼭 술을 놓고 이야기하는지 처음에는 그랬구나. 그래 다 이해한다. 하다가 술이 건 하게 들어가면 상황은 엉뚱하게 흘러간다. 알코올에 미쳤는지 이성을 잃었는지 물, 불을 가리지 못하고 흥분해서 칼을 주머니에서 꺼내든지 주방에 가서 찾아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마음 한 번 편하게 같이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일까? 아는 매형은 늘 이런 말을 했다. “선규야! 너는 어떻게 마시나 안 마시나 똑같으냐?” 글쎄 그 덕분일까? 지금도 술을 마시더라고 긴장을 풀지 않는다. 그렇다면 담배는 어떨까? 초등학교 3학년 때이던가? 아버지는 꼭 돈이 있을 때 한 상자 사다가 다락방에 올려다 놓고 피시곤 했는데 텔레비전을 보니 자기 역할에 매우 충실하고도 남은 직한 할아버지가 곰방대에 담배를 넣고는 피우는 장면을 보니 얼마나 똑 부러지게 멋이 있으면서도 이상하게 내 마음마저 왜 그렇게 매우 흡족해 오는 것인지 그에 반해 그날 나는 아버지 몰래 다락방에서 담배를 꺼내어 피는데 곰방대는 없고 그렇다고 사올 수도 없고 치밀어 오르는 고민 끝에 우리 집과 아래 집 사이에 매화 꽃나무이던가? 그것 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를 잘라 나무 가운데를 칼로 파내어 파이프처럼 만들어놓고 의자에 떡 하니 두 발을 올려놓고 뻑뻑 담배를 피웠는데 지금 안 사실이지만 그게 바로 엉터리 담배 연기만 머금었다가 훅하고 내뱉는 자태란다. 그렇게 하다가 이제는 재미없다고 느낀 어느 날 더는 흥미가 없어 그만두었다. 그리고 얼마나 세월이 흘렀을까? 역시 서울 성동구 마장동 형제흑판에 근무할 때 이 사람 저 사람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가끔 나한테 담배 피워야지. 한 번 피어 봐.” 하거나 혹은 너 군대 갔다 왔어. 안 갔다 왔어.” 하며 빈정거리더니만 하루는 동료가 부른다. 그래서 아무 의심 없이 갔더니 나를 끌고 다짜고짜 창고로 들어가더니 안에서 문을 잠그고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주면서 안 피우면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지지 않고 능구렁이 새끼처럼 능글능글 웃으며 단호하게 안 피워.” 하고 말하자 자꾸 피워. 피워.” 하면서 담배를 입에 들이댄다. 바로 그때 누군가 밖에서 소리쳤다. “왜 그래. 응 왜 그래.” 공장장이었다. 그렇게 겨우 위기를 넘겼는데 산 넘어 산 강 건너 강이라고 이런 이번에는 또 친구가 나섰다. 팔팔 라이트를 가지고 와서는 매우 맛있게 피우면서 ! 이거 피워봐. 다른 담배하고는 달라서 박하향기 난다.” 이 말에 그놈의 호기심이 무엇인지 반짝하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하나 줘 봐.” 빼앗아서 신 나게 연기를 입에 모금아, 훅하고 내뱉으니 속이 다 후련했다. 자 이제부터 시작이다. 바로 슈퍼로 달려갔다. 팔팔 라이트를 한 갑사서 공장으로 올라가 피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평일에는 상관이 없는 데 언제부터인가 토요일만 되면 사람들이 바로 퇴근하지 않고 기숙사에서 고스톱을 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우리의 잠자리를 그들에게 내어주고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바로 이때 짠 천사가 나타났으니 일명 장성길 형이었다. 나와 기숙사 동료를 불렀다. 그리고 아이러니 한 말을 했다. “내가 돈 줄 테니까. 너희 극장 가서 심야영화 보고 와라.” 하더니 돈을 주고는 고스톱 판에 어울리지도 않고 바로 퇴근했다. 나는 궁금했다. 그래서 그 이유를 집요하게 물어보니까. , 정말로 나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이야기를 했다. “너희 싸울까 봐. 그래 그러니까 내 말대로 여기에서 저 사람들 다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빨리 가라. 마라. 싸울 것 같으니까. 그래서 내가 그걸 막으려고 그러는 거야. 너희 싸우지 말라고 심야극장 몇 시까지인지 몰라도 저녁 먹고 밤늦게 극장에 가서 심야 영화 한 편 보고 오면 저 사람들 다 가고 없을 거야. 알았지.”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감탄하고 또 감탄해도 아깝지 않았다. 그 후 우리는 버릇처럼 토요일 밤이면 저녁을 먹고 식당에서 바로 극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것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일과를 마치고 나면 피곤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극장에 가는 것보다 기숙사에서 자는 것을 선호하게 되기도 하고 극장에 가봐야 졸려서 영화 보기보다는 피곤해서 곯아떨어져 자는 일이 일쑤였다. 얼마나 짜증이 나고 힘들던지 그날도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새벽 2시쯤에 들어가니 이런 그때까지도 고스톱을 치고 있기에 우리 피곤해서 지금 자야 하니까 빨리 가달라고 했더니 그 덩치 큰 강 기사가 나를 한 손으로 불끈 들더니 주방으로 들어가 물감을 끓이는 큰 솥 위에 내 팽개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발로 밟는데 더는 못 참겠다 싶어 눈에 들어오는 빈 소주병을 잡으려 하는 순간 한기사가 뛰어들어와 말렸고 그 후에는 기숙사에서 노름하는 일이 없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 얼굴도 보지 않으려고 점심시간에는 일부러 먼 테이블을 찾아 앉곤 했다. 그러면서도 왜 그렇게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하고 마음 아프기도 하고 보통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할수만 있다면 풀고 싶었다. 그러던 참에 이건 웬 횡재란 말인가? 또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그날이 왔다. 강기사가 나를 부르더니 오늘 퇴근하고 소주 한 잔 하잖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맞장구 쳤고 드디어 내 삶의 가치관을 뒤바꾸어놓는 사건이 생기고 말았으니 참 눈물이 난다. 일을 마치고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약속한 대로 식당으로 강 기사를 따라갔다. 김치찌개에 소주 한 병을 시켜놓고 강 기사가 먼저 말했다. “미안하다.” 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더 죄송합니다. 강 기사님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사과가 오고 가고 두수없이 말이 오고 가다가 평소에 내가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강 기사님! 강 기사님은 어떻게 술도 안 하시면서 담배도 안 하세요.” 강 기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매우 가난해서 다른 사람들처럼 기분 안 좋다고 술 마시고. 피우고 싶다고 담배 한 개비 마음대로 피우지 못하면서 살았다. 가난한 청년이 맨몸으로 결혼하고 아이들 태어나고 가진 것은 없고 허리를 졸라매고 또 졸라매느라 술, 담배, 생각하지도 못하고 몹시 가난하게 살았다. 너 담배 안 피우지. 피우지 마. 그 담뱃값 술값 장난 아니다. 몸에도 안 좋고 경제적으로도 힘든 것이 술, 담배야 알았지.” 나는 비로소 그때 정말 사람다운 또 한 사람을 안 것이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술과 담배는 내 삶에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 피울 수도 있고 안 필 수도 있는 신경 쓸 필요 없이 그냥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살면 되는 것이었다. 다만 자신이 알아서 할 일었으니 말이다. 그 후부터 담배를 내려놓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후 내게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술만 마시면 담배를 피우는 버릇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마저도 끊은 지가 꽤 오래되었다. 산다는 것, 삶의 요소가 무엇일까? 삶의 바탕이 무엇일까? 자꾸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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