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일곱창
海月 정선규
가끔은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고 싶고 뭔가 색다른 것을 찾아 즐기고 싶은 때가 있다. 그래서 흔히 우리는 농담으로 이런 말을 한다. “야! 음식도 매일 똑같은 것만 먹으면 질려.” 그런데 갑자기 해용이 형님이 부른다. “부르셨어요.” 하면서 담배 한 갑이 왔다갔다하는 테이블을 바라보며 앉았다. 형님은 “오늘도 어디가?” 물으신다. 내 원래 일정대로 하면 오후에 영주공공도서관에 가야 하는데 시치미를 뚝 떼고 “아니요. 제가 가진 어디를 가요. 갈 데도 없는데요.” 형님은 화투놀이를 하며 “그냥 여기 있어. 방에 들어가서 뭐해 옆에 앉아 있어.” 음! 딱 켕긴다. 분명히 조금 있다가 어디를 갈 생각이다. 나는 한동안 화투놀이 구경을 하다 더는 졸려서 못 있겠다 싶어 방으로 들어가 있는데 짠 형님이 옷을 갈아입은 채 방문을 열고 서서는 “뭐해.” 한다. 그러면 그렇지. 하는 마음으로 나는 옷을 얼른 갈아입고 형님을 따라나섰다. 사박사박 햇살을 밟으며 간 곳은 경북 영주에서 50년 장사를 했다는 성 일곱 창이었다. 들어서자마자 벌써 생고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진하형님과 진후 쌍둥이 형님들은 언제 왔는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찌그러지는 눈살을 살짝 미소 위에 숨기고 넌지시 메뉴판을 보았다. 소간. 천엽. 소골이 한 세트로 쓰여 있고 그 밑에 육회와 돼지고기 메뉴가 적혀 있었다. 아니 벌써 진하형님과 진후형님이 말을 꺼냈다. “형님 시켜놨어요. 소간에 천엽 그리고 소골 한 세트로 시켜놨어요.” 나는 놀라운 표정으로 말했다. “형님 여기가 어디야 영주에 소간 파는 식당이 없다더니 언제 이런 곳을 알아냈데요.” 해용이 형님은 젓가락질하며 “아! 이 사람아. 여기 알아 둔 것이 한 달이 넘었어. 영주가 소고기로 유명하여서 어딘가에 반드시 소간 파는 곳이 있을 텐데. 있을 텐데. 이 앞으로 지나가다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니까 이 집이라고 알려주더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소 생간에 천엽과 소 생 골이 깨끗하고 단아하게 손질이 되어 올라왔다. 내가 먹지 않으려 하자 해용이 형님이 한마디 한다. “안 먹어. 그럼 왜 따라왔어.” 나는 할 말이 없어 그저 웃으며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예전에 소간을 먹겠다고. 사람 몸에 좋다고. 피로에 그만이라고. 다를 소 생간이 그렇게 먹고 싶었는지 시내까지 다섯 사람이 무리를 지어 나갔다가 영주에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도축작업을 하긴 하는데 예전처럼 소 생간을 추려오지 않고 내장까지 다 버린다고 했다. 그때 이리저리 물어보러 다니다가 해용이 형님이 어디에서 구했는지 까만 봉지에 몇 점 얻어와 그걸 먹겠다고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 소 생간을 여기에서 먹어도 되느냐며 덤으로 소고기 육개장까지 시켜 먹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 내 생전에 처음 소 생간을 몇 점 먹다 말았는데 왜 그렇게 속이 매스껍고 네 글 네 글 하고 뜰이던지 다시는 이제 먹고 싶지 않았는데 여기서 또 마주쳤다. 그렇다고 먹겠다고 같이 왔다가 “형님이나 잘 드시고 오시오” 하고 막무가내로 뛰쳐나올 수도 없고 참 그렇다면 어찌하랴! 먹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씹지도 못하고 입 안에 넣어 우물우물 굴리다가 간신히 꿀꺽 삼키고는 고추 하나 씹어 먹어 보고 당근 한 번 씹어가면서 어떻게, 어떻게 정면 돌파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소 생간은 줄지 않고 소 생 골에 천엽만 줄어들었다. 옆에 앉은 해용이 형님은 말씀하시느라 담배 피우시느라 별 요동이 없고 진후 형님은 소 생 골만 맛있다고 먹고 있었다. 다행히 우리 진하형님은 가리는 것 없이 소 생간이면 생간 소골이면 골로 천엽이면 천엽을 마구 먹어 치웠다. 그러면서 나한테 “많이 먹어 몸에 좋데. 안 먹고 뭐 하고 있어.” 한다. 나는 마지못해 소생간 한 점을 입에 물고 입안에서 이리저리 굴리며 누군가 다 먹을 때까지 시간을 끓었다. 그 사이에 고기는 거의 바닥이 나고 언제 시켰는지 육회 한 접시가 올라왔다. 그러자 진하 형님이 “사장님하고 부른다. “우리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공깃밥은 안 줘요.” 한다. 그러자 “우리는 낮 장사보다는 주로 손님들이 저녁에 몰려서 저녁 장사를 합니다. 그래서 밥은 아직 준비되지 못했습니다.” 다시 진하형님이 나섰다. “사장님 그러시지 마시고 밥 좀 어떻게 안 돼요.” 역시 안 된다는 대답뿐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내가 나섰다. “사장님! 우리 점심도 일부러 집에서 안 먹고 나왔는데 어떻게 밥 좀 주세요.” 역시 이번에도 사장은 냉담했다. 그러자 해용이 형님이 나무라신다. “고기 먹으면 됐지. 밥은 무슨 밥이야. 고기 먹어서 배부르잖아.” 나는 답답했다. “나는 형님 고기 배 따로 있고 또 밥 먹는 배 따로 있어요. 술을 먹어도 그렇고 꼭 밥은 필히 먹어야 해요.” 했다. 이게 전부인가 싶었는데 웬걸 달라는 밥은 안 시키고 육회만 더 시킨다. 형님들이 예천에서 내가 육회를 같이 먹었던지라 안 먹으려 해도 자꾸만 권했다. “선규야! 어서 먹어 많이 먹어. 너 육회는 먹을 줄 알잖아.” 비록 예천보다는 맛이 덜한 것 같았으나 먹을 만했다. 산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보다. 서로 먹기 위해 길 떠나고 집을 떠나 여행을 하면서 미식가가 다 되고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틈바구니를 만들어 토라지기도 했다가 다시 웃기도 하면서 그렇게, 그렇게 서로 읽고 알아가면서 잘 맞을 때 어울려 밥 한 끼같이 하는 정으로 살아가는 것. 그러면서 서로 닮은 것은 닮고 버릴 것은 버리는 재미로 하루하루를 채워가는 자연 속 서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도 한결 포근해진다. 내가 대전 있다가 영주 내려 온 지도 일 년이 다 되어 간다. 참 영주시라고 해서 그래도 크겠지 했는데 마치 전원도시라고나 할까. 영주, 영주, 영천은 많이 들어봤어도 영주 시는 내 처음 들었다. 사람 좋고 물 좋고 공기 좋고 사람의 마음을 서정적인 정서로 받아내는 묘한 힘이 깃들어 있다. 대전에 살다 경북 영주 시에 살다 보니 참 적응이 안 되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신호등이다. 대전은 대도시답게 여기저기 시민의 안전을 위해 신호등을 만들어 놓았는데 다른 곳은 안 그런데 꽃동산 로터리가 육 거리인데 세상에나 신호등이 없다. 항상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렸다가 가는 것이 습관이 되어 신호등도 없는 건널목 앞에서 신호를 기다린다고 멍청하게 서 있다가 “아참! 신호등이 없지.” 뒷북을 치곤 한다. 속으로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고 생각 없는 사람 같기도 하고 두루두루 재미있다. 병실 창문으로 내다보면 여름이고 겨울이고 지나가는 사람도 어쩌다 한 명뿐이었다. 그래서 더 신기한 곳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제2의 고향처럼 무르익어간다. 할 수만 있다면 이런 곳에서 글만 써 봤으면 하고 바란다. 오늘도 비가 내리려는지 하늘은 잔뜩 찌푸렸다. 이제는 영주하면 향기나는 선물이 된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소중한 선물을 내 평생 처음 받았다. 가지고 있던 성경책을 다 잃어버리고 더는 신의 문학, 신의 문법을 진행하지 못하겠다 싶을 때 짠 도깨비 방망이처럼 내 꿈과 소망을 안겨주었던 그 사람이 있고 마음 넓고 순수하면서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다 속사정이 있어 파란만장한 삶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언제나 일상이 곱고 아름다워 그들의 삶까지라도 봇물처럼 쓰게 하는 사람들이다. 그 언젠가 우리네 애틋한 삶이 드러나리라 믿는다. 그때까지 모두 모두 아무 일 없이 건강하게 아름다운 삶의 향기로 피어나길 바란다. 서로에게 서로의 꿈과 희망으로 앞으로 달려갈 향방이 되길 소원한다. 다들 잘 되어서 영주에서 삶의 기회를 잡고 살아갔으면 한다. 가끔 영주에서 기반 잡고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다들 아름다운 사랑도 이루어 향기나는 사람으로 남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