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경
海月 정선규
아니 벌써 그렇게 됐나?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경상북도 영주 시에 내려온 것이
작년 8월이었으니까. 거의 1년의 세월을 이곳에서 보내고 있다. 이곳에서 참으로 많은 사람을 만났고 또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새로운 인생을 알았다. 외출을 나와 거리를 홀로 걷는데 그때 불쑥 누군가 나를 잡는다. 뒤를 돌아보니 같은 환우이다. 내 평소에 실없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그의 말은 더 싱거웠다. 밑도 끝도 없이 지나가는 농담처럼 휙 던진다. “너는 참 부처님이야. 누가 뭐라 해도 싫은 소리 한마디 안 하고 마음이 너무 넓어.” 그의 말에 나는 씁쓰름한 미소를 보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다들 왜 그러는지 그들은 쉽게 나를 아주 마음 넓은 사람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때로는 이런 말에 괜히 부담스러워 정말 화를 내야 할 때 화를 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뇌에 자연스럽게 빠지곤 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어떻게 보면 남에게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못하고 당하고 마는 바보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스스로 놓고 이런 독백을 해야만 했다. 그래 그 누구든지 사람을 보는 관점은 다 자신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 잣대가 얼마든지 다를 수 있으며 말한 마디로 한 사람을 팔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는 엄청난 일상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의 보는 관점이 일관된 세상의 관점도 아니고 다만 다양한 가운데 단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글쎄 말이 스스로 위로하는 것이지 어쩌면 나 자신을 정당화 합리화함으로써 또 다른 잠재력의 발견으로 자신감을 얻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말하자면 나는 일상 속에서 늘 기도하듯 묵상으로 빠지곤 한다. 세상은 다양한데 굳이 나 하나의 중심적인 아집과 고집 그리고 독선으로 꼭 자신의 말이 진리처럼 여기는 마음의 병을 얻어놓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더불어 어우러져 한 지체의 구성으로 삶을 조화시키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을까? 에 생각이 미치면서 나는 배롱나무꽃이 배 롱 배 롱 피어 웃듯 “하하하” 꼭 어딘가 웃지 못해서 미친 사람처럼 웃고 만다. 그러면서 나도 나 자신이 왜 그럴까 하는 마음에 자신을 성찰하기로 한다. 왜 그들과 나는 다를까? 굳이 다르다면 무엇이 다를까? 생각하다 보니 딱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생각하고 쉽게 화를 내는 반면 나는 일단 내가 참는 데까지 참고자 노력한다. 사람이니까. 그래서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그렇지 나도 마음이 답답한데 나이 어린 너는 오죽이나 답답할까? 내 동생이니까. 내 여자이니까. 내 친구이니까. 혹시 알아 남에게 작은 것으로 베풀어 그 언젠가 이 보다 더 큰 것으로 되돌려 받을 줄 나중에 만약,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지고 자식을 낳고 키우면서 내 참는 것들이 후손들에게 더 큰 복으로 하늘이 내려줄지. 그렇다마다. 혼자 이렇게 북 치고 장구 치면서 어딘지 좀 모자란 사람처럼 미쳐간다. 이것을 나는 자신과의 싸움이라 부르기로 했다. 좀 장엄하게 말한다면 내 삶의 지경 즉 삶의 비전이요 그 향방인 것이다.
나는 늘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잘 되고 보자. 내가 잘 되어야 내 주변 사람들이 다 잘 될 수 있다. 왜 내가 그들을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들이나 나나 똑같이 도토리 키재기라도 하듯 고만고만한 삶이라서 누가 누구를 도와주고 함께할 수 없는 삶의 질량이지만 그래서 여기에서 누가 잘 되고 잘 나가는 것을 시기하고 질투하다가 불행하게도 다 같이 거꾸러져 죽는 비참한 삶을 살기보다는 게 중에 누군가 한 사람은 잘 되어서 고생해본 사람이 고생하는 사람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알아서 오죽이나 잘 챙기며 도와주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개구리가 올챙이 적 시절을 생각하지 못한다면 역효과 날 수도 있지 싶다. 그럴지라도 열에 하나는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겠지 하는 긍정의 꼴을 본다. 그래 내 삶의 지경은 첫째는 자아성철이고 둘째는 좀 이기적인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남보다 내가 잘 되어 내 고통 내 외로움 내 격동기를 남에게 되물림 하기 보다는 이왕 되 물림 하는 김에 더 좋은 것으로 그들에게 베풀어 도와줌으로써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다는 것이다. 이게 내 야망이며 내 여자이고 내 가정이 되고 내 행복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나를 사랑하고 남을 사랑 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20년 전 코 찔 찔이 내 친구 진수가 대한민국 10대 기업에 입사를 하더니 이제는 아주 넝쿨째 굴러들어온 마누라를 얻어 토끼 새끼 같은 자식을 낳고 산다. 그러면 그런 내 친구를 바라보는 나는 뭐가 될까? 그저 풋내기 글이나 쓰며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살아가는 나는 무엇인가? 말이다. 이 얼마나 귀가 막힌 노릇인가?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생각을 돌려보자. 나와 같은 사람 나와 똑같은 사람의 성정을 지닌 코찔찔이 내 친구도 잘 사는 것을 보면 “와! 그놈 정말! 대단한 놈이다.” 절로 감탄사가 나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역시 내 친구라서 자랑스럽고 역시 사람이 구나 사람이라서 다르구나. 사람은 정말 놀라운 존재이구나! 따라서 나도 그럴 수 있겠구나! 와! 나는 사람을 다시 봤다. 사람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 존재성을 가지고 있는지. 그렇다고 내가 사람을 연구하고 토론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마치 숨겨진 사람의 속성을 껍데기 속에서 꺼내는 그 기분 아니 밭에서 보화를 캐내어 남 몰래 혼자 감추어놓고 보는 재미에 들렸다고나 할까? 나도 내 자신이 이렇게 대단한 존재인줄은 전혀 몰랐다. 그리고 나 자신이 이렇게 사랑스럽고 고귀하며 영화롭다. 느껴지기도 생전 처음이다. 정말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올라와 있는 기분이다. 내 삶의 최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