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문학, 신의 문법 5 창세기 2장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세기 2장 11~12절)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음률이 들어가 노랫말처럼 살짝 꺾였다 모퉁이를 돌아가고 있는 듯한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토성의 테처럼 오로라 형상으로 덮인듯한 신비로운 땅의 이미지를 건네주고 있다 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하는 어감에서 마치 땅은 땅인데 정금으로 뒤덮인 하윌라 땅을 다리 건너듯 건너가는 듯한 하나의 가교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알짜배기 중 아주 알짜배기 노른자 같은 아주 진한 아름다운 땅의 향기처럼 코끝을 자극한다 그러면서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다고 일러줌으로써 온통 하윌라가 정금에 뒤덮인 채 베델리엄과 호마노가 그 땅을 침노한 듯한 환상을 낳는다 문학적인 상상으로 들여다본다면 지각의 퇴적층이라 부를 만한 흔적과 그 인상을 오롯이 섬의 한 각으로 떠올려 놓고 있다.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에 둘렸고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아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네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창세기 2장 13절~14절) 둘째, 셋째, 넷째 강의 형성과 특징으로 둘러싸인 세 개의 강이 갈라져 나가는 흐름을 일러주는 듯한 것이 생명의 지도 그 퇴적층으로 살아나는 것만 같다 하나의 비유를 들자면 둘째 강 기혼 셋째 강 힛데겔 넷째 강 유브라데를 섬세하게 짜내는 듯한 것에서 천지창조 위에 강으로 수놓았다고 할까 혹은 강으로 주름잡았다고 할까? 문학의 돋보기로 보면 여러 가지 은유를 살려낼 듯한 장면이다 세 개의 강이 얽힌 듯이 비켜가는 듯이 어딘지 모르게 유구하게 흐르는 도도함이 묻어나는 것만 같은 신비로운 맛이 있다 좀 더 다르게 표현한다면 강이라는 둘째 셋째 넷째의 세 형제가 이제야말로 제 밥벌이를 시작한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말하자면 함축적이고 압축된 표현을 풀어가는 절차로 거쳐 가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공부하면 좋을 듯하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장 15절~17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에덴동산으로 데려가 에덴동산에 두고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는데 이끌어 하는 어감에서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진다 그 사람에게 하나님은 아주 자연스럽게 다 가시고 얘야! 가자 인도하시는 듯한 자상함이 엿보인다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모든 것을 맡기시면서 노파심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 사람이 모른다고 생각에서일까 ? 하나님은 아마 그 사람과 가까우면서도 자상하고 사랑하고 아끼셨나 보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마음대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일러주셨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사람이 선악과를 먹기 전에는 선과 악의 선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선만 보이고 악을 숨겨져 있던 것일까? 동전의 앞면과 뒷면을 생각해보면 그것도 아닌듯하고 아무튼 뭔가 드러나지 않는 잠재된 의식이 무의식처럼 깔린 듯한 사람의 정서를 보는 듯하다 선악과 죽음의 대치를 종이 한 장으로 아주 절묘하게 표현한 기법이 돋보인다 꼭 장막을 벗기는 날 무엇인가가 드러날 듯한 신묘함으로 발라난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 2장 18절)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하나님이 사람을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셨으니 그렇다면 돕는 배필의 삶이라는 것은 남자의 아내로서 남편이 외롭지 않게 함께 살아가면서 독처하는 좋지 못한 일에서 벗어나게 도와주는 것이 아내의 역할일까? 즉 아내를 통하여 남편에게 부족한 삶 일부를 외롭지 않을 수 있게 얻는 것일까? 독자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함으로써 글이 살아 움직이고 독자의 마음속으로 파고들어 가 생태적인 활동을 하게 만든다 이렇게 해서 글의 밋밋함을 느낄 여유조차 주지 않고 지그시 눌러 말끔하게 씻어 털어낸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아담이 모든 육 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창세기 2장 19~20절)
비로소 세상에 모든 생물은 제 이름을 가지고 세상에 없었던 인류 최초의 고유명사가 탄생하는 가장 아름다운 첫 순간 눈이 부신다 사람이 살아 있는 생물을 이름으로 지적하여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여 문학의 바탕을 세우는 황홀한 순간이다 바로 이것이 인류의 첫 문학작품이라고 본다 아담이 생물들의 이름을 지는 순간 많은 단어가 만들어지고 언어가 만들어져 한 구절이 되고 한 단락이 되어 급기야 한 문장으로 깊이 뿌리내려 문학의 바탕으로 굳힌다.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창세기 2장 21절~22절) 이 구절에서 나는 병원을 떠올리며 수술실 풍경을 보는 듯하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지금 아담은 수술받기 위해 수술대에 올랐고 마취를 하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여자를 아담에게 이끌어 오시니 오늘날의 수술과 같지 않은가 다만 아담과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뿐이다 특히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라는 말에서 성형외과가 떠오른다 하나님은 의사요 아담은 환자이다 그리고 아담의 수술을 통하여 갈빗대 하나로 여자를 만드셨다 정말 예술이다 오늘날 의학의 발단 그 예술이다 의학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오늘 알았으며 의학을 통한 생명의 창조는 오늘날 유전공학의 기틀이 아니겠는가 싶다 그리고 모든 표현은 문학의 예술로서 승화하고 있다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엿은즉 여자라 칭라리라 하니라 (창세기 2장 23절) 아담이 말하기를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했으니 이는 아담의 뼈 중의 으뜸이요 살 중에서도 가장 소중하고 두고 보기에도 아까운 살이라 남자의 핵심이라 떨칠 수 없는 남자의 생명과 같은 여자에게 남자가 선취하는 사랑으로 온전히 실현하는 부부애가 빼어나게 들린다. 어쩌면 여자는 남자에게 아주 치명적인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랑은 아픈 것이리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아담과 그 아내 두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창세기 2장 24절~25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룬다는 바로 이것이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의 배경이 아닐까 한다 어감에서 남자는 여자를 한 몸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뼈 중의 뼈와 살 중의 살이라 함은 남자의 깊은 곳에 여가 매우 소중하게 잠재의식처럼 자리 잡고 있는 아름다운 성에 보화를 밖으로 끌어내야 할 신비로운 빛으로 가미된다 그래서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배경을 낳았는지도 모르겠다 부부는 서로 부끄러움 없이 아무 색채도 없는 아름다움으로 바라보며 둘이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자기를 사랑으로 실현하는 아주 맑게 깨끗하고 순결한 사람 그자체 곧 성정이 사랑은 아니었을까? 다시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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