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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의 작품읽기

정선규 시인
배추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10642 등록일: 2012-03-08

배추
 海月 정선규

11월의 가파른 언덕배기 밭에
아직도 제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배추를 든든히 잡은 아내와 어머니는
가스로 가득 차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방귀를
모금은 닭 똥구멍 주둥이 모양새가 되도록
배추를 바짝 동여 싸맨다
아내의 온 힘을 받은 배추는
주둥이를 오롯이 웅크리느라
서서히 단단한 알집으로 채우는
만 삯의 홀이다

쏘아 올린 난쟁이의 공처럼
배추는 튼실하게 잘 생긴
하얀 알을 소금밭으로 쏘아놓고
이제 밥상 앞으로 돌아갈 주인은
금 홀을 살짝 내밀어 배추를 당기면
죽으면 죽으리라
마음으로 몸을 숙성시키는 맛으로
세상을 장엄하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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