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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의 작품읽기

정선규 시인
시향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11519 등록일: 2012-02-04

시향
 海月 정선규

여무는 늦가을 저녁
아들네 집 물어오는 노파의 눈처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어슴푸레 이
거리가 온통 흐려져 좁아지는가? 한데
이윽고 구름 숲을 지나 빛을 낚은 달이
오롯이 튕겨 오른다

어찌 그렇게 여물어만 보일까
아무리 찍고 또 찍어 눈으로 눌러 흔들어도
시름시름 바람에 씻겨 녹지 않고
나 몰라라 수그러들 줄 모른 채
온몸을 휘감아 올라 있는 듯 없는 듯
불감증 같은 수더분함으로
내 영혼을 흔들어 삭힌다

눈퉁이 식물인가
화들짝 나도 몰래 우리 집 지붕을 타고
뽀드득뽀드득 모금은 빛을 밤새워 깨물어
깨소금 같은 소리를 안고
점점 하얀 진주 알처럼 탱글탱글 엮어가는 것을
마당에 사는 멍멍이는 아는지
빛살 좋은 달집 타는 것을 보고 짓는다

잿빛은 가만가만 까치발 세워
아스라이 땅에 내려와 살짝
바람만 불어도 삐거덕삐거덕
엇박자로 뜯기는 화장실 문에
희멀겋게 잠긴 채 금방이라도
벼락 맞아 쪼개질 듯이
가슴에 조인트 튼다

넌지시 눈빛 주다
아뿔싸 지워질세라
여유를 박차고 일어나
잠자는 컴퓨터 배꼽을 손가락에 맞추고
시시콜콜 돌아가는 영사기 소리를 가르며
붓끝에서 흘러나오는 스치는듯한 세상을
튀어나온 시조새 한 마리가 내 원고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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