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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
지하도의 꿈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11509 등록일: 2012-01-18

지하도의 꿈
 海月 정선규

서슬을 아주 차갑게 갈아 서퍼렇게 끼워놓은 오후
어느 지하도 밑바닥을 따라 미끄러져 내리듯
싸늘하게 허물어지는 까칠한 추위가 거리를 누비던
어느 일월의 하루 이름 없는 지하도에
머리맡으로 나뒹구는
빈 소주병이 뭐 그리 아쉬운지
바짝 허리를 구푸려 알이라도 품을 상으로
각인이 된 사내가 잠들고는 꿈을 꾼다

얼마나 삶에 힘든 여정이었을까
속히 살을 파고드는 겨울바람에
신문지 한 장이 파도를 일으키며
펄럭이는데
붕어빵에는 붕어가 들어 있지 않듯
바다에는 고래가 들어 있지 않은 듯
그 사내는
조용히 잠결 위를 거닐며 간간이 수줍게 미소를 짓는데

고결한 한 마리의 학이
우아하게 하얀 물거품이 깨알처럼 쏟아져 부서지는
주옥같이 맺힌 은빛 여울을 목에 두르고 태양을 머리에 이고
사뿐사뿐 춤을 사위어 넌지시 시공을 뛰어넘으며
잘 사는 것도 한때 노숙도 한때인데
자신의 마음을 지켜 초콜릿을 한 상자를 다 빼먹으면
자지러질 고생이라 위로의 길 터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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