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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의 작품읽기

정선규 시인
남의 일 같지 않은 일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9879 등록일: 2012-01-01
남의 일 같지 않은 일

요즘 며칠 노인네가 보이지 않는다
매일 오가며 동네에서 시내에서
부딪힐 때마다 서로 반가운 마음으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가장 가까운 이웃사촌으로 지내는
팔십이 가까운 노인네가 보이지 않는다 했더니
걱정하고 염려하는 내 마음을 알았을까
드디어 오늘 늦은 오후 시간에 나타났다
마스크를 쓴 얼굴에 눈 밑으로 큰 따그랭이가 머문 얼굴에
여느 때와는 달리 매우 굳어진 표정이었다
나는 놀랐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난로 옆에 플라스틱 그릇이 쭈그러들어 바짝 오그리며
긴장된 자세로 벌떡 세우며 일순간 번쩍이는 벼락을 맞은 듯
온몸으로 전율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노인네가 훌러덩
마스크를 벗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나는 누군가를 감찰하듯 고개를 앞으로 쓱 내밀고는
요리조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마에서부터 턱밑까지 놀라면서도 부드러운 눈빛에 깊은 씨름을
싣고 보듬어 내렸다
그 결과 다행히도 별다른 이상은 없는듯하여 마음은 놓였으나
나는 다급하게 노인네한테 따지듯 물었다
"얼굴은 왜 그래요"
아주 짧으면서도 투박하고도 불퉁스럽게 격앙된 목소리였다
노인네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태연스럽게 말했다
"불면증으로 사흘 동안 잠을 못 잤더니 현기증이 나서 넘어져서 그래" 한다
노인네는 평소에도 나한테 말하곤 했다
젊었을 때 위암으로 위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은
다음부터 불면증은 시작되었고
병원에서 절대 술 담배 삼가라고 해서
그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상황일지라도 술 담배 입에도 대지 않았다
요즘은 교회를 다니면서 제발 잠 좀 푹 자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한다고 했다
요즘 얼마나 고통스러웠든지 아주 쉽게 입버릇처럼
죽었으면 좋겠다고 자주 말하곤 하는데
저번 주 토요일 밖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동네 노인네와 둘이
집으로 돌아가다
삼성동 사거리 한밭 교육박물관 앞 모퉁이 작은 건널목을 건널 때
갑자기 쓰러져 나뒹구는 것을 마침 뒤에 따라오던
한 아주머니가 몹시 놀라 앞에 가고 있던 동네 노인네를 바라보며
도대체 이 아저씨 술을 얼마나 마셨기에 이렇게 쓰러지느냐며 일으켜 세웠단다
간신히 그 아주머니의 부축을 받아 삼성사거리 큰 도로 건널목을 건널 때
중간쯤에서 난데없이 또 쓰러져 혼자 땅을 짚고 일어나는가 싶더니
이내 또 쓰러져 도로 한가운데에서 나뒹굴자
신호대기 하고 있던 차들은 오지도 가지도 못한 채
노인네가 일어나 건널목을 빠져나올 때까지 한참이나
신호대기 하고 있던 그 상태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 번도 아니고 무려 세 번씩이나 쓰러졌다는데
한쪽으로 데리고 나가 앉히니 코피를 흘리다라면서
그날 코피 흘려서 살았지 코피 안 흘렸으면
죽었다며 아는 노인네가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전해들으면서 정신이 아찔했다
평소와 같으면 전혀 상상도 못할 노릇이다
언제 봐도 깨끗한 얼굴에 멀쑥하면서도 매끄럽게 단장한 옷매무새에서는
동양신사와 같은 향기가 배어나 오곤 했었기 때문이다
지난여름에는 대전역에서 에스켈레이터를 타고 대기실로 올라가던 중에
어떤 여인이 뭐가 그렇게 바쁜 일이 있었는지 노인네를 밀치고 올라가면서
노인네가 에스켈레이터에서 굴러떨어져 얼굴과 머리 손 등에 상처를 심하게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한테도 내색 하지 않고 주위의 권유에도 절대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말 그대로 참, 선비다운 기지를 발휘했다
주위에 어떤 사람의 말을 들으니
작년 여름에도 같이 길을 가다 난데없이 쓰러지는 것을 뒤에서 부축하여
댁에까지 모셔다 드렸다고 했다
한편 어느 날인가 이런 말을 하더라는 것이다
작년 여름 그때도 현기증이 나서 쓰러져서 머리가 깨어져
수술을 하고 한 달 병원에 입원했다 나왔다고도 하면서 항상 배가 아프다고 했다
그 말끝에 내가 말했다
"저도 긴장하거나 신경이 예민할 때마다 자주 아픕니다
선천성인지 후천성인지 모르지만, 신경이 너무 예민하여 오는
과민성 대장증후군 진단이 나왔어요"
하고 말했더니
갑자기 눈을 커다랗게 뜬 노인네가 말했다
"선규도 그래 나도 과민성 대장증후군이래
밤에 자다 배 안 아파
나는 잠도 못 자는데다 배가 아파
꼭 한 달에 한 번 성모병원에서 약을 타 먹는데
그래도 전혀 효과가 없어서 최근에 약을 끊었다가
다시 약을 복용하느라 수면제를 먹는데
그래 봐야 겨우 하루에 2~3시간 잠깐 잠들었다 깨어
특히 새벽에 배가 아파
잠을 못 자겠어."하기에
"아저씨 과민성 대장증후군은 병원에서 이야기하는데
평생 못 고친대요
다만 먹는 것을 조심하라고 하더라고요
술 담배 밀가루 음식 탄산음료 커피와 같은
자극적인 음식과 맵고 짠 음식을 피하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랍니다"
하고 말했더니 지난 12월에 약 타려고 성모병원에 갔다가
담당 의사선생님한테
자세히 여쭈어보니 과민성 대장증후군은 평생 못 고친다면서
밀가루 음식을 피하더란다
이렇게 나와 노인네는 동질감으로 인연이 되어 언제 어디에서 만나든
얼굴만 마주치기만 하면
약속이라도 한 양 서로 배 안 아프냐는 
안부를 물으며 지내는 사이로 발전이 되었다 
그 후 나는 내게 가장 궁금했던 것을 물을 수가 있었다
"아저씨 자녀는 몇이나 되나요?"
그러자 노인네의 대답인즉슨
아들 하나에 딸 하나인데 아들은 서른둘 아직 미혼이고
아카데미극장에 다닌다고 했고
딸은 오래전에 결혼해서
매달 밑반찬에 김치를 담아 집으로 보내준다고 했다
나는 걱정이 되어 물었다
"아저씨 병원에는 다녀오셨어요" 하고 물으니
노인네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별것도 아닌데 뭘"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뭐니뭐니해도 부모 라면 제 자식 장가는 보내야
부모 노릇 다하는 것인데 나는 아직 우리 아들 장가를 못 보낸 채
부모 노릇을 다 하지 못하고 있어." 하고 말을 흐리시더니
이내 더는 말을 잇지 못하시고 만다
이 세상의 모든 부모는 밖에 나와서 안에서 아들 며느리가
아무리 잘못을 해도 절대 흉보거나 흠 잡지 않는다
다만 우리 아들은 어느 고등학교 선생으로 있고
며느리는 어느 교회 부목사로 있으며 또 작은아들은 경기도
수원에서 경찰 생활을 하는가 하면 막내아들은 법원에 다닌다고
귀에 입에 걸리도록 자랑하느라 숨넘어가는 줄도 모른다
이뿐인가
손녀딸은 대전에서 제일 큰 은행에 다닌다고 손가락질을 크게 하며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지만, 그 부모의 속을 누가 알 수 있을까
한쪽 가슴이 시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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