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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의 작품읽기

정선규 시인
행복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11268 등록일: 2011-12-29
행복
 海月정선규

하얀 벽을 보면 그리움이 배어난다
새를 걸면 먹이 주는 이가 없어 여유로운
외로움이 극성으로 탈것이고
겨울 풍경을 걸자니 너무 추워 얼어붙을 것이고
이러고 저러고 망설이다 그 겨울 스치는 바람의
언저리로 성성해질 것이다

사브작 사브작 겨울에 내리는 비가 있는 오후
우산도 없는 어느 소녀가 자동차에서 내린다
긴 머리는 말 고삐처럼 바람의 손에 머물러 있고
어디에서 많이 본듯한 해맑은 미소를 살짝 흘리며
하늘의 어깨너머에서 떠오르는 태양처럼
언덕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오빠 생각으로 깊이 잠겨 있다

바로 이 그림이야
망치를 들어 못을 쿵쿵쿵 때리건만
못은 온 힘을 다해 볼록 퉁겨져 나오고
나는 입버릇처럼 지랄하고 자빠졌네
흉보듯 못을 나무란다
정말 이래도 되는가
못을 때리는 내가
도저히 벽을 뚫고 들어가지 못하겠다는
못의 대항에 지랄하고 자빠졌다니

그 소녀가 보기에도 정말 어이가 없지만
그래도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내게 끌리는지
얼굴에서 살짝 토라져 미끄러져 나가는 듯한
광활한 큰 미소가 배어 나오는 것에서
나는 행복은 아주 못 되게 지랄하는 괘씸한 놈의
버르장머리에서 나오는 소행이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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