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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의 작품읽기

정선규 시인
마당 깊은 날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9881 등록일: 2011-11-27

제65편
마당 깊은 날

벌써 2011년도 거의 마침표를 찍으려 하고 있다
올 한 해를 보내면서 참 힘들고 외로웠다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하지만 늘 외롭고 힘들었던 것은 아니다
그 와중에서도 현대칼라를 만나 좋은 인연으로써
많은 도움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올 4월부터 고물을 하기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고물을 내가 직접 손수레를 끌고 거리에 나가
폐지를 수집하며 많은 발 푼을 팔았다
이런 나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보기 좋다고도 말했고
또는 다른 사람들은 굶어 죽었으면 죽었지
손수레는 안 끄는데 글쟁이가 붓을 놓고 고물 하는 것을 보면서
다시 봤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은근히 내심 걱정이었다
나서기는 나섰었어도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끝까지 완주를 잘해야 하는데 적은 내 안에 있으니
언제 어떻게 내가 스스로 포기할지
무너져내릴지는 전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잘해야지 암 그렇고말고 한 오백 년 잘하자는데
웬 성화요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에 전략을 다할 뿐이었다
시간이 가면서 나는 외로웠고 더 힘들었다
이제 나는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아픈 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공인이 되어 가는구나 하는
또 다른 절망으로 사로잡혔다
이렇게 힘들 때 만난 든든한 버팀목이 현대칼라였다
손수레를 끌고 나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어디에 고물이 많은지
어떤 것이 돈이 되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막막하기만 할 때 어떻게 손수레를 끌고 나간 곳이
중촌동이었다
뚜벅뚜벅 손수레를 끌고 가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아저씨~ 아저씨~"
뒤돌아 보니 낯모르는 아저씨가 손사래 짓을 했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아저씨에게 갔다
아저씨는 나한테 물었다
"아저씨 이 길로 다니세요."
질문의 요지가 뭔지도 모른 채 어안이벙벙해서
나는 대답했다
"예"
그 아저씨의 말은 이랬다
현대칼라가 용전동에 있다가 중촌동으로 이사 온 지가 얼마 안 되는데
종이상자와 플라스틱이 제법 나온다는 것이다
이사 오기 전에는 나이 드신 아저씨 한 분이 매일 오셔서 가져가시곤 했지만
이제 회사가 중촌동으로 이사하고 용전동에서 그 거리가 너무 멀어 오실 수 없으니
가져갈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루도 빠짐없이 이 길로 다니신다면 나한테 주겠다는 것이다
작업을 하면서 나오면 나오는 대로 빈 종이상자와 플라스틱 통을
2층 계단에 내놓을 테니 와서 가져가라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건물지하도 현대칼라이니 계단으로 내려가서
종이상자를 비롯한 파지를 가져가라고 했다
이렇게 현대칼라와 첫 인연을 5월에 맺었다
고물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정말 가진 것 없이는 살기 어려운 세상살이를 반영하는지 어려운 경제를 실감 나게 하는 것인지
올봄만 해도 이사 가는 집에서 냉장고. 가스레인지. 책. 신발. 신문 등을 버리고 가거나
거리를 지나다 보면 주고 가는 경우가 있어 그나마 수입에 도움이 됐지만
이제 사람들은 이사하면서도 버리는 것 없이
아예 자신들이 버릴 물건을 챙겨 고물상에 넘긴다
이뿐인가?
이제는 어느 집에서도 헌 옷가지 하나 신문 한 장 내놓지 않고
반찬값이라도 보태기 위해 모았다. 고물상에 팔거나 중고 가전제품
수집하는 차에 팔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동네 어귀를 지나가는 80대 할아버지 할머니도 그냥 가지 않고
보이는 대로 종이상자를 들고가지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며
폐지 거둬가는 사람은 핑핑
손수레를 가로질러 앞에 있는 종이상자를 재빨리 싣고간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고물도 이제 거래처가 있어야 한다
쉽게 말해서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어떤 할아버지는 대전 인쇄 골목을 돌아다니며
인쇄업체에서 요구하는 보증금을 넣고 실어낸다고 한다
예전처럼 새벽 5시부터 손수레를 끌고 부지런히 거리를 나가
아침을 거르고 점심까지 거르며 온종일 발 푼 팔아봐야
그렇게 해서 온종일 수고하고 손에 쥘 수 있는 건 겨우 1만 원 안팎이다
그나마 넉살 좋고 비위가 좋아야지
동네 슈퍼나 완구도매상이나 문구도매상. 신발가게 또는 편의점 등이나 공사판을 돌며
젊은 사람이 먹고살려고 하는데 좀 도와달라고 사정하거나 청소라도 도와줘야
다만 뭐라도 가지고 나올 수 있으며 또 다음부터 그 집에 단골로 드나들면서 나오는
종이상자나 폐지를 가져갈 올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그리 넉넉하지 못하다
어디를 가나 점주들은 대부분 아직도 우리나라에
경로우대사상이 뿌리깊이 내리고 있어
젊은이들한테 내주기보다는 노인들에게 준다
하다 보면 정말 목구멍에서 밥 타는 냄새가 절로 나는데
이러한 판에 남들보다 뒤늦게 뛰어들었으니
더 말해서 무얼 하겠는가?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지 않았는지
구세주 같은 현대칼라를 만나 벌써 6개월을 드나들었다
이것만도 천행이건만 아저씨를 덤으로 만났다
늘 지하에서 혼자 일하시고 계시던 아저씨는
내가 가기만 하면 잊지 않고 어서 오세요 하고
항상 반겨주시면서 말씀하시곤 했다
"집에서 몇 시에 나오세요."
"예 새벽 5시에 나옵니다."
깜짝 놀라시면서
"그럼 아침은 드시고 나오세요."
"아니요. 끝나고 집에 가서 먹습니다"
하고 대답하면 아저씨는 향수에 젖듯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도 참 안 해본 일 없이 막노동까지 다 해봤는데
폐지는 안 주워봤어요
젊은 사람이 폐지 줍는 것 보면 정말 대단합니다
우리 일거리가 많아서 작업을 많이 하면 많이 들릴 수 있을 텐데
요즘 일거리가 많지 않아서 이것밖에 안 되네요"
오히려 미안하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때로는 자신이 간식으로 먹는 빵을 주시기도 하고
식당에서 남몰래 오후 간식으로 먹으려고 갖다 놓은
떡까지도 아깝지 않게 내주셨다
어느 때에는 출근하시면서 집 정리를 하시면서 나온 책을 잔뜩 창에 싣고 오셔서
오늘은 일당 됐으니 집에 빨리 들어가라고까지 하셨다
쭉 이런 사랑만도 너무 과분한데 오늘은 갔더니
빈 종이상자 안에 양은 압력밥솥과 프라이팬. 냄비를 다소곳이 앉혀 놓았다
나는 알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아저씨한테 달려갔다
"아저씨 저기 저 그릇 누가 갖다 놓았어요"하고 물으며
양은그릇이 담긴 종이상자 쪽을 가리키자
관리부장님이 가지고 왔다고 했다
순간 나는 알았다
요 몇 주 전부터 관리부장님은 나를 볼 때마다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집에 압력밥솥을 갖다 줘야 하는데 차가 없어 못 가져오고
있다는 말을 자주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저씨 혼자 지하에서 일하셨는데
언제부터인가 과장님과 부장님이 내려오시면서 두 식구가 늘어
지금 세 분이 일하시는데 아저씨 혼자 계실 때부터 자주 지하에 내려와
일하실 때 뵈어서 익히 알고 있었다던 터였다
더 감동적이면서 놀라운 사실은 부장님 마음은 자꾸 갖다 주고 싶은데
차가 없어 출근하면서 가지고 와서 지하에 갖다 놓으면 가져갈 것을
안타까워하시는 부장님 모습을 보고
"손수레 끌고 집으로 가면 돼지 삼성동에서 중촌동 오는 거리나
삼성동에서 홍도동 가는 거리나 똑같은데 뭘" 하시면
부장님은 미안하신 듯 "아이고 얼마나 된다고 거기까지 오래 말도 안 돼"
두 분이 논쟁을 벌이시더니 오늘
아침에 아저씨가 출근하시는 길에 부장님 댁에 일부러 들러
두 분이 함께 양은그릇을 차에 싣고 오신 것이다
두 분에 따뜻한 사랑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더 감동적인 것은
아저씨는 부장님이 가지고 왔다 하고
부장님은 아저씨가 차에 태워주어서 가지고 왔다고 하니
정말 두 분의 사랑을 가늠하고도 남을 날이다
두 분은 내게 산 글이며 시대적 암울한 배경 속에서 빛나는
산 증인이며 내 삶에 역사의 주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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