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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의 작품읽기

정선규 시인
배추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12396 등록일: 2010-09-30
배추 海月 정선규

언덕배기 밭에 배추가
까치발 세워 걸터앉은
11월의 정서 아래
옹골진 포기 접어
겹겹이 배추 알 싸맸다
작년 이맘때 옆집 김씨가
언덕배기 밭에 배추 심어 먹겠다고
굴뚝같은 마음에 붙잡혀 와서 작정한 듯
시원한 냉수 한 그릇 마신 김에 말을 했었다
나는 깊은 해저로부터
솟아오르는 이웃 간의 우정에 못 이겨
아주 짜릿한 감동의 끝으로
생파 씹은 듯한 아릿아릿한 감정이
코끝을 자극해 왔다
그래서 나는
토라지듯 하면서도
모르는 체 윙크를 전했었다
인제 와서 생각해 보면 김씨에게
배추 한 섬 알까 받기로 한 것은
알찬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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