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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의 작품읽기

정선규 시인
가을의 통증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9588 등록일: 2011-10-08

가을의 통증
 海月 정선규

내 몸은 진공청소기
심하게 우려 올라오는 통증을
아프게도 빨아들인다
오늘 아침 새 바람을 찾노라
살짝 열어두었던 창문을 사뿐히 넘어
우리 집 거실을 넘보던 낙엽이
쓱싹 아내가 밀고 가는 진공청소기 앞에
깨소금 발린 고소 미가 고소하게 깨어지는 양
바삭바삭 울음을 깨우는 소리로 달려들어 간다

내 육체 밖에 있는
그 어느 마을 어귀를 지키는
도르래가 달린 우물가에
내가 모르는 어떤 여인네가
오늘 저녁밥을 지으려
두레박으로 부지런히 물 퍼 올릴 때 
물을 지키려 안간힘을 쓰는 우물과
어떻게든 우물을 길어 저녁밥 지으려
온 힘을 다하는 여인네의 힘 사이 
매달려 팔다리 찢어질 듯한 두레박을 보니
통증을 머금은 근육은 가늘게 늘어나만 가 
쫄깃하게 뽑히는 쫄면 신세일 수밖에

아무리 참아도 알게 모르게
은근히 그리고 은은한 향수를 잡은 것처럼
겹겹이 치밀어오르는 아픔에
내가 못된 성질 못 이기고 홧김에 
발로 힘껏 창문을 걷어차 화풀이하는
찰라
내 몸속을 흐르던 끈끈하게 진한 
피가 놀라 짜르르 우는 힘에
동그랗게 천천히 퍼지는 잔 결에
빠듯하게 살을 눌린 채 저린
통증은 예 하는 듯하면서도
아니오. 하고 아리게 맺히는가 싶다가
처마 끝으로 흘러내리고 만다

이미 내 허리는 과녁이 된 지 오래인지라 
허리뼈를 끊어 좁혀진 척추마디를
활처럼 휘어 똘망똘망 단단하게 잘 생긴
단백질에 신경줄을 걸어 힘껏 당기고는
휘영청 활을 쏘니 통증의 끝이 어디인지
아득히 먼 파도가 되는데
왠지 대한민국 우편물을 온 몸으로
짊어지고 서 있는 우편집중국을 연상 하듯 
지금까지의 모든 통증이 내 허리에서 나이를 먹은
나이테가 되어 그루터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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