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이버문학관 / 문인서재 / 문학관.com / 문인.com

대한민국 사이버문학관
문인.com
작가별 서재
김성열 시인
김소해 시인
김순녀 소설가
김진수 큰길 작가
김철기 시인
류금선 시인
문재학 시인
민문자 시인
배성근 시인
변영희 소설가
송귀영 시인
안재동 시인
양봉선 아동문학가
오낙율 시인
윤이현 작가
이기호 시인
이영지 시인
이정승 소설가
이룻 이정님 시인
이창원(법성) 시인
정선규 시인
정태운 시인 문학관
채영선 작가
하태수 시인

대한민국 사이버문학관




▲이효석문학관

 
정선규 시인의 작품읽기

정선규 시인
눈먼 고물상의 하루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9472 등록일: 2011-09-11
눈먼 고물상의 하루

벌써 9월
겨우 8월 한 달만 간듯한데
해는 서둘러 짧아져서는 이제 7시가 채 못 되어
어둑어둑 검은 그림자로 집을 짓는다
그래서일까 왠지 하루의 일과가 어찌나 힘들면서
안 가고 안 간다 싶은지
시간의 앞에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 추석이구나
있는 사람들에게는 즐거운 가족들과 덧없는
즐거운 시간이겠지만
없는 사람들에게는 힘들고 명절이 없었으면 하는
아픈 시간의 흔적일 뿐이다
요즘 나는 고물상에서 일하고 있다
추석을 하루 앞둔 오늘도 나는 출근을 했고
고물상의 일과는 이렇게 시작되어 어느새
오전을 넘기고 오후 12시를 넘고 있었다
막 점심을 먹고 지친 몸을 잠시 사무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달래고 있을 때
누군가 파지를 들고 들어오는 그림자가
어렴풋이 느껴졌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깡마른 작은 체구에 깡마른 한 청년이
바람 불면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이
휘청거리며 핼쑥한 몰골로 빈 종이 상자 두서너 개와
파지를 작은 저울에 올리고 있었다
나는 저울 앞으로 다가서 눈금을 잃었다
2킬로였다
순간 나는 다시 저울 위를 보았다
어디에서 주워 왔을까?
겨우 몇백 원 나올 텐데
어떻게 이 돈으로 추석을 보낸단 말인가
나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참, 참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추석이 내일인데 이 돈으로 어떻게 명절을 보낸단 말인가
이렇게 절박한 심정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아니 있을 수 있을 것인가?
채 3킬로가 되지 않는 2.5킬로였다
그는 내가 2.5킬로 내요 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자신을 방어하듯 이렇게 말했다
"3킬로 3킬로요"
나는 눈금을 주시하며 말했다
"3킬로가 조금 안 되네요
2.5킬로요"
이런 내 말이 얼마나 냉정하고 인정머리 없게
그에게 들렸든지
이렇게 말했다
"3킬로라고 해주세요."
순간 나는 아찔했다
그래 고물상은 내 것이 아니지만
남의 것으로 베푸는 선한 청지기의 삶이라
즐거운 마음에 나는
아주 확고하게 사장에게 말했다
"사장님 파지 3킬로요"
사장은 우리의 대화를 들었지 싶은데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아무 말도 못 들은 척 아주 태연하게
"응" 대답을 하고는 돈을 꺼내더니
"갖다 줘!" 하는 말과 함께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마음이 짠했다
역시 고생을 많이 해본 사람이 다르긴 다르구나
고생해본 사람만이 고생하는 사람의 심정을 아는 아주 멋진 대장부로구나 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는 사무실로 들어가 파지 3킬로 값인 6백 원을 받아
밖으로 나와 그에게 전해주었다
더 기막히고 마음 아픈 것은
아무것도 해준 것 없이 단지 심부름만 했을 뿐인데 나에게
그가 정중하면서도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그는 내 앞에서 연발 적으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는데
참 뭐라 말할 수 없는 현실에 비애를 뼈아프게 당해야만 했다
고물상을 벗어나고 있었다
나는 비로소 민심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예부터 국본이니 국모니
하는 말이 내 머릿속에서 고뇌의 파편으로
떠돌기 시작했다
국민이 나라에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국민은 결코 큰 것만 바라고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서 행복을 발견하고 사람답게 살면서
큰 행복으로 일구어가는 삶의 자유를 원하리라
누린다는 것은 곧 권리이다
대통령도 아닌 내가 정치인도 아닌 내가
작은 이 고물상에서 남에 것으로
선한 청지기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고물상에서 일하다 보면
허리가 땅에 닿을 듯한 80대 할머니가
유모차에 빈 종이 상자를 힘겹게 끌고 와서
몇백 원에서 몇천 원에 가치를 손에 쥐고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으며
다리를 다쳐 병원에도 못 가고 하루하루 고물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50대 중반의 아저씨를 보았고
살만한 사람들이 집 정리하다 모아 온 책을 가져와
고물 값을 주면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는
"에게 이것밖에 안 돼요"
투정부리며 다른 데로 가면 더 주던데 하다가
"그럼 많이 주는 고물상으로 가세요." 하는
사장의 말에 꼬리를 내리고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이는 오른팔이 잘려나가고 왼팔만 있는
가운데 그래도 살겠다고 한쪽 팔을 부지런히 움직여
하루하루 종이 상자 하나라도 가지고 와 단 백 원이라도
받아가는 것도 보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밀 바에 빈 종이 상자를
싣고 와 문지방을 넘나들듯 두세 번씩 와서
몇천 원씩 받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런가 하면 허리가 꼬부라지다 못해 아주 휘어진 하늘을
연상하게 하는 한 할머니는 1만 원짜리 상품권 두 장을
고물상으로 가지고 와서는 추석 때 친척이 쓰라고 선물로 주었다며
사장 앞에 호호호 웃으며 쑥스럽다는 듯이 말한다
"어떡해 사장님밖에 없는데 이거 추석 선물로
우리 친척이 준 것인데 내가 이걸 어떻게 쓰겠어."
하고는 상품권을 쓱 사장 앞에 내놓는다
그러면 사장은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알았어~"
하고는 1만 원짜리 상품권 두 장을 받고는
현금 2만 원을 건네준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할머니는 동사무소에 일이 있어 가야 한다면서
사장에게 와서는 동사무소가 어디냐고 묻기에 동사무소 가는 길을
일러주니 이제는 혼자 찾아갈 수 없으니 데려다 달라며
사장에게 호소한다
나는 생각한다
이것이 곧 천심이고 민심이리라
오늘 나는 고물상 그 낮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민심의 참된 고리를 보았다.

댓글 : 0
이전글 송이 꽃
다음글 어머니 손맛
번호 제목 작성자 추천 조회 등록일
289 자유글마당 개와 어린아이 정선규 0 10865 2011-02-19
288 시.시조 한가위 정선규 0 10429 2011-02-18
287 시.시조 날 새는 꿈 정선규 0 11099 2011-02-17
286 자유글마당 근육의 비밀을 풀다 정선규 0 10445 2011-02-17
285 자유글마당 너 어디 있어 정선규 0 10359 2011-02-16
284 자유글마당 감사합니다 정선규 0 9995 2011-02-15
283 시.시조 꽃 반지 추억 정선규 0 10912 2011-02-15
282 시.시조 모퉁이 돌 정선규 0 10955 2011-02-06
281 자유글마당 부모님 말다툼 정선규 0 10869 2011-02-06
280 메모.비망록 신의 언어란 무엇인가? 정선규 0 10216 2011-02-05
279 자유글마당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정선규 0 11216 2011-02-05
278 시.시조 달 캐는 밤 정선규 0 10739 2011-02-01
277 자유글마당 버스 안에서 정선규 0 9977 2011-01-31
276 자유글마당 자연 속으로 정선규 0 10755 2011-01-31
275 시.시조 성모의 집 정선규 0 10717 2011-01-30
91 | 92 | 93 | 94 | 95 | 96 | 97 | 98 | 99 | 100
이 사이트는 대한민국 사이버문학관(문인 개인서재)입니다
사이트소개 개인정보취급방침 이용약관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알립니다 독자투고 기사제보

 

Contact Us ☎(H.P)010-5151-1482 | dsb@hanmail.net 서울시 구로구 고척동 73-3, 일이삼타운 2동 2층 252호 (구로소방서 건너편)
⊙우편안내 (주의) ▶책자는 이곳에서 접수가 안됩니다. 발송전 반드시 전화나 메일로 먼저 연락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