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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의 작품읽기

정선규 시인
가랑비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11906 등록일: 2010-09-27
가랑비

가랑비가 옵니다
가늘게 그렇게 옵니다
이 모습을 보았습니다
누가 보았느냐고요?
그 밑에서 서서 자고 있던 나무가 보았습니다
한참을 자다 보니 잎이 자꾸자꾸 무거워지는 듯하기도 하고
밑으로 쳐지는 것 같기도 하고 해서 살짝 눈을 떴지요
그랬더니 가랑비가 오는데 그것은 나무엔 비가 아닌 무엇이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가랑비가 오는데 어디에서 오고 있었을까요?
바로 하늘의 살짝 찢긴 바짓가랑이에서 나오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니깐 한마디로 말해서 그것은 하늘이 잠을 자다가 그만 꿈을 꾸었는데
오줌이 마려운 꿈을 꾸었다지요
그러므로 하늘은 나무의 머리에다 부끄러운 실례를 하고 있었던 것이라요
황당한 나무가 바람을 깨웠고 바람은 그날 밤나무의 머리를 씻기고 닦아 주느라고
꼬박 날 밤을 새웠다는 웃기는 제보가 들어 왔는데 이것을 보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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