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성취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 이다.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 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 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 이다.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하나님이여 그들을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 많은 허물로 말미암아 그들을 쫓아내소서. 그들이 주를 배역함이니 이다.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는 주를 즐거워 하리이다.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 이다.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 이다.”(시편 5:1~1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브리서 11:1~3)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소망을 현실처럼 생각하고, 실천하며 경험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믿음은 단지 우리가 바라는 마음의 기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 미래가 경험되는 것처럼, 믿고 이미 믿은 대로 될 것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것이다.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마가복음 9:1~8) 우리는 어제라는 시간을 살아냈고 또 오늘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되고 또 다른 하루인 내일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인생의 여정을 따라간다. 그러니까 시간은 항상 하루, 또 하루로 한결같이 다가와 현실이 되어, 지나는 삶의 체험이 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 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창세기 1:1~13) 이렇듯 먼 미래는 장차 오늘이 된다. 그래서 미래는 막연한 것이 아니라 오늘 미래를 경험한 과거로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렇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베드로 후서 1:16~17) 베드로에게는 먼 후일에 일어날 재림의, 사건은 이미 과거에 경험한 지나간 이야기의 고백처럼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바로 변화 산에서 베드로가 보고 들은 경험적인 사실이었다. 또 그 일이 있기 엿새 전에 이미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베드로에게 재림은 단지 기대하고 바라는 먼 미래의 약속이 아니고 이미 경험한 지나간 실상이었던, 것이다. 이는 가까운 미래에 이루어질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이에 예수께 묻자 와 이르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마가복음 9:9~13)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미래가 이미 이루어진 일처럼 명확하다. 그 약속을 지키고 실천하며 순종할 마음이 굳게 선 사람들에게는 미래에 일어날 일도 이미 이루어진 일처럼 말하게 된다. 예수님께는 바라는 것들이나, 보이지 않는 것들, 모두 성취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