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성경을 접한 것은, 17~18살 때의 일이었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은, 왜 사람들이 교회 갈 때만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것일까? 하는 의문점을 가졌지만, 그 누구한테 물어보거나 의문을 제기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내버스 종점 앞을 지나다가 교회 간판을 보고 무작정 기도하러 들어갔고 거기에서 임용배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분은 내게 처음으로 성경책을 읽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성경책을 읽기는 하루의 일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그 후 2010년 창세기를 중심으로 신의 문학으로 집필하였고 그후 다시 신의 문학,신의 문법으로 집필하다가표류하던 중 12년 만에 시편을 묵상하며 집필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 1:1-6)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 도다.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시편 2:1-1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11:1-3)
여기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란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 믿으니까 그 결과가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이것은 실체가 있고 그 실체 안에서 믿음을 말했던,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그 바라던 것의, 실체였으며 곧 이것이 바로 믿음의 사람의 삶의 태도였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현실보다도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실을 바라보고 현실에 근거한 믿음이 아니라 실체 안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이 더 이상 미래가 아니라는 확신이다. “누구든지 이 산 더러 들리어 바다로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마가복음 11:23-24) 예수님은 받게 될 줄을 믿으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받은 줄로 믿으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이것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말한다.
그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 이는 다가오는 실상을 말해주는 듯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묵상하는 도다.” “형통하리로다.”라고 함으로서 장차 장래에 다가오는 일을 일컫는 듯하다. 이것이 곧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우리의 믿음은 미래의 어느 날 실상이, 된다. 즉 실현된다. 즉 믿음에 증거가 반드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므로 이미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장차 장래에 이루어질 일들이다. 따라서 완성된 현재가 아닌 미완성된 미래, 그래서 나는 ~ 비웃으시리로다, ~ 하시리로다, ~ 이르리로다 등 앞으로 다가올 일들을 말한 것이며 현재 미래진행형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으니 믿음은 보지 않았지만, 보는 것, 듣지 않았지만 듣는 것, 느끼지 않았지만 느끼는 것, 더 나아가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보다 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 여겨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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