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2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3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4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과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브리서 11:1-2)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브리서 12:1-2)
구약 성도들에게 믿음이라는 것은 없었다. 왜냐하면, 메시아 즉 그리스도가 오시면 이루어질 것을, 바라고 기다렸던, 것이다. 그러니까 신약 성도들은 예수님이 모든 일을 다 이루시고 승천하시어 하나님의 우편 앉아계신 상태였다.
구약 성경을 보면 믿음이라는 단어가 한번 사용되었다.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님이 오시기 전이기 때문에… 그래서 구약 선지들의 믿음은 온전하지 못한 믿음이었다. 그래서 구약 선진들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이고 보지 못하는 것들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시고 이루시는 것을, 바라고 기다렸던, 것이다.
그러니까 구약에서는 짐승의 피로 일 년에 한 번씩 속죄 제사를 모형으로 드렸다가 예수님이 오심으로 한 번에 영원한 속죄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고 곧 바라는 것들과 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히브리서 10:1),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로새서 2:16-17)
“내가 그의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호세아 2:11),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로마서 10: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갈 3:24-25)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히브리서 10:9)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태복음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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