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보통 사람들은 믿음이라는 것은 내가 꿈꾸고 소망하는 것들의 실상이고 증거라고 오해하고 꿈이 이루어졌다고 믿는 등 오늘 소망을 내 손에 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자기가 그것을 이룬 모습을 눈에 그리고 마치 이루어진 것처럼 상상하고 기도하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고 이것을 실상으로 인식해간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믿음을 자신의 꿈을 달성하기 위한 꿈을 가지고 현실보다 믿음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시인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편 23:1-6)
장차 장래에 이루어질 것으로 알았다. 믿으니까 그 결과가 되었다는 뜻이 아니었다. 믿음은 실체가 있었으며 그 실체 안에서 믿음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믿음은 그 바라던 것의 실체이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사람의 삶의 태도였다. 현실을 바라보고 현실에 근거한 믿음을 가진 것이 아니고 실체 안에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대한 확신이고, 신뢰이고, 확증이고, 실재이고, 본질이고, 바라는 것들을 지지하는 근거였음이었다. 곧 바라는 것들을 뒷받침하는 기초였다. 믿음은 또한, 그래서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확증이었으며 우리가 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해 확신을, 갖게 힘이었다.
믿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말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만일 그 말이 이성적이지 않더라도 말을 믿는다면 온전하게 그를 신뢰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주어진 상황에 대한 순종이 즉 아무리 힘든 상황이 있더라도 그게 하나님이 나를 세우시려는 과정임으로 받아들이면서 순종하는 것이다.
그렇게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누구든지 이 산 더러 들리어 바다로 던지우라 하며 그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마가복음 11:23-24)
예수님은 받게 될 줄을 믿으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오히려 받은 줄로 믿으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확신(굳게 믿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믿음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로서 단순한 '바람'을 떠나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뜻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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