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규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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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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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선규 |
추천: 0건
조회: 3367 등록일: 2022-0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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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내렸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사당에 제를 올려도 술이 아니면 흠향치 않고 임금과 신하 벗과 벗 사이에도 술이 아니면 의리가 두터워지지 않을 것이요 싸우고 화해하는데 술이 아니면 못할 것이라고 했던가 술은 깊었다 질척이며 잘난 체하고 견딜 수 없이 남을 업신여겼다 누군가에게 맞아서 몸이 상하고 피가 흘러도 흠뻑 취해서 아픈 줄 모르고 세상을 느끼지 못했다 술로 신 내리듯 하고 미친 듯이 거리를 헤집고 메주 알 고조 알 정신없이 떠들었고 웃다가 울다가 술은 사람을 먹었다 울부짖는 짐승처럼 세상을 원망했다 괴성을 내뿜으며 고막이 찢어지도록 외쳤다 전봇대에 옷을 걸어 놓고 신을 벗어 놓고 잤다 세상에서 무서운 게 없었다 술기운을 입고 정신은 몽롱하게 취할수록 희열의 도가니였다 그 밤에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필름은 끊어졌고 귓전에 잡음만 감돌았다 어쩌면 술이라는 것은 술 취했다는 그 욕망의 충족에서 다가오는 쾌락인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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