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 있을 거야.
생각지도 않는 도적 같은 날이 왔다. 한 전도사님과 연락이 갑자기 끊어지고 말았다. 아마 사람들은 이럴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는가 보다.
한 전도사님은 25년 마전 마전침례 교회에서 처음 만났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렇듯 아무 이유도 없이 연락을 끊은 적은 없었다.
왜 진작 한 번 찾아뵙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흔히들 세월은 무심하다고 했든가 잔잔한 세월은 평토장한 무덤처럼 평평했다.
언제쯤 다시 연락이 닿을지 기약도 없는 기다림은 소리 없이 이슬비처럼 내렸다. 얼마나 더 때가 무르익어야 만날 수 있을지 시간은 읽히지 않았다.
이제 세월의 뒤안길을 따라 점점 초라하게 퇴색되어 가는 기억의 초침은 한 전도사님의 전화번호 끝자리가 5인지 25인지까지 가려 보이지 않았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간혹 시간의 틈바귀 속에서 5냐 25냐를 가려내기 위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없이 골몰했다.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탄한다고 했던가. 그 덕분이었을까? 갑자기 내 눈앞에서 TV 자막처럼 한 전도사님의 전화번호가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순간 온몸의 세포가 다 살아나는 듯 기분이 산뜻해졌다.
나는 황급히 전화했다. 신호가 길게 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누군가 한 전도사님 전화번호를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보세요” 저 멀리 수화기 밖에서 누군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것은 틀림없이 한 전도사님이었다. “전도사님! 저예요. 선규.” “아! 정 선규 형제구먼. 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도 간사할까.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동안 서운했던 마음들은 내 눈을 사르르 감기듯 녹아 내렸다.
“잘 지냅니다.” “지금 어디야? 전에 영주에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런 이야기를 언제 했는지조차 까마득했다. “지금도 영주에 있어요. 아참! 아버님은 어떠세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사실 나는 3년 동안 걱정했다. 혹여나 아버님이 돌아가셨으면 어떻게 하나 싶은 노파심에 가슴을 조였다.
“응 당뇨 합병증으로 심근경색이 와서 걱정도 많이 하고 고생도 많이 하셨는데 누가 양파 껍질이 좋다고 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삶아 드렸더니 지금은 그것 먹고 많이 좋아지셨어.”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전화하면 한 전도사님보다 아버님이 받는 날이 많았다. “여보세요. 아버님! 저 선규예요.” “응! 선규. 그래 요즘 어떻게 지내. 살기가 많이 힘들지.” 아니라고 단언 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아니라고 토라져서 튕겼다. “아니요. 그래도 아직은 견딜 만합니다. 아버님! 식사는 어떻게 하셨어요?” “응! 지금 막 저녁 먹으려고 준비하고 있어.” 올해 김장은 어떻게 했을까? “아버님 김장은 어떻게 하셨어요?” “응 요즘 세상 많이 좋아졌어. 동네 마트에서 김치도 다 팔고 그때그때 사다가 찌개 끓여 먹어.” 아무리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 한들 어디 김장 김치만할까. “소문을 들으니 냉장고에 하나도 남아나는 것이 없다면서?” 언제 그런 소문이 그곳까지 날아갔을까? 싶었지만 웃자고 하시는 말씀으로 여겼다.
“그러게요. 밀가루 사다가 수제비 혹은 장떡 부쳐 먹고 된장사다가 된장찌개 끓이고, 무 썰어 생채 만들고, 콩나물 사다가 국 끓여 먹고 배추 사다가 겉절이 해 먹어요.”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올해 나이가 몇이지?” “마흔둘요.” “다들 빨리 결혼해야 할 텐데.” 죄송했다. “때가 되면 하겠지요. 아버님 그때까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할렐루야! 건강하게 잘 지내 좋은 일 있을 거야.” 기다림의 끝에서 좋은 일을 만나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공공연한 말이 비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