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길
어제 출간된 책을 윤 집사님 앞에 내놓았다. 이게 웬 책인가 싶었는지 아주 유심히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는 모습으로 묻는다. “이 분이 쓰신 거예요?” 기분이 묘했다. 뭐라고 할까. 마치 나를 시뮬레이션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 가슴은 뛰었다. 자신이 쓴 책을 다른 사람에게 준다는 것은 여간 마음이 뿌듯한 게 아니었다. 만약 마음에도 물이 흐르고 여울목이 있었다면 아마 하얀 물보라가 일어나고 만끽했을 것이다.
어느새 윤 집사님 입가를 주름잡아 반짝반짝 빛나는 깨알 같은 미소가 모래알처럼 부서지고 있었다. “저에게 주시는 거예요.” 윤 집사님은 마치 어느 문학소녀처럼 얼굴에 해맑은 빛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약국을 나와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문득 그 무엇인가가 손에 잡히듯 손 전화벨이 내 귀에 밟혔다. 누굴까 조심스럽게 상대방을 타진했다. “여보세요” 저 건너편에서는 귀가 빠지도록 기다렸다는 듯이 낯익은 목소리가 넌출 대고 있었다. “정 선규님이세요.” “예” “여기 약국인데요. 죄송하지만 아직 가까운데 계시다면 잠깐 오셨다가 가세요. 약이 약간 잘못돼서요.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그렇게 전화는 끊어졌고 이유도 알 수 없이 마냥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는 메아리만 남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윤 집사님은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는 듯 사실이 아닌 그 어떤 일을 마치 사실처럼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추었다. 급히 약을 꺼내어 살펴봤지만 글쎄 그 어떤 것도 미안하다는 말에 합치할 만한 것은 실수나 잘못은 손톱만큼도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씻고 봐도 어디 하나 흠 잡을 수 없을 만큼 완벽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가보면 알겠지 하는 마음으로 약국으로 향했다. 도착해서 약을 반납했다. 그때 마지막 한 사람 남아 있던 손님이 밖으로 나갔다. 윤 집사님은 때를 기다렸다는 듯 나를 불렀다. 나는 윤 집사님을 향해 가고 윤 집사님을 손에는 약이 아닌 또 다른 그 무엇이 있었다.
윤 집사님은 내가 사정권 안으로 들어서자 내 호주머니를 향해서 힘껏 직구를 던졌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게 아닌데” 내가 괜히 집사님한테 부담 준 것은 아닐까? 때 늦은 후회에 괜한 자책이 한없이 밀려왔다. 이때 누군가 내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짐작 컨데 받아도 되는 것이었을 거라는... 저는 요즘 시집을 받으면 책값을 드립니다. 간혹 안 드릴 때도 있지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편의 시를 쓰는 고뇌를 생각한다면 당연 ... 그 분도 그랬으리라는 생각입니다.”
그래 내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있었다. 주는 마음과 받는 마음은 하나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