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규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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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듬어 사위어 가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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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선규 |
추천: 0건
조회: 4307 등록일: 2017-03-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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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듬어 사위어 가는
길
세월호의 침몰 참사를
지켜보면서 사람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과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가늠하게
된다.
세상에는 내 힘이
미치는 일과 때가 있는가 하면 인간의 연약한 능력 밖의 일이 있다.
이를테면 천재지변의
일이나 하늘이 스스로 돕지 않으면 안 되는 인간의 능력 밖의 일이 있는가 하면 내 본연의 자리에서 주어진 시간 안에서 얼마든지 퇴선 명령과
아울러 구조 활동에 온 힘을 다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 한 목숨 살겠다고 직업의 가치관 생명의 존엄성 선장과 선원으로서의 승객의 안전 의무에
과한 지식은 전혀 초등학문에까지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선장과 선원으로서의
높은 자긍심과 탑승객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자신의 의무를 저버리는 다만 제 목숨만 살고자 하는 제 권리에만 눈이 어두워져
있었다.
정말 그 자리에
있어서는 절대 안 될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정신은
부패하여 냄새가 이 사회를 찌른다.
탑승객들의 살 권리에
비례하여 선원은 마지막까지 배에 남아서 마지막 탑승객 한사람까지 모두 구조하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했다.
이것이 바로 선원과
선장으로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권리와 의무가 아닐까.
선실에 있는
탑승객들에게는 무조건 위험하니 대기하라는 전혀 대책 없는 말만 되풀이해 발목 잡아놓았다.
이는 탑승객의 목숨과
제 목숨을 바꾸어 놓은 엄청난 범죄이다.그 시간에 퇴선
명령이나 구조 안내만 제대로 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들은 도대체 무슨
권리로 탑승객의 살 권리를 바다에 버리고 퇴선 명령은커녕 심지어 동료 조리원 2명이 머리를
다친 채 3층 복도에 쓰러져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그들만 빠져나와 서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안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한 마디 없이 유기하고 있었다.
지난달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지금까지 탑승객 476명 중 구조자 수는
172명이며,
사망자 수는
284명이
됐다.
제주도로 안산 단원
고등학교 학생과 교사 246명 승객
29명 승무원
6명에 아직 남은
실종자 20명을 더하면 총
사망자는 304명이다. 세상에 이 귀한
생명을 뒤돌아보지도 않고 자신들만 살고자 정신없이 도망하기에만 바빴으니 이것은 명백한 부작위 살인이다.
현재 선박직 선원
15명 전원 사선 변호인
없이 100%
국선변호인으서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릴 예정인 이들의 집중 심리를 기다리고
있다. 매우
뻔뻔하게도 마스크를 얼굴을
가리고 머리에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매우
당연하다는 듯이 겉치레 인사로 묻혀가고 있다.
“죄송합니다.
죽을
죄지었습니다.”
뭐가 그렇게
죄송하다는 말일까?
과연 자신의 죄를
알기나 하면서 죄송하다고 말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죄송한 줄
알면서 미필적 고의 살인을 했다는 것인가?
다시 말해서
탑승객들이 바다에 빠져 죽을 줄 알면서도 버리고 나왔다는 말이 된다.
매우
안타깝다.
눈물이
난다.
그래 말이
구조이지.
엄밀히 따지면 구조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다만 배 밖에
나왔거나 바다로 뛰어든 사람만 건진 것일 뿐이며 정작 선실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목숨을 잃고
말았다.
지금도 어느 곳에서
어떤 사건,
사고가
발생할지.
또 얼마나 죄 없는
사람이 희생을 당할지.
우리는 국가도 막을
수 없는 물질이면 다 되는 세상,
돈만 주면 무슨
짓이든 다 하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현실의
대란이다.
온갖 불법이
성행하므로 사랑은 점점 식어가고 정관계유착 속에 모든 국민의 안전은 죽음 가운데 내몰리고 있다.
퇴직 관료 출신이
버젓이 자리 잡고 있는 민간협회와 민간기관에서 바람잡이,
방패가 되어 예산을
때내고 편의를 제공해주는 관료요원으로 많은 활동하고 있다.
민생은 자꾸 바닥을
드러내면 반면,
돈만 주면 있는 죄도
없다 하니 과연 밑바닥 삶은 없는 죄가 된다.
이는
결국,
국민을 무기력하게
흔들어 놓았다.
세월호의 참사를
보면서 많은 국민은 울었다.
사는 것이
무엇인가?
왜
사는가?
사람은 왜 고통을
당해야만 하는가?
참,
살고 싶지
않다.
진정 신이 있다면
이럴 수가 있는가?
이렇게 살아서 무엇
하겠는가?
나라도 못하고 나도
막을 수 없는 이 재난 당하는 꼴 보자고 산단 말인가?
내 눈앞에서 바다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 내 새끼 같은 학생을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망연자실하며
무기력해진다.
4월은 잔인하게 희생의
도가니 속에서 들끓는다.
과연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
꼭 그래야만
했겠는가?
의문이
생긴다.
하기야,
나부터
죄인이다.
1999년 어느 봄날 후배가
집으로 찾아왔다.
“형,
큰일
났어.”
모든 세상 짐을 홀로
진 것처럼 스스로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발언에 나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왜 그런지 불길했기
때문이다.
“왜 무슨 일
있느냐.”
하고
물었다.
녀석은 잠시 말을
끊고 있었다.
차마 입 밖에 꺼낼
수 없는 가슴앓이가 맺혀 있었던 것이다.
“왜 말해
봐.
말하기 싫으면 다시
집에 가서 생각해보고 말 할 만하면 와라,”
했더니
“아니”
한다.
“그래 무슨 일인데
이렇게 뜸을 들여.”
“내 여자 친구가
임신했어.”
아뿔싸!
정신이 바짝
들었다.
그래 내가
미친놈이다.
싶었다.
왜 내가 진작 알지
못했을까?
아무리 제 동생의
친구로서 집에 드나들 때부터 알았어야 하는데 지금 알아버린 것만도 못한 때는 늦은 것이다.
동생의
친구이니까.
했던 것이 이 엄청난
결과를 자초한 것이다.
정말 하늘이 까맣게
암담하고도 멀기만 했다.
내 귓전에서는 벌레
울음소리가 윙윙 꺼리고 있었다.
차라리 기절이라도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나는 그날부터 긴
고뇌의 시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만
참,
참,
기가
막혔다.
내 동생 같아야
때려도 때리건만 때리지도 못하겠고 바라보고 있으려니 매우 힘들고 지루했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가슴 조여 오는
가운데 간신히 화를 삼키며 물었다.
“그래 내가 무엇을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니?
하지만 실제로 내가
녀석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떻게 하다가
그랬느냐고 가라앉는 목소리로 물었다.
“집에서 같이
있다가.”
한다.
그래 이게 다 어른들
잘못이다.
독채를 전세로 얻어
아이들만 두었으니 그럴 만하겠다.
싶은 마음에 나도
모르게 녀석의 부모님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밉기도 했다.
정말 이럴
수가!
정말 이럴 수는
없었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어떻게 꺼야 할지 전혀 가늠하지 못했다.
가장 쉬운 방법이라면
병원에 가는 것이지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자신의 임신에 이미
모든 충격을 다 받고 있는데 아이를 지워야 한다면 그 충격이 또 얼마나 클까?
어른들 말씀에 낙태나
유산은 해산하는 것과 같이 몸도 많이 축난다고 했는데 그건 둘째 치더라고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평생 씻지 못할 내
아이를 죽였다는 생각에 괴로울 텐데.
무엇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면 아직 학생 신분이라는 것이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배는 불러올 것인데.
그러면 학교도 못
나가고 퇴학당하고 말 것이다.
시간이
없다.
어떻게
할까?
차라리 내가 끝까지
몰랐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이미 엎질러
놓은 물 어찌하랴!
얼마나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겉에서 보기에는 전혀
배가 나온 것 같지 않고 그냥 살짝 살이 찐 듯했다.
오빠,
동생 하다가
여보,
당신 한다더니 꼭 그
짝이었다.
그래도
설마,
설마 하면서 여학생을
불러 일단 확인을 해야만 했다.
뜻하지도 않게 제
손으로 겉옷을 올리는데 보니 압박붕대로 칭칭 감아놓았다.
화들짝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녀석을 어떻게 할
수도 없고 급기야 목이 다 타들어 갔다.
나는 둘을 앉혀 놓고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할
생각이냐?”
둘이 눈치만 보고
있었다.
“네가
책임져야지.”
한마디 던졌더니
기어들어가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집에서 알면 큰일 날
텐데.
병원비도 없고
미치겠어.”
여자아이 쪽을
바라보니 고개만 떨군 채 울고 있다.
참,
참,
잘못하다가는 미혼모가
되겠다 싶기도 하고 애가 애를 낳아서 어떻게 기르겠는가?
싶기도 하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에 불장난 때문인 것을.
과연 결혼하면 둘이
잘 살 것인가?
학업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1년 휴학을 시켜야
하는 것은 아닌가.
머리가
어지러웠다.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웠다.
결국,
나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너희 둘이서 알아서
해.”
하면서도 마음이 전혀
놓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서로 원망하며 헤어지느니 같이 죽느니 사느니 하는지라 더는 두고만 볼 수 없어 결국 나는 아이를
지우는 쪽으로 유도하고 말았다.
참
비극이었다.
수술 후에 여학생은
매우 힘들어하며 밤낮없이 울어야만 했고 자신의 아이를 지웠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밥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그렇게 한고비 넘긴다
싶더니 웬걸!
또 한 녀석이 사고를
쳤다.
어떻게나 여자만 보면
껄떡거리는지 치마만 입었다 하면 물,
불을 가리지 않고
학생,
아줌마,
아가씨 가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무자비한
잡식성이었다.
그래서일까?
꽤 뚱뚱해 보이는
아가씨와 관계를 한 것이다.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게 다리맵시에
관능미를 따지며 잘 난체하더니 이게 도대체 무슨 자태인가?
답이 나오지
않았다.
물어보니 그러면
그렇지.
원수는
술이었다.
글쎄 얼핏 보기에는
임신한 것인지 원래 배가 나온 것인지 절대 가늠하지 못했다.
그런데 시간이
약이라고 하더니만 점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정신없이 배는 불러오고 녀석은 점점 초조하면서도 덜컥 겁이 나는지 나한테
매달렸다.
“형 나 어떻게
해.”
“야!
염라대왕은 다 뭐하고
너 같은 인간 안 잡아가고 직무유기 하는지 모르겠다.”
했다.
일단 그 아가씨를
불러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더니 결혼을 말했다.
하지만 녀석은 절대
결혼은 안 된다고 펄쩍 하늘 놓은 줄 모르고 뛰었다.
“이
미친놈아!
네가 책임져 그런
마음도 없이 사고 쳤어.
이 미련한
놈아!”
아가씨는 울고불고
난리가 나고 그렇다고 또 그렇게 쉽게 지우라는 말은 죽어도 하지 못할 것만 같았기에 말없이 등 들렸건만 참,
참,
참,
미칠
일이다.
아무리 아가씨가
매달리고 사정하고 애원도 해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자
내게 전화가 왔다.
아니 그래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또 내가 악역을
맡아야만 하는가?
남의 눈에서 눈물
나게 하면 내 눈에서는 피눈물 난다는데 꼭 이렇게 해야 할까?
삶이란 선택이라더니
무슨 경우가 다 이런 황당한 일이 있을까?
끝내 두 사람을
살린다는 명분 아래 아가씨를 설득해서 병원 안으로 밀어 넣고 말았다.
그리고 세월은 또
흘렀고 녀석은 내 친동생 같은 아이까지 그냥 두지 않았다.
착실하게 남자도
모르고 학교와 집밖에 모르던 애를 어떻게 사탕발림을 했는지 사귄다고 해서 반대도 하고 설득도 했지만 그게 운명이었는지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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