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이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다.
목사님이 나타나서 집행유예를 지금 주고 싶었으나 아직은 그때가 아니니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주겠다고 했다.
그 꿈 탓이었을까? 갑자기 재판 일정이 칠월 팔 일로 연기되었다가 그날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에서 징역 일 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젠 집으로 돌아가는가 싶었지만, 전혀 생각하지도 않은 복병을 만났다. 어디에 숨어 있다가 벌금 한 건이 추가로 뜨면서 한 발자국도 교도소 밖으로 나와 보지도 못한 채 사십오일 간의 노역을 살아야만 했다.
날마다 참고 또 참으며 오늘 아니면 내일 금방이라도 집에서 얼른 빼 주리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때 검찰 측 항소가 전해졌다.
얼마나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을까? 밖에 나가서도 재판을 받아야 하다니 만일 항소심에서 뒤집혀 실형이 떨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마음은 벙어리 냉가슴 앓듯 고단했으리라. 하지만 엎친데 덮친다고 했던가? 이것은 끝이 아니었다.
겨우 마음 추스르고 잘 지낼 만 하자 또 무슨 일인지 검사 출정이 떨어졌고 조사를 받으면서 이번에도 떠 벌금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첩첩 산 중 숨이 막혀 오면서 끝은 보이지 않고 암담하다. 일이 왜 이렇게 꼬이는 것일까? 밖에 나가면 좋을 것 같더니 오히려 나가도 걱정이고 그렇다고 평생 안 나갈 수도 없이 앞으로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하는 매우 난처한 입장이다. 재판도 재판이려니와 한두 푼도 아니고 몇 백 만 원 씩 하는 벌금을 도대체 어떻게 갚아야 한단 말인가.
얼마나 좌절과 절망이 되고 있을까?
“아저씨! 아저씨는 벌금만 털고 나가시면 되니까 우리 중에서 가장 마음 편안하고 홀가분하시겠어요.” 말 하는데 왜 그렇게 어린아이 혼자 물가에 세워놓은 것 같은 마음일까?
“창아! 네 꿈속에 목사님이 나타나셔서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집행유예를 주고 싶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니 조금 있다가 주겠다고 말씀하셨으니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그렇게 될 것으로 믿고 기다리고 있으면 시간이 다 해결해줄 것이니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나가서 자장면 배달하면서 장발장 은행에 알아 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받아서 해결해라.”
또 그렇게 힘든 하루는 저물고 이튿날 오후 도우미가 예수 믿는 사람들 명단을 가지고 다니며 외쳤다.
“기독교 집회 가실 분들! 나오세요.” 나는 다급하게 창이한테 물었다.
“창아! 오늘 기독교 집회 있니?”
“예, 영주 제일 교회에서 와요. 왜 그러세요. 아저씨도 참석하시게요? 가시려면 명단에 아저씨 이름이 있어야 돼요.” 나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글쎄 나는 안 부르네어제 들어와서 그런가.” “아저씨 교회 나가세요?” “응” “어느 교회 다니세요.” “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