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머니 표 김치
주인집 아저씨는 아침 일찍 밭에 나가셨다.
저녁 무렵이 되면 자전거 채소 자루를 자전거 뒤에
싣고 오셔서 살포시 마당에 내려놓으면 집안에서 볼일 보던 아주머니는 말없이 나와 다듬으셨다.
“아저씨여!
아저씨여!”
나는 그럴 때마다 잠시 책에서 눈을 떼고 밖으로
나갔다.
“예!
아주머니.”
“밥 해먹어요?
이거 우리가 밭에서 직접 농사지은 나물인데 갖다
먹어요.”
하시기에 바라보니 어린 열무와 푸짐한 상추가
산더미를 이루고 있다.
바라만 봐도 비빔밥 열 그릇을 벌써 해치운 듯 배가 부르고 행복에
겹다.
그렇지 않아도 병원 생활만 삼 년 넘게 하면서
목구멍에서 신물이 나도록 제일 먹고 싶었던 것이 채소였다.
대전에 있을 때 반찬이 떨어져 먹을 것이 없는
날이면 가까운 역전 시장에 나가서 상추 이천 원어치에 어린 열무 한 단 사다가 서너 번 물에 깨끗이 씻어서 고추장 한 숟가락 떨어뜨리고 참기름
한 방울 길게 떨어뜨려 비빔밥을 만들어 먹곤 했다.
그렇게 깊은 우여곡절이 있는 싱싱한 채소를 3년 끝에 영주에서 만났으니 그야말로 마음에 깊이 사무치는 느낌이
그지없다.
얼마나 그리웠을까?
얼른 씻어 풀냄새가 진한 향수처럼 우러나도록 큰 양
푼 이에 담고 참,
참,
말도 잘 나오지 않을 정도로 귀한 참기름 한 방울을
떨어뜨리기 위해서 오른팔을 하늘 높이 추어올리고 또 빨간 고추장 한 덩이를 오른손으로 힘껏 퍼 올려 마치 탁 트여서 시원하고 야성적이면서 성격의
품위를 지켜 거칠게 떨어뜨렸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돌리고 왼쪽으로 돌리고 열심히 비비는가 싶더니 머리를 양
푼 이에 처박고 그야말로 숨 한 번 쉬지 않고 목숨을 걸고 먹었다.
정말이지 한동안 아침,
점심,
저녁을 비빔밥으로 해결하는 시간이 한 달을 지나고
두 달이 되면서부터 얼마나 풀만 먹었을까 싶은 정도로 입안에서 풀냄새가 물씬 풍겼으니 진력이 날 만도 했다.
정말이지 이젠 채소 비빔밥과 이별을 하고 빨간 고춧가루에 빨갛게 버무려
놓은 김치 생각이 간절해진 탓으로 가까운 골목 시장에 가서 냉장고에 들어 있는 싱싱한 배추김치를 사 먹기로 했다.
바로 이때 주인집 아주머니는 언제 그렇게 내 속에
들어갔다가 나오셨는지 말씀하셨다.
“김치 있어요?”
나는 쑥스러워 죽겠다는 듯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김치요 없어서 못 먹어요.”
아주머니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묵은 지 좋아해요?
우리 집에 작년 십일월에 담은 김치가 있는데 그래도
괜찮아요?”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묵은 지만큼 좋은 찌갯거리도 없으니
주세요.”
아주머니는 이젠 알았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언제부터 반찬을 주고 싶어도 뭘 잘 먹고 안
먹는지 알 수 없어서 망설이느라 그동안 채소만 줬네.
그렇다고 욕하지 마.
돼지고기 사다가 찌개 끓여 먹고 떨어지면 또
얘기해요.
아직 몇 포기 더 남았으니까.”
냉기를 하얗게 뿜어내는 김치 냉장고를 아주머니께서
살짝 열고 김치를 꺼내 오시는데 빨간 국물에 숨을 죽이고 눈에 고인 눈물처럼 그렁그렁 잠겼고 김치 위에는 살얼음이 시원하게 덮여 있어 싱싱하게
느껴졌다.
보아하니 아주 무르게 익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아주 덜 익지도
않았는지라 줄기 한 입 꼭 집어 물 때 아삭아삭 파도 부서지는 소리가 넌출하고 잎은 씹을수록 씹히는 맛이 매우 차지고 질긴 듯하여 돼지 볼 때기 살을
연상케 한다.
“아주머니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