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대감
우리 동네 슈퍼에 고리가 살고 있다. 이름이 왜 고리냐고 했더니 집 잘 지키라고 항상 도둑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고리를 꼭 붙들고 있으라는 뜻이라고 일러주었다. 흰색 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선명한 것이 인상적인데 코가 좀 작아서 냄새를 맡는 데 지장이 있으면 어쩌나 걱정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녀석은 자리는 언제나 슈퍼 출입문 손잡이 아래 고상하게 앉아 있다가 사람 발소리만 나면 이 세상 개는 저밖에 없는 듯 의기양양하게 짖어댄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리를 보고 참 영특하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고 볼 때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한다.
녀석이 작년 여름 이 집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멋모른 채 방에다 두 번도 아니고 딱 한 번 내질렀는데 주인아저씨가 엎어놓고 종아리 몇 대 때렸다. 그렇게 방에서 쫓겨나듯 나왔다. 20여 분 지났을까? 인제 많은 반성을 했겠지 하는 마음에 그만 들어오라고 고리를 불렀다.
하지만 녀석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뜻밖의 일에 아저씨는 기겁을 하고 놀랐고 전 식구들에게 비상을 걸었다.
그런데 때마침 이웃에 사는 어미가 마실 왔다. 아저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인마 네 새끼 내 방에 오줌싸서 종아리 때렸더니 금방 어디로 갔는지 없어. 어서 가서 찾아봐.” 호통쳤다.
그리고 집 밖으로 나가는 어미를 따라가는데 난데없이 둥구나무 밑에 코를 들이대고는 킁킁거렸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까 둥구나무 아래에 지푸라기를 긁어모아 덮고 자는 것이 아닌가. 아저씨는 잠이 달아날세라 살포시 업다시피 해서 고리를 따뜻한 안방에 지그시 모셔다 놓았는데 그 후부터 녀석의 행동이 달라졌다.
오줌이 마려우면 꼭 그 앙증맞은 앞발로 방문을 긁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제는 개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게 아니고 사람이 개의 행동을 알아들어야 할 시대의 개막이 활짝 열렸다.
말하자면, 영특한 고리가 새 시대를 발굴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지금도 아저씨는 고리와 함께 행복하게 산다는데. 문제는 그 집의 문고리가 하루도 성할 날이 없단다. 왜냐하면, 고리가 늘 잡아당겨서 떨어지거나 뽑히는 것이 일상의 다반사인지라 아무래도 그 이름 고리라는 이름을 거두고 다른 이름으로 지어 주어야 하겠다는 주인아저씨의 얼굴에 붉은 화기가 달아오른다.
고리야! 앞으로 더 건강하고 씩씩하게 아저씨와 사이좋게 지내라. 그렇지 않아도 나도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애완견 한 마리 키우고 싶어지는 날이다.
이렇게 자신의 삶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어쩌면 살아가는 보람이며 살아야 할 남은 날들에 대한 소망으로 나를 살리는 일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