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의 이유
내가 몇 년 전 야베스 공방에 다니던 어느 날 아침 하늘은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먹구름이 잔뜩 낀 채 꾸물거리고 있었다.
덩달아 내 방도 칠흑같이 어두웠다. 시간을 모르면 낮인지 밤인지 분간이 안 되었다. 꼭 이런 날 지각하면 사람이 있다.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보니 어두운지라 아직도 밤인 줄 알고 다시 자는 것이다. 물론 집에는 손목시계 외에 다른 시계는 없다.
그러니 이 얼마나 착각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었는가? 밤에도 캄캄하고 새벽에도 캄캄하고 아침에도 캄캄하다. 말하자면 날씨에 속는 셈이다.
다행히 습관적으로 손목시계를 봐서 그렇지 안 그랬으면 또 지각할 뻔했다. 나는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매일 일등으로 출근하는 형님도 별수 없었다.
“야! 나 미치겠다.” “아침부터 무슨 엄살이 그렇게 심하세요.” “아침 일찍 일어났는데 방 안이 칠흑같이 어두운 거야. 그래서 출근 시간이 안 되었구나. 싶어서 또 잤지. 그렇게 자다가 주인집에서 떠드는 소리에 눈을 뜨고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니 이게 뭐야! 아침 8시가 넘은 거야. 그래서 아뿔싸!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인 줄 알았구나.
아침밥도 못 먹고 집에서 뛰쳐나와 버스를 타고 오면서 차장 밖을 보니까 그럴듯하더라. 어둑어둑한 분위기가 아직 날이 안 샌 것 같은 느낌 알지. 내가 속은 거야.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하든지 참 어렵게 먹고 살려고 하는 사람한테 하늘도 도움을 안 준다.”
나는 옆에서 키득키득 웃었다. 사람이 사노라면 이런 일 저런 일 다 있는 것이지만 날씨에 속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재미있다. 그래도 그 형님은 약과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30분이나 늦어서 택시를 타고 출근한 흐린 날이 있으니 그래도 그나마 좀 나은 게 아닌가?
사람에게 속고 세월에 속고 돈에 속는 사람 살아가는 사람들 없을 법 한 일이 있고, 있을 법 한 일이 없을 듯이 생겨나는 반전에 반전은 오늘도 우리를 웃고 울게 한다.
그런데 하얗게 안개 낀 날이면 나는 뭔가에 홀린 듯한 분위기를 타고 마치 한 대의 몽유병 환자가 되어 깊은 산 속에서 헤매다가 꿈결 속에서 돌아오고 싶은 낭만을 꿈꾼다.
왜냐하면, 그렇게 가는 길이 꿈길을 가는 것이고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 꿈의 매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음이 평안해지기 때문이다. 고요에 깊이 묻힌 듯한 매우 묘한 분위기 그 속에서 주인공이 되고 싶다. 이것을 굳이 말하자면 착각의 늪이라고 말할까? 쓰기만 잘 쓰면 어딘지 모르게 달라질 듯한 마음의 풍경소리를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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