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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의 작품읽기

정선규 시인
이것이 내 인생이다 2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7132 등록일: 2015-06-14

이것이 내 인생이다. 2

  나는 그렇게 삼봉병원을 등졌다. 삼봉병원에서 나와 사람은 사랑하는 집 人 愛 家 한방병원에 아주 안락하면서도 따뜻하고 온기가 활짝 피어나고 내 얼굴의 화기에서 붉은 꽃이 막 올랐다.

그 온기 하나도 없고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았던 삼봉병원 그곳에서 어떻게 지냈을까? 정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 자신이 다 낯설었다.

각 병실에는 환자가 직접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보일러와 천정에서는 끊임없이 따뜻한 바람이 내 영혼을 따뜻하여 적셔 내 몸이 평안하게 잘 들게 하는 능력을 유감없이 발산하고 있었다. 이 얼마나 의료서비스의 질이 향상된 세상인가? 첫날 환의로 갈아입고 따뜻한 기운이 감돌면서 잠이 소박하게 내릴 때 간호사가 들어왔다.

생긋생긋 웃는 얼굴에 생기발랄한 모습에서 일을 즐길 줄 알고 매우 친절하면서고 아주 상냥하게 대해주는 싹싹한 삶의 향기를 마음껏 찾아볼 수 있었다.

혈압재고 기본적인 몇 가지 질문하고 대답을 메모지에 적어 넣고 가지고 있는 약을 일단 자신들이 무슨 약인지 어디에 아파서 먹는 약인지 담당 의사와 상의하여 돌려주는 듯했다.

나를 처음 본 간호사는 어디가 아프세요?” 물었고 나는 허리의 통증이 꼭 다 낡은 섬유질에 짜깁기하듯 촘촘하게 붙여오는 것 같습니다.” “또 다른 불편한 데는 없으시고요.” “과민성 대장증후군이 있습니다. 여기 가톨릭 병원에서 찍은 CD입니다.” “주세요. 다른 것은 없으세요. 있으면 있는 대로 다 주세요.” “없습니다.” 에스더가 떠올랐다. 에스더 414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그동안 인애가 한방병원을 내가 우연히 다녔었던 것이 아니구나.󰡓 이때를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 이윽고 시간은 흘러 530분이었다. 병실 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아주 따뜻하게 보이면서도 앙증맞게 모자를 쓴 식판이 배달됐다. 밥그릇을 살짝 보듬어가니 어디에서 오는 열인지 매우 부드럽고 유순하게 피어오르는 온기에 저절로 쏟아지는 잠을 자며 아주 좋은 꿈만 꾸었으면 하는 소망이 불타올랐다.

밥공기 머리 위에 씌운 작은 모자를 들춰내자 정말 윤기가 좌르르 흐르다 못해 윤택한 가운데 은총이 가득한 하얀 밥이 가지런하면서 그렇게도 먹음직한 자태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밥상 받아보기도 참 오랜만이다. 가만히 앉아서 다소곳이 다가와서는 미를 자랑하며 입맛 돋아주는 아주머니의 손맛이라. 이 얼마나 큰 복일까? 왕 같은 제사장의 밥상이라. 무지하게 살아나는 입맛으로 당긴 채 이보다는 더 좋을 수 없는 황홀경에 빠졌다.

식사를 마치고 이 세상에서 최대한으로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웠다. 지그시 두 눈을 감았으며 넌지시 꿈을 기대하는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이게 얼마만의 휴식이든가. 얼마나 그리운 여정이었든가. 보일러를 켜니 정말 우리 시골집 향기가 물씬 났다. 아니 바로 내 고향 집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이제 서서히 따뜻함으로부터 부풀어 오르는 포만감에 젖는 순간 온몸은 마그마처럼 아주 뜨거운 열정을 다하는 가슴의 절정에서 숨 가쁜 마음은 터질 듯했다.

이튿날 외출했다. 내 일상을 그대로 끌고 가기 위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애써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집필했을까? 바로 그때였다. 누군가 뒤에서 툭 하고 치기에 뒤돌아보니 그 인상 좋은 남자 인상이 형님은 퍽 걱정이 되는 듯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정선규 씨 어제 어디에서 잤어?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 밥은 먹었어.” 급물살 타듯이 많은 걱정의 말이 터져 나왔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이렇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제 바로 인애가 한방병원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형님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걱정돼서 와 봤어. 열심히 해.” 무척 따뜻한 손으로 내 등을 토닥거리며 어디론가 간다고 갔다. 정말로 참말로 내 기분은 어리둥절하게 밀려들어오는 아주 묘한 감정이 되었다.

이때 손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정선규 님이세요?” “예 그런데요.” “여기는 인애가 한방병원인데요. 지금 어디 계세요.” “! ! 지금 도서관에 있습니다.” “거기서 무엇 하세요. 빨리 병원으로 들어오세요.” 순간 황당하면서 도대체 이게 무슨 난리일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다급하게 들려오는 간호사의 목소리는 나를 더 궁금하게 만들었다.

201311월 초 쌀쌀한 늦가을의 바람을 가로질러 병원으로 뛰어갔다. 그런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막내 간호사와 입원 당시 내 혈압을 측정했던 간호사가 나란히 간호사실에 앉아서 나를 숨을 헐떡이며 들어오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그것 봐. 내 말이 맞지.” 하더니 빨리 들어가 보세요. 지금 저녁 갖다 놨으니까. 식기 전에 어서 가서 드세요.” 화를 내고 싶어도 화를 낼 수 없는 것이 글쎄 뭐랄까? 지금까지 내가 한 번도 맡아 볼 수 없었던 그 이름 모를 향기가 물씬 배어 나오는 두 사람 얼굴을 아무리 뜯어봐도 절대 실없는 사람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내 마음의 등불처럼 환한 빛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제 내일 월요일부터 빠듯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7시에 아침 먹고 8시에 침 맞고 오전 103층 물리치료실에 내려가서 물리치료 받고 오후 12시 점심을 먹고 1230분경에 침 맞고 부항 뜨고 오후 5시 침 맞고 530분에 저녁 먹고 차질이 빚어지고 있었다. 도서관에 갈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월요일 아침 간호사 팀이 회진을 도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무 설명도 없이 외출하지 말라고 호들갑 떨었다. “정선규 님! 지금 일이 중요해. 건강이 중요하지. 쉬었다가 다시 몸이 좋아지면 그때 해.”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이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꼭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아주 몽롱한 기분이랄까? 끝내는 외출 삼가기로 하고 시집살이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아무 생각도 없이 병실에 누워 텔레비전 보는데 손전화가 울렸다. 진하 형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지금 뭐 해.” “텔레비전 보고 있어.” “재미있어.” “아니” “심심하겠네.” “그렇지 뭐.” “그럼 생들이 화장품한테 가서 놀아.” “오늘 토요일이라 쉬는 날이잖아.”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분명히 전화번호는 진하 형 것이 맞는데 형은 문자 보낼 줄 모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보다도 더 빠르다. 누군가 진하 형 손 전화를 빌려서 진하 형을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말이지 어떻게 생들이 화장품을 알았을까? 범인은 알만했다.

생들이 화장품은 2층 외래 간호사를 말한다. 어떤 손님이 가든 항상 미소 짓는 얼굴로 맞이하고 참 싹싹하기도 하고 마음과 얼굴이 참 고왔다. 그런 의미에서 칭찬하느라 내가 지어준 별명이었다.

그런가 하면 나만 볼 때마다 끼니 거르지 말고 삼시 세 때 잘 챙겨 먹으라고 잔소리하는 간호사가 있는가 하면 내 혈압 측정하더니 갑자기 저혈압이 나온다며 7층 병실에서 6층 간호사실을 뛰어서 오르내리며 울상이 된 채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천사는 "어떡해. 어떡해." 어쩔 줄 몰랐다.  식당 아주머니 인심은 매우 후한 밥상에서 흘러나왔다. 간호사 팀장은 항상 밤에 잠이 오지 않거나 허리 통증이 있으면 밤 10시에 간호사실로 전화해서 진통제 놔달라고 하세요. 일일이 많은 신경과 배려를 해주었는가 하면 어느 백의의 천사는 진통제를 맞을 때마다 문지르세요. 안 문지르면 안 돼요. 신신당부하면서 끝까지 엉덩이에 주사 맞은 자리를 잘 문지르는지 안 문지르는지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제대로 안 한다 싶으면 내 옆으로 와서 바짝 와서 문지르세요. 안 그러면 살이 딱딱해져요.” 노래를 불러주었고 나이 든 작은 팀장 간호사는 항상 이렇게 운을 띄었다. “침 맞으니까 좀 어떠세요? 물으면 나는 글쎄요.” 거드름을 피웠고 그럴 때마다 으레 팀장은 넌지시 말 했다. “맹 그래. 하곤 했다. 팀장은 그 어디를 봐도 말투에서부터 구수한 어감에 이르기까지 큰 누님과 똑같았다. 우연히 간호사 앞을 지나가다가 자기들끼리 하는 말을 들으니 이게 다 조정희 간호사의 부탁으로 이루어진 작품이었는데 혹시라도 내가 술 마시고 삼봉병원에 찾아가서 사고라도 칠세라 그렇게 묶어 놓은 것이다. 도망가 봐야 역시 부처님 손바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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