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9
빈가지라도 만나야
바람은 소리 내어 운다.
추녀 끝에 비도
물위에 떨어져야
아름다운 물방울소리를 낸다.
소리란 그런 것이다
만나서 나는 것이다.
만나야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것이다.
여인아,
지천이 꽃인 봄에도
꽃 한 송이와 세상을 맞바꾸려는
어리석은 남자하나 보걸랑
말리지 말고 그냥 두어라
그에게도 언잰가는
추억이 아련한 일몰의 시간이 오리니...
아름다운 일몰을 구경하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거니와
아름다운 일몰이 되는 것도
극히 아름다운 일이다
나는, 어느 산골의 적막한밤에 들었다가
추억이 고운 사내의 가슴에 부딪어
미소 지며 깨어나는
나즉한 사랑의 소리를 들으며
저물고 싶다.
지금, 한 잔의 술을 마시는 일은
술이 고파서가 아니다.
주려서 오그라든 사랑의 공간에
술이라도 채우자는 일이다.
술주정도 못하는 시인이
무슨 놈에 시를 쓸까만
자꾸만 사위어가는 그리움이 서러워
그리운 시라도 쓰자는 일이다.
가물거리는 얼굴하나
애써 붙잡고
아직은 기억 속에 있어달라며
통사정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