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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학 시인
전기 이야기
작성자: 문재학 조회: 3699 등록일: 2015-03-18
전기 이야기|★....일반 게시판
소산/문 재학 | 조회 1233 |추천 0 |2013.09.21. 09:54 http://cafe.daum.net/enkamom/KWfw/13163 

전기(電氣) 이야기

           소산/문 재학

 

형광등 한 개가 깜빡거리더니 결국 탈이 나버렸다.

새것으로 교체해도 불이 오지 않았다.

형광등 끼우는 틀이 나무로 되어 있어서인지 약간 검게 그을렸는데,

아무래도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형광등 한 개로 책을 보거나 조금 더 작은 물체를 보려면 돋보기를 사용해도 눈이 침침하여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형광등 전체를 새것으로 교체하고 싶어도 전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망설여진다.

 

전기 업자를 부르고 싶어도 형광등 한 개 가지고 와달라고 부탁하기는

미안하고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리라 미련을 부려본다.

 

6.25동란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숙제를 내어 주면 그을음을 내는 등잔불

(나무로 된 등잔걸이에 접시를 약간 기울이게 하고, 그기에 피마자기름을 담고 솜으로 심지를 만들어 불을 붙이면 기름이 있는 한 불이 꺼지지 않음) 아래서 숙제를 했다.

 

불을 켜기는 해도 어둠을 약간 밝히는 정도로서

바늘에 실을 끼는 것도 어려웠다.

 

석유를 구하게 된 후 부터는 호롱불(역시 등잔걸이에 사기로 된 호롱에 석유를 담고 솜으로 된 심지를 끼워 불을 붙임)을 켰는데 불꽃이 큰 탓인지 접시 등잔불 보다는 훨씬 밝았다.

 

등잔불을 벗을 삼아 어머니는 동지섣달 긴긴 밤에 주무시지 않고 자정이 넘도록 물레를 돌려 실을 뽑거나 베를 짜고,

아버지는 새끼를 꼬셨다. 때로는 어린 필자를 불러 가마니를 짜기도 했다.

 

모든 것이 자급자족 하던 시절이라 눈만 뜨면 쉬는 일 없이 누구나 무슨 일이던 항상 일을 했다.

비록 등잔불이지만 익숙해서 그런지  그때는 별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화학섬유가 없던 시절이라 여름이면 삼베옷. 겨울이면 무명천에 솜을 넣은 핫바지를 입었는데,

천연섬유가 위생적으로는 좋을는지 모르지만, 얼마나 빨리 해어지는지 누더기처럼 기워 입어야 했다.

 

또 물감이 없어 염색을 못하니 잔치 때나 市場 등 사람이 모인 곳은

사람들이 모두 하얗게 보이니 白衣民族이라 부를 수밖에 없었다.

 

겨울에 추울 때는 목욕시설이 없어 소죽솥에 물을 데워 목욕을 해야 할 정도로 목욕을 자주 않으니 이(기생해충)는 얼마나 생기는지

밤이면 옷의 솔기에 하얗게 슬어놓은 서캐(이의 알)를 호롱불에 갖다 대면

서캐 터지는 소리가 타닥타닥 속 시원하게 태우기도 했다.

 

칠흑 같은 어두운 밤에 이웃집에 갈 때는 등불(사각형 나무틀에 문종이를 사방에 붙이고 가운데 호롱불을 넣음)을 들고 가다보면 비탈길에서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 한 것도 부지기수였다.

 

잘사는 집에서 사용하는 남포등(남포에 켠 불)은 유리로 되어있고,

심지가 굵어 얼마나 밝은지 그것은 항상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50년대 후반 중학교시절 겨울방학 때 부모님을 졸라 대구시에 계시는 사촌 형님 집(봉덕동)에서 삼덕동으로 학원을 한 달 다닌 적이 있었다.

 

밤에 대구역 앞 깡통시장(지금의 교동시장인데 그 당시 美製品이 많이 거래되는 곳이라 그렇게 부른 것 같음)에 한번 가본 적이 있는데,

 

전기불이 대낮처럼 환하게 켜놓으니 호롱불에 익숙한 눈이라

처음 보는 별천지. 천국에 온 것처럼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그야말로 상품들이 살아 숨 쉬는 것 같았고, 상인들 표정도 밝아 보였다.

구경 하느라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헤맨 적이 있었다.

이곳의 상인이나 물건을 사려오는 사람들은 정말 행복한 사람으로 생각했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싼 전자제품을 사려 교동시장을 찾기는 하지만

이제는 슬럼가라 생각할 정도로 초라하게 변해 버렸다.

 

60년대 초중반 서울에 遊學시절 기차로 서울을 다녔다.

대구 달성공원 부근에 오촌 숙모님 댁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대구역(동대구역은 없었음)에 도착하여 밤 11시 18분 중급행 열차를 타면

서울역에 아침 6시경에 도착했다.

 

(중급행 열차는 자석제가 아니라서 승차는 그야말로 전쟁 이였다.

운이 좋으면 대전서 내리는 손님 자리에 앉을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밤새도록 덜커덩거리며 뜬눈으로 서울역에 내리면

눈은 십리나 들어가고 초라한 몰골에 피로를 한 아름 안고 내려야만 했다.)

 

고속도로는 이야기조차 없던 시절이라 버스도 없고

기차만이 유일한 서울 가는 교통수단 이였다.

 

물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낮에 다니는 특급열차 “재건호”(새마을호 전신) 탈 수 있었지만, 돈 없는 필자에게는 아예 생각조차도 할 수 없었다.

 

또 낮에 다니는 서민들의 생업열차 완행이 있긴 하지만, 역마다 쉬어가고 많은 사람이 타고내리면서 서울까지 12시간을 교통지옥 속에 보내야 했기에 완행열차도 타려고 하지 않았다.

 

서울 영등포 노랑진에서 한강철교를 지나면 한강의 수면위로 쏟아지는 서울의 야경이 그냥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다.

그 당시 여의도는 수해 상습지로 집 한 채 없는 不毛地였다.

 

한강의 다리는 차와 사람이 다니는 제1한강교와 기차가 지나는 철교. 단 2개뿐이고, 광나루 앞 강원도로 가는 천호대교가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다. 제3한강교는 공사 중이였다.(참고로 강남의 봉은사 절에 가려면 뚝섬유원지에서 나룻배를 타는 것이 유일한 방법 이였다.)

 

일가친척 하나 없는 서울 바라보는 것만으로 일말의 두려움이 가슴에 일렁이었다.

저 많은 불빛(비록 새벽이지만)속에 내가 쉴 안식처가 없다는 것이 못내 씁쓸하기만 했다.

 

그 당시 서울인구가 300만 명(통계상 1960년도 인구가 245만 명이였음)정도로 되었을 것으로 추정해 본다.

 

아파트는 이름조차 생소했고 아파트 단지로는 새로 조성하는 반포 아파트이외는 아파트 단지 라고는 어디에도 볼 수 없었다.

 

60년대 후반기 필자가 공직에서 처음 맡은 업무가 電化事業 이였다.

시골이라 군청소재지에는 전기가 들어와도 오후 8시에 들어오고 밤 10시가 되면 전기가 가버리는데, 그것도 전압이 낮아 형광등 경우는 오후 5시경에 미리 켜두어야 불이 켜질 정도로 전기 사정이 劣惡했다.

 

(참고로 그 당시 TV나 냉장고 등 전자제품은 구경조차 힘들었다.

서울도 잘사는 집이나 일부 다방에 작은 흑백 TV가 가끔 있을 정도였다.)

 

군청 소재지를 벗어나 5개 마을에 처음으로 시작하는 電化事業,

外線공사는 한전 부담이고 인입선부터 內線공사는 모두 수용가 부담인데,

 

매월 내야하는 전기요금이 비싸 (지금까지 전기 없어도 잘 살아 왔다고 핑계를 대면서)전기를 넣지 않으려고 하여서 설득 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래도 공사를 완료하여 전기가 들어오는 날은 客地에 나간 자식들은 물론 일가친척도 찾아오는 등 온 마을이 환호 속에 잔치 분위기였다.

 

새로운 천지가 전개되니 전기료 걱정은 일시 접어두고 모두 서로 손을 붙들고 이집 저집을 다니면서 좋아 하는 것을 보니 일의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전기를 넣는 집도 전기료 절약을 위해 큰방과 작은방 사이,

또는 방과 부엌사이의 벽에 구멍을 뚫고

壁 가운데 전구를 달아 2곳을 동시에 이용하는 집이 많았다.

 

그렇게 사용해도 호롱불보다는 몇십 배 밝다고 좋아 했다.

지금 생각하면 失笑를 금치 못하겠지만 그 당시는 그렇게 했다.

 

 

벌써 50년이 다되어 가는 옛날얘기다.

 

필자의 고향 마을은 100여 호나 되는 비교적 큰 마을이고 군청소재지에서 가까워도(5km 떨어짐) 1972년도에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와 호롱불의 한을 풀었다.

 

전기가 없으면 어떠할까

상상만 해도 끔찍한 원시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아파트 등 주거생활의 불편은 물론 모든 산업현장이 정지되고,

컴퓨터로 제어되는 교통과 통신. 항만과 항공업무. 은행업무 등등

각 분야에 수작업이 가능한 것이 있더라도 거의 마비될 것이다.

 

비록 酷暑期 나 酷寒期의 冷煖房 성수기에 전력대란을 막기 위해

정부에서 전기 절약 캠페인을 벌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일반가정에서는

모두들 여유롭게 전기를 사용하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아무튼 전기에 대한 고마움을 다시 한 번 깨닫고 더불어 살아가도록

정부시책에도 적극 협조하여야 하겠다.

 

일본의 원전사고 우리나라의 원자력 발전소 가동 등

최근의 밀양의 철탑설치 등 전기에 관련된 여러 가지 憂慮스러운 일이

일어나기에 전기에 대해서 잠시 회고해 보았다.

 

                                           2013년 9월 21일
 

 
 
 
전포동 동내 13.09.21. 11:07
지난 역사책을 읽고 있는 기분 입니다.
 
김영배 13.09.21. 11:17
1. 정말 실감나는 말입니다. 1950년 이전세대들은 충분히 듣고 보고 느꼍든 사실들이다. 동감하고 그때일들을 생각하고 우리후손들은 좋은환경 좋은 세상많났으니 열심히 노력하고 좋은환경에 있다는것을 깨달아 주었으면한다. 지금 아무리 일자리없다고 해도 그때그시절 문전옥답(좋은농토)도 산업사회에 밀려 버려진 땅도 많다. 그리고 농촌에 가면 일손이 부족하여 다민족(외국인근로자)이 많이 대신해주며 조금힘든일들일랑 거의 다민족들이 하고 있으며 불법체류자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들 한다. 정말 아껴쓰고 나눠쓰고 또 좀더 우리자신들을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두서업는 말을 지면에 올려서 비난하실분도 있을지모르지만!~-
 
김재찬 13.09.21. 13:18
부족한 가운데에서도 북한에 있는 개성공업단지가 우리의 전기로 가동되고 있답니다. 부족한 전기에 대한 대책이 빨리 나와 전기걱정 하지 않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진도 대교 아래(울돌목?)의 밤낮 끊임 없는 조수의 급물살을 볼 때마다 부족한 전기 생각이 나는 것은 무식한 소치일가요? 공감되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종은 13.09.21. 15:34
요즘 참살기좋죠. 호롱불 켜놓고 공부하다 자고나면 콧구멍이 새까맡게되죠 그리고 가난한시절이라 어머니들은 새벽에 호롱불 아래서 밥에안칠 무우를썰었고 아버지는 새끼를꾸던시절 그땐 정말배고프던시절이었다.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행복이넘친다.
  소당/김태은 13.09.22. 10:57
합천 시골에서 한양으로 공부 시킨 부모님 !
덕에 ...일류학교에 무난히 졸업하신 소산 시인님은
천부적인 재능이 있으십니다 잊지않으시고 모두 기억
하시여 글 로 옮긴다는것은 쉬운 일 이 아니지요 의리
있으시고 강직하시고 ...참으로 존경합니다 아들 또한
미남이고 효성스러우니 부러울게 없으신 문재학 시인님!
읽고 또 읽고 ...하나의 드라마 같은 내용입니다 수고 했어요  
김영식 (10회)) 13.09.21. 17:13
내 어릴적 추억이 주마등처름 한폭의 그림으로 살아 나네요~~건강하게 잘 지내시고 있죠? 항상 건강하세요~~^^
 
문경자(21회) 13.09.22. 10:00
전기의 소중함을 알고
아껴쓰는 지혜도 배웠습니다.
호롱불 아래서 바느질을 하던 어머니 모습이 선하게 떠오릅니다.
바느질은 전깃불보다는 호롱불아래서 하는 모습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
선배님 명절 잘 지내셨지요.
고향의 추석날이 생각납니다.
김원형 13.09.21. 21:30
지금 80십대 노인들이 15~6세 시절 격은 이야기네요 실감있게 잘 표현했네요. 감사합니다.
추풍령 13.09.21. 22:08
그때 그 시절 삶의 모습을 잘 그리셨네요. 그 실상이 글과 같았읍니다.
 
고향산지기 13.09.23. 05:42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옛날 생각을 되살려 주시네요 감사 합니다  가을하늘 13.09.21. 10:50
전기에 대한 고마음을 다시한번 노껴집니다
즐거운주말 되세요~~
 
겨울 남자 13.09.21. 12:34
지금 생각하면 그시절 어떻게 생활했는지...
전기 소중함을 알고 가렵니다 감사합니다
사피엔스 13.09.22. 14:49
문재학 시인님, 고맙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당연한 듯 사용하는 전기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되는군요...
전기가 없으면 컴퓨터, 인터넷은 커녕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을 것 같네요...  
산구름 13.09.21. 09:54
옛날 시골시절 생각이 절로 납니다
호야라는걸 썼는데 왜그리 잘깨지는지..
종병에 석유사러 읍내에 나가던 그시절,
이젠 먼 추억이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세요~러브

협원 13.09.21. 20:05
문명의 이기는 전기에서 부터 시작하고 전기없인 하나도 이루어 지지 않읍니다
햇빛처럼 무심히 사용하는 전기 아끼고 절약하면서 전기.사랑했으면 좋겠읍니다
황토 13.09.21. 11:11
저보다 한세대를 앞선 얘기입니다.
저희 마을에도 70년대 초반에 전기가 들어 오기는 했습니다.
그 전에 석유등잔과 남포불을 사용한 세대였지요.
지금과 같은 생활양식에 전기가 없다면, 상상이 안가는 일들이 벌어지겠지요.
있을 때 잘해. 라는 말이 전기에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옛날의 살던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所向 정윤희 13.09.21. 11:46
제가 태어난 시기는 60년대 초라..생소한 이야기입니다,,ㅎ
봉덕동,,?
언제까지 사시었나요^^*
전기는 매우 소중하지요
저 역시 초등시절,,,TV ㅎㅎ 보고 싶어 안달 했더니..
결국 부모님이 해결해주셨는제,,저녁만 되면서로 야단이.전 도시 출신이라,,시골에 가면
호롱불 보고 웃어요..신기하더군요ㅡㅡ
선생님 추석연휴 잘보내셨는지요
 
썬파워 13.09.22. 00:36
문명의 발달로 많은 혜택을 보며 살고 있지만
그 고마움을 당연한 것 처럼 알고 살아가는 것이
이 글을 읽고나니 새삼 스럽게 더 감회가 새롭습니다.
추억을 되새겨보는 좋은 글에 머물러봅니다.감사합니다
청암류기환 13.09.21. 10:13
고운 글 올려 주시니 늘 고맙고 감사합니다.
옛날을 회상하는 전깃불 공감합니다.
 
황초롱이. 13.09.22. 21:46
지금은....정말....전기가 지천(?)이니......고마운줄 몰르지염.....소산님......
문명의 이기.......그대신....없어진다면......대혼란이지염......^^;
노을연가 13.09.21. 23:01
오래전 아주 오래된 얘기를 올려주심 감사 합니다 문재학님~
 
밤안개 13.09.21. 12:01
그런대요,
하절기 동절기때만 되면 전기가 모자라서
난리들을 치면서 왜 발전소는 안만들까요,
남의 나라에 원전 수주했다고 떠드는 기술있고
경제는 세계 몇째니라며 자랑들하면서
왜 발전소는 안지어, 아니면 못지어
님비현상 때문일까요, 답답하네요,
그렇다고 이렇게 때마다 곤욕을 치러서야..
무슨 수 를 써서라도 만들어야지
언제쯤 이 후진국형 피곤이 해소될려나..
 
고드미 13.09.21. 10:56
소산/문재학님~
마치 옛날 어린시절로 되돌아가
가난했던 그시대를 들여다 보는듯하네요.
불과 몇십년전 밖에 안된 우리들 삶이었지만
아득한 옛날이 되어 버렸지요.
옛시절을 생각하게 하는 님의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남강 13.09.21. 11:46
중학생 시절에 우리 동내에 전깃불이 들어오던날
환해진 불빛을 보며 기쁜 마음으로 서성이던 그 시절이 문득 떠오릅니다..
세월은 흘러 이리 좋은 세상에 우린 살고 있으니 그 시절이 정겹기만 하지요..
그 세월의 길이만큼 마음속에서 농익고 우리들 영혼속에서 가는 날까진 함께할 것입니다..^^
 
태백 13.09.21. 19:13
귀감이 되는 오래된 이야기 글로 표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유경용 13.09.22. 21:09
지금과 같이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던 지난날 어려운 가난의 어린시절 시골에서 자랐을때의 풍경을 나타내신 글 잘 보았습니다...
규자리영
13.09.21. 09:19
전기 없을때 어떻게 살았나 싶어요. 이제는 익숙하고 소중한 것들이고 우리몸에 한부분을 찾이 하고 있네요....즐거운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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