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석양에 피는 꽃이고 싶다
민문자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평생 삶의 지혜를 터득하기 위해서 공부하며 사는 생명체입니다. 영유아기에는 가정에서 부모에게, 아동기부터 청소년기까지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교사의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그리고 부푼 꿈을 가슴에 안고 사회에 진출하여 수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의식주 해결을 위한 직업을 찾고 결혼도 하면서 삶의 영역을 넓혀갑니다.
그런데 저는 어릴 때부터 못난 사람이라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허약한 체질로 태어나 성인이 될 때까지 늘 소화불량과 감기에 시달리고 여름이면 학질을 앓았습니다. 건강하지 못하여 정신도 허약했던지 남 앞에서 말 한마디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고 노래 한번 못 불러보았습니다. 아마도 보고들은 것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노래 잘하고 그림 잘 그리고 글씨 잘 쓰는 사람이 참 부러웠습니다.
일본의 식민지 치하에서 가난한 농부의 맏딸로 태어나 언니 오빠도 없이 라디오는 물론 다른 매스미디어 같은 대중매체와는 먼 세상에서 자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매사에 자신감이 없고 의기소침하여 소극적인 성격을 지니고 사회성이 약한 소녀로 자랐습니다. 늘 주눅 든 모습이었으니 오죽하면 무슨 죄지었느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중년 이후 한 분의 시낭송가를 만나고부터 저의 가슴이 환하게 열리고 용기가 났습니다. 늦은 나이에도 가슴은 푸르러 시 공부에 입문하고 시를 좋아하고 시낭송을 좋아하다 보니, 먼 거리도 마다치 않고 좋은 스승님들을 찾아다니며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무대에도 서서 시낭송도 하고 기회가 와서 후배들 지도도 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못났다는 자괴감에서 해방되어 이제는 매달 정기적인 ‘시사랑 노래사랑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시낭송을 즐기는 취미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가곡의 신작 발표의 장이라 할 수 있는 ‘시사랑 노래사랑’ 정기적인 프로그램에 시낭송할 후배들을 추천하고 그 친구들과 함께 시낭송과 가곡이 어우러지는 즐거운 시간을 공유하고 행복감을 맛보고 있습니다. 이런 시간이 오래 계속 이어지자 저의 졸시가 내로라하는 작곡가의 작곡으로 아름다운 소프라노나 테너나 바리톤 노래에 날개를 달고 가곡이 되었습니다.
「그대의 향기」 「오솔길」 「구마루 언덕」 「태극기」 「늦가을」 「천년의 사랑」 「어머니 사랑합니다」 「시꽃」 「결혼하는 신랑 신부에게」 「겨울꽃」 등은 C/D까지 나온 가곡의 제목들입니다.
이제는 노래 못하는 제가 부끄러운 마음을 숨기며 어느 모임에서라도 시낭송 하나쯤은 할 수 있으니 꿩 대신 닭은 잡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도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자긍심으로 주위의 후배들에게도 시낭송의 기쁨을 계속 전파하며 그 호응에 늘 감사합니다.
어릴 때 선생님께서는 국어책 몇 페이지부터 몇 페이지까지 열 번씩 써오라는 숙제를 자주 내주셨는데 저는 늘 그 숙제가 버거웠습니다. 친구 영자는 언제나 예쁜 글씨로 숙제를 빨리빨리 잘도 해냈습니다. 하루는 영자에게 저의 숙제를 부탁했는데 자기 것은 예쁜 글씨체로 잘 해놓고 엉망인 글씨체로 써주었습니다. 그래도 화도 못 내고 몹시 속상해하던 그날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어린날의 그 추억은 용기를 내어 늦깎기 공부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오래전부터 우리 지역의 평생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한글서예와 한문서예와 사군자 공부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짬을 내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책가방을 들고 오가는 학생이 되었습니다. 이런 것은 어릴 때 배웠어야 할 공부였는데 이제 배워야 하는 자신을 생각하며 참 딱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하고 싶었던 공부를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저에게 공부란 요람에서 무덤까지 세상사는 지혜 터득하기라고나 할까요, 즐거운 마음으로 노년을 살고 싶어 존경하는 스승과 함께 때로는 특강과 서화작품 전시회에 참여하면서 예술부문에 가까이 가는 공부를 합니다.
한지 전지 한 장에 가득 차는 졸시 「태극기」를 한 학기 동안 쓰는데 한글 궁체로 제대로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은 남의 글을 쓰지만 내 글을 쓴다는 자부심으로 6개월 동안 120번 이상 열심히 썼는데 작품 한 장 제대로 못 써내는 둔재입니다.
‘선비는 시서화에 능해야 한다’ ‘선비는 아무나 될 수 없는 것이로구나’
감히 내가 선비 욕심을 내?
그렇지만 마음먹은 대로 잘 써질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둔재의 뚝심으로 쓰고 또 쓰렵니다. 그래도 이렇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에 감사하며 오늘도 내일도 즐겁게 공부할 것입니다.
<한국수필작가회 2018 동인지/낯선 곳에서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