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어
민문자
어둑해진 다음 귀가하고 보니 아파트 경비실에 웬 택배가 왔나?
네모진 상자가 꽤 묵직도 하구나
청어 / 20
청어(靑魚) 스무 마리?
검푸르고 은빛 나는 물고기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생선 맛은 청어가 제일 좋다고 하셨던 어머니 말씀이 퍼뜩 떠오른다
“일제강점기에 그 맛있는 청어는 일본인이 다 가져가서
우리는 그 청어를 먹을 수가 없었단다”
어머니께 열 마리는 가져다 드려야지
백수는 하셔야 할 텐데……
그런데 누가 이 생선을 보냈을까?
얼마 전 딸년에게 카톡을 보낸 생각이 난다
우리 딸 참 효녀야!
부끄러운지 역설법 쓰지 말라고 하더니
최고급 한우와 부산어묵, 반시(盤枾)를 보내왔었지
아마도 또 어미 생각을 한게지
확대경을 들이대며 보낸 사람을 찾았다
어!
보낸 사람은 없고 파주 한국출판물류단이라니
머릿속을 쥐가 나도록 굴려보아도
그쪽에서 생선 선물을 보낼만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다
분명히 우리 집 주소와 내 이름이 적혀 있으니
잘못 배달된 것은 아니렷다?
금방 인쇄소에서 나온 듯 잉크도 마르지 않은 것 같은
한국시인 출세작 창간호 스무 권이 얌전히 인사한다
표제 사진이 넓은 바다에서 공중제비하는 청어(靑魚)다
‘한국문인협회·청어’
한국문협 시분과에서 발행한 사화집이군!
청어는 ‘푸를 靑, 말씀 語’ 젊음의 말씀이란 뜻을 지닌 출판사 이름 청어(靑語)
고소를 금치 못하며 한 권을 꺼내 펴보니
내 졸시를 포함해서 214명의 시가 검푸른 은빛으로 청어(靑魚)처럼 퍼덕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