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어머님 전 상서
오늘 팔월 스무닷샛날
아버님 어머님 오셔서 좌정하셨나이까
정성껏 차린 제상입니다
올해도 풍년, 먹음직한 햇과일과 햅쌀로 떡과 메 지어
정성껏 제수 마련했습니다
부모님 음덕으로 이만큼 행복하게 생활한다 믿사오며 감사하옵니다
저희 정성을 거두어 주시매 흡족하게 흠향하소서
제가 시집와서 형님과 함께 부모님 제사 모신지도 어언 45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형님은 소생이 없어 애면글면하던 차
3남매나 둔 제 자식 하나 형님 앞으로 입적하지 않았습니까
그리하여 어머님께서 좋아하시고 안심하고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어머님의 전갈로 일찍 가신 아버님께서도 아실 줄 믿사옵니다
제 작은 자식이 종손이 된 것이지요
다행히 그놈이 결혼하여 아들 형제를 두고
형님 내외께 극진히 효도하는 걸 바라봅니다
아들 며느리 거느리고 손자들 재롱을 보며 흡족해하는
형님께 큰일을 했다는 자부심을 느낍니다
딸년도 시집가서 남매를 두고 나름대로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큰 아들놈은 사십 줄에 들어선 지가 몇 해인데 장가갈 생각을 안 합니다
아버님 어머님 이 일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적덕지가필유여경(積德之家必有餘慶)이란 말도 있는데
어찌 제게 이런 걱정을 안겨줄까요?
‘인물이 못났는가, 그놈은 빠진 머리털도 버리기가 아까운 놈인데……‘
제 외조모는 92세라는 연세로 앞날을 기약하기 힘들다고
매달 보내드린 용돈을 모아 장가갈 때 주시려 기다리다
이번 한가위 날 그놈 손에 쥐여주시더이다
이제 지치신 것이지요
부디 이 해가 저물기 전에 제 아들놈 좀 굽어살펴주소서
장가가서 저희 부부에게 떡두꺼비 같은 손자 하나 안겨 주도록 도와주소서
내년 제상은 더욱 거하게 차리겠나이다
아버님 어머님 통촉하소서
아버님 기일에
작은 며느리 민문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