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질시루
민문자
고향 집 뒤꼍 장독 옹기종기 서 있는
장독대 한 귀퉁이에
옹기보다 깨지기 쉬운 잿빛 질시루
서 되짜리 닷 되짜리 한 말짜리
온몸으로 품고 있던 너 말짜리 질시루
엎드려 쓰일 날을 기다렸다
물기를 쉽게 걷어 올려 떡 맛이 좋다는 질시루
어머니는 매달 초하루 장독대에
한 사발의 정화수와 백설기시루를 올리셨다
사흘 전부터 대문 앞과 장독대는 황토로 잡귀를 쫓고
가정의 안녕과 자식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손바닥이 불나도록 칠성님께 비셨다
제일 큰 시루는 고두밥 쪄 할아버지 가양주 만들고
늦가을 가을떡 할 때 쓰였지
대들보 성주 님께는 빨간 팥고물 떡을 올려야 된다며
팥알을 고르시던 어머니
겨울이면 질시루에 지푸라기 엮어 구멍을 막고
검은 보자기 씌워 콩나물을 기르셨다
어머니의 사랑에 매달려온 제일 작은 시루 하나
인천시 한 아파트에서 가스불로
한동안 쑥버무리 콩설기 쪄냈는데
그림하는 며느리 · 손녀딸 눈에 들어
화분으로 변신하고 베란다에서
햇빛 바라기 하며 푸른 돈나무를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