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5강 애국가-스피치와 시낭송 문학의 집‧구로 2015. 2. 23. 월
애국가
민문자
지금부터 애국가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애국가는 말 그대로 나라를 사랑하는 노래를 말합니다.
나라마다 국민의 애국심을 고취하고 국가를 대표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국가가 있습니다. 오늘날 불리고 있는 애국가의 노랫말은 외세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던 1907년을 전후하여 조국애와 충성심 그리고 자주 의식을 북돋우기 위하여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그 후 여러 선각자의 손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내용을 담게 되었는데, 이 노랫말에 붙여진 곡조는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이었습니다. 광복 이후 정부 수립 무렵까지도 이 곡조로 불렀답니다.
작사가는 안창호 혹은 윤치호라고 알려졌습니다.
이십여 년 전 아흔아홉 칸 윤보선 전 대통령 사저를 방문했다가 거실벽에 걸린 윤치호 작사 애국가 가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부르고 있는 애국가와 거의 같은 가사였습니다.
윤치호의 애국가 친필 본이 우리나라가 아닌 후손들에 의해 미국 애틀랜타의 에모리대학에 기증되었다고 하니 아마도 내가 본 것은 그 사본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부르고 있는 애국가 작곡자는 해외에서 활동 중이던 안익태였습니다. 1935년에 <애국가>를 작곡하였는데 해외에서 먼저 널리 알려져 불리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현재의 애국가가 정부의 공식 행사에 사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각급 학교의 교과서에도 실리면서 전국적으로 애창되기 시작하였답니다.
우리는 국가나 사회단체 또는 학교에서 큰 행사가 열리면 우선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국민의례로 국기에 경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이 있은 후 행사를 진행합니다. 문인단체는 작고 문인에 대해 묵념도 하지요.
우리가 자랄 때는 애국가 제창은 국경일과 큰 행사에는 4절까지 불렀고 상급학교 진학할 때 음악 실기시험은 애국가 부르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국기 배례만 하고 애국가는 1절만 부르고 심지어는 ‘애국가 생략’이라고 선언하고 행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요즈음도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는 곳은 제가 경험한 바로는 한국현대시인협회 뿐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 문인대표 단체인 한국문인협회장 이취임식에서도 애국가 1절만 부르더라고요.
내가 어릴 때는 학교교정이나 관공서에서는 국경일 뿐 아니라 매일 아침저녁으로 국기 게양식, 하강식이 있고 이때마다 애국가가 널리 울려퍼졌습니다. 그러면 길을 가다가도 그 자리에 서서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애국가를 불렀지요.
행사 때마다 애국가를 생략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세태가 안타깝습니다. 유행가 가사는 잘도 외워 부르면서 애국가는 못 부르는 국민, 이래도 되겠습니까.
우리 함께 애국가를 4절까지 불러봅시다.
지금까지 애국가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안익태 기념재단에서 일부 차용>
애국가
1.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2.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3.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4.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