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강 반성문-스피치와 시낭송 문학의 집·구로 2014. 10.20. 월
반성문
민문자
지금부터 반성문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잘못을 저지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어린이가 성인으로 자라면서 반성문을 한 번도 안 쓰고 자라기는 참 어려울 것입니다. 반성문이란 자신의 말이나 행동에 대하여 잘못이나 부족함을 돌이켜 보며 뉘우치는 마음으로 쓴 글입니다.
어려서는 세상 질서와 규범이 몸에 잘 배지 않아 어른의 꾸중을 들으며 자랍니다. 거듭 잘못을 저지르면 따끔하게 혼을 내면서 반성문을 쓰게 합니다. 반성문은 체벌 대신 마음을 때리는 회초리입니다. 부모님이 반성문을 쓰라고 할 때도 있고 학교 선생님이 반성문을 요구할 때가 있지요. 매일 쓰는 일기장은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깨닫고 심기일전하여 쓰는 반성문 기록장이라 하겠습니다.
저의 가정에서는 아들보다 딸의 반성문이 많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 한 달에 서너 번 이상 쓸 정도로 반성문을 많이 받아내면서 고통스럽게 보내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때 반성문 몇 편을 살펴보니 아이만 잘못한 것이 아니라 어미 노릇을 제대로 현명하게 못 한 점도 있어 마음이 아픕니다. 다음은 딸이 초등학교 때 쓴 반성문입니다.
반성문
나는 오늘 엄마에게 많이 잘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나의 잘 못이 컸지만 엄마 잘못도 컸다고 생각합니다. 엄마는 거짓말을 해서 먹고 싶지 않은 것을 먹였습니다. 내가 신경질이 나서 엄마에게 대들었습니다. 나의 잘못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엄마도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잘못을 호되게 때려서 내가 진정 잘못을 뉘우치게 해준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마음 한구석에는 분이 남아 있습니다. <1983. 5. 27.>
저의 딸은 꺾일지언정 굽히지 않는 고집불통이었던 어린 시절 이런 반성문을 여러 번 썼습니다. 그래도 그럴 때마다 자신의 행동을 뒤돌아보며 마음을 다스리고 성장하여 오늘날 어디 가서나 환영받으며 소통 잘 하고 인간관계가 좋은 생활을 하고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어른도 다른 환경에서 자라 부부로 일생을 살다 보면 다투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과음한다든가, 소비성향이 지나치게 많다든가 하는 등 상대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면 서로 논쟁을 하다가 잘못을 저지른 쪽에게 반성문을 요구하게 됩니다.
저도 남편이 과음으로 인사불성이 되어 돌아온다든가 외박을 하고 온 날은 어김없이 반성문을 받아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 반성문의 효과가 별무하였지만 왜 그랬던지 그 반성문을 받아내서 신주단지처럼 서랍에 보관하곤 했습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 반성문 덕분으로 머리에 흰서리 내리도록 함께 여생을 보내고 있는 듯해서 반성문이 대단한 약 처방이었구나 싶습니다.
가정에서와 마찬가지로 학교에서는 교사가 학생의 잘못을 반성하게 하느라고 반성문을 요구합니다. 자칫 어릴 때 잘못이 누적되어 성인이 되어서도 잘못을 저지르고 사회와 소통을 잘 못할까봐 정상인으로 잘 자라게 하기위해서 반성문을 쓰게 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자녀와 제자가 이 사회의 법과 질서를 잘 지키는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기원하며 일기 쓰기를 권장합니다. 반성문이 곁들여진 일기를 계속적으로 쓴 사람 중에 리더십이 출중하여 사회와 국가의 지도자가 되고, 생각이 깊어 예술인이 된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도 더 보람 있고 발전적인 내일을 위해서 쓰는 그날그날의 반성문이 담긴 일기를 써봅시다.
저는 지금까지 반성문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강은교(姜恩喬, 1945년 12월 13일~) 시인 약력
함경남도 홍원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경기여자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김기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동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동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1968년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순례자의 잠〉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75년 제2회 「한국문학상」, 1992년 제37회 「현대문학상」, 2006년 제18회 「정지용 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허무집》(1971) 《빈자일기》(1977) 《소리집》(창작과비평사, 1982) 《바람노래》(1987)
《오늘도 너를 기다린다》(실천문학사, 1989) 《벽속의 편지》(창작과비평사, 1992)
《어느 별에서의 하루》(창비, 1996) 《등불 하나가 걸어오네》(문학동네, 1999)
《시간은 주머니에 은빛 별 하나 넣고 다녔다》(문학사상사, 2002)
《초록 거미의 사랑》(창비, 2006)
시선집----《풀잎》(민음사, 1974) 《붉은 강》(풀빛, 1984) 《우리가 물이 되어》(1986)
《그대는 깊디 깊은 강》(미래사, 1991)
산문집----《그물 사이로》(1975) 《추억제》(1975) 《도시의 아이들》(1977)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1980) 《누가 풀잎으로 다시 눈뜨랴》(1984)
《잠들면서 참으로 잠들지 못하면서》(한양출판, 1993) ISBN 89-85247-63-8
《허무 수첩》(예전사, 1996)
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사랑법 / 강은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전의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있는 누워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 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너를 사랑한다 / 강은교
의자의 이마가 저렇게 반들반들해진 것을 보게
의자의 다리가 저렇게 흠집 많아진 것을 보게
그땐 그걸 몰랐다
신발들이 저 길을 완성한다는 것을
저 신발의 속가슴을 보게
거무뎅뎅한 그림자 하나 이때껏 거기 쭈구리고 앉아
빛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게
그땐 몰랐다
사과의 뺨이 저렇게 빨간 것은
바람의 허벅지를 만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꽃 속에 꽃이 있는 줄은 몰랐다
일몰의 새떼들,
일출의 목덜미를
핥고 있는 줄을 알았다
꽃 밖에 꽃이 있는 줄 알았다
일출의 눈초리는
일몰의 눈초리를 흘기고 있는 줄 알았다
시계 속에 시간이 있는 줄 알았다
희망 속에 희망이 있는 줄 알았다
아, 그때는 그걸 몰랐다
희망은 절망의 희망인 것을
절망의 방에서 나간 희망의 어깻살은
한없이 통통하다는 것을
너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