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강 스피치와 시낭송 문학의 집‧구로 2014. 6. 30. 월
밥 푸는 순서
민문자
오늘은 밥 푸는 순서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매일 아침, 밥솥을 열고 밥 냄새를 맡으며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밥풀 때의 마음은 저절로 경건해집니다. 식구 중 가장 중요한 사람의 밥주발을 먼저 찾아들고 정성스럽게 주걱으로 밥을 퍼 담습니다. 하루를 책임질 에너지가 아침밥이니까요.
어릴 때 어머니가 밥을 푸시던 모습이 엊그제인 양 자주 그 기억이 떠오릅니다. 제일 먼저 보리밥 가운데 하얗게 올라온 쌀밥을 살살 피운 할아버지 진지를 놋주발에 담고, 아버지와 남동생의 밥그릇에 보리 반, 쌀 반을 섞어 밥을 풉니다. 그다음 깎뚝 썬 고구마를 섞은 보리밥을 저의 밥그릇에 담고 어머니는 제일 나중에 밥주걱으로 솥을 박박 긁어 당신 밥그릇에 담으셨습니다. 그럴라치면 오래된 주걱은 닳아 반쯤 만 남게 된 것이 인상적이었지요.
제일 먼저 어른부터 공경하는 마음으로 밥을 푸고, 남자부터 밥을 펐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남동생의 밥부터 제일 먼저 푸셨습니다. 나의 밥을 제일 먼저 푸는 날은 생일이었습니다. 하얀 쌀밥을 정성스럽게 고봉으로, 미역국도 제일 먼저 퍼주시더라고요.
현대사회에서는 대부분이 부부중심으로 살아갑니다. 요즈음 밥 푸는 순서대로 죽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부부 중에 누구의 밥을 먼저 푸는 것이 좋을까요. 그러면 지금 당신은 누구의 밥부터 풉니까?
저의 남편은 오래전부터 병원을 드나들며 신장투석을 하는 환자입니다. 일주일에 3회는 어김없이 투석하러 병원을 찾아갑니다. 이렇게 몸이 불편한 남편이 나보다는 먼저 가는 것이 자식들에게 덜 짐이 될 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남편의 밥부터 풉니다. 죽음도 함께 하면야 좋지만 부부가 살다가 한쪽은 분명히 먼저 갑니다. 힘든 이야기지만 끝까지 남편을 보살펴주고 가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남편의 밥은 보기 좋게 정성을 다해서 공들여 푸고 나의 밥은 글겡이밥으로 만족합니다.
오늘은 밥 푸는 순서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한분순 시조시인, 소설가 약력
한분순(1943년 12월 15일~, 충청북도 음성 출생) 서라벌예술대학 졸업 1964년 동광에 <생명>과 <어머니> 시 당선, 197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옥적> 당선으로 데뷔하였다.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장.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 회장. 한국소설가협회 이사. .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윤리위원
조선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심사위원. 중앙일보 중앙시조대상 및 제20회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심사위원. 《시와세계》제2회 이상시 문학상 심사위원. 이호우 이영도 시조문학상 심사위원장.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소설문학》편집국장 겸 출판편집국 주간, 서울신문 출판편집국 퀸 편집부장·출판편집국 국장, 세계일보 편집국 문화부장 겸 부국장, 스포츠투데이신문 편집국(문화)국장 역임
한국시조문학상, 정운시조문학상, 한국시조시인협회상, 가람시조문학상, 한국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외
시조집『실내악을 위한 주제』,『서울 한낮』,『소녀』등
장편소설『흑장미』산문집『한줄기 사랑으로 네 가슴에』,『어느 날 문득 사랑 앞에서』
푸른 묵언 / 한분순
해진 가슴 안으로
날갯짓
쓸려 왔다 가고
아가미 파도에 실려
제풀에 목쉰 하루
속 깊이
접어둔 말들
어느 결에 풀릴까.
수시로 불러봐도
꽂히는 건
내 소리
몰려왔다 몰려가는
텅빈 마음결 따라
무리져 실려 오는 것
먼 곳의
청빛 묵언
안부 한 잎 / 한분순
누가 심은
고백일까
찾는 이
하도 없어
제풀에 시든다
바람의
농弄에도 웃지 못해
종일 흔드는 애태움.
저물 듯 오시는 이 / 한분순 作
저물 듯 오시는 이
늘
섧은
눈빛이네
엉겅퀴 풀어놓고
시름으로
지새는
밤은
봄벼랑
무너지는 소리
가슴 하나 깔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