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강 스피치와 시낭송 문학의 집‧구로 2013. 12. 30. 월
시련과 축복
민문자
오늘은 시련과 축복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뜻하지 않게 불행이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부모를 잃는다든지, 몸에 병이 든다든지, 진학에 실패한다든지, 실연한다든지, 사업에 실패한다든지 여러 가지 힘든 일에 부닥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그저 주저앉아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역경에서도 계속 자신을 채찍질하며 의욕을 잃지 않고 일어서야 합니다. 최선의 결과는 역경에서 나오는 수가 많습니다.
시련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세상에 상처 없는 사람, 실패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시련이든 이겨내야 합니다. 이겨내는 자만이 축복받을 수 있습니다.
이십여 년 전에 저희 부부는 잘나가던 건설 사업이 도산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막막해서 그저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때 적자투성이 작은 신문사가 우리에게 남겨져 있었습니다. 제가 맡아서 경영하려고 안간힘으로 용기를 내어 언어문화원과 모 대학 최고경영자과정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때 주경야독을 하면서 사람이 자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회사를 위해서는 자존심 상하는 것을 참으며 영업을 다녔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성과가 나타나고 나름대로 보람을 느꼈습니다. 마음을 비우니 작은 소득에도 감사하게 되었지요. 그 후 우수 직원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제가 하고 싶었던 문학공부를 하였습니다.
계속 평생교육 개념으로 공부하다 보니 글 쓰는 취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와 수필을 쓰고 서예를 공부하며 시낭송도 하게 되었습니다. 훌륭한 문사가 특강을 한다 하면 어디든 찾아가 듣고 메모하고 정리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동안 배움의 한 자락을 후배들에게 펼치며 봉사할 수 있어서 보람과 행복을 느낍니다. 결국 건설사업의 도산에 대한 시련 극복이 오늘의 축복을 가져온 것입니다.
저는 지금 문학을 공부하고 예술세계와 가까이하며 생활할 수 있는 것이 큰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이십여 년 전의 사업실패가 없었으면 아마도 제가 문학을 영원히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는 상실과 실패를 승리와 축복으로 바꿀 수 있는 위대한 힘과 나도 잘 모르는 놀라운 능력이 내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발견하고, 체득하고, 힘을 얻어 마침내 승리하여 축복받는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시련과 축복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문학 예술」(1956.11)
눈물
김현승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김현승 시초>
고독한 이유
김현승
고독은 정직하다.
고독은 신(神)을 만들지 않고
고독은 무한의 누룩으로
부풀지 않는다.
고독은 자유다.
고독은 군중 속에 갇히지 않고
고독은 군중의 술을 마시지도 않는다.
고독은 마침내 목적이다.
고독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고독은 목적 밖의 목적이다.
목적 위의 목적이다.
◉ 김현승의 약력
1913년 2월 28일 ~ 1975년
전남 광주 출생, 호는 南風또는 茶兄 1934년 등장
1937년 숭실전문 문과졸업
숭실중 교사, 조선대 교수 (1951~59)
숭실대 교수 (1960~75년) 및 동 물리대 학장
한국문협 부회장
시집 -김현승 시초 (1957), 옹호자의 노래 (1963), 견고한 고독 (1968), 절대 고독 외 일제말 10여년간 붓을 꺾음, 광복후 다시 발표 제1회 전남 문화상(1955) 서울시 문화상 (1974)
詩세계는 지적이고 건강한 생리를 지녔다. 광주에서 주로 활동하며 수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가을의 시인', '고독의 시인'으로 불리며 지성적 감성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독교 정신을 가진 주지적 시인, 광주 무등산에 시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