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강 스피치와 시낭송 문학의 집‧구로 2013. 12. 23. 월
기도
오늘은 기도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가끔 신과 같은 절대적인 존재에게 자신이 간절하게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도록 경건한 마음으로 두 손 모아 빌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원이 이루어졌을 때 감사하다고, 고맙다고 기도합니다.
저는 얼마 전부터 아침에 눈을 뜨면 스트레칭을 하고 일어나서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이렇게 행복한 마음으로 오늘을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한 가지 소원은 저의 노총각 아들, 올해가 가기 전에 꼭 짝을 찾게 해주십시오.”
또 여러분에게도 들려준 저의 대표 시 <그대의 향기>가 음표를 달고 춤을 추게 된 것이 얼마나 행복했던지 감사기도를 했지요.
이뿐만 아니라 제가 칠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괴로울 때나 슬플 때 수없이 절대자에게 매달리며 기도했습니다.
또한 가슴이 터질 정도로 기쁜 일이 있을 때, 꼭 이루고자 하던 일이 성취되었을 때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를 연발하며 감사기도를 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도 저와 대동소이하게 기도를 할 줄 믿습니다.
저에게는 5년째 암 투병으로 고생하는 벗이 안양에 살고 있습니다. 자주 찾아가 즐겁게 해주지 못해서 늘 마음으로 미안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12일에는 좋아하는 호박떡과 홍시를 사가지고 가서 아름다운 소프라노 <그대의 향기>를 들려주며 위로하고 돌아오며 간절한 마음으로 회복되기를 기도했습니다.
기도 / 민문자
하늘에 계신 신이시여
저의 기도를 들어주세요
마음이 예쁜 벗 하나가 있습니다
그녀가 지금 몹시 아파합니다
절망하고 있습니다
신이시여
그녀의 고통을 사르시고
희망을 안겨주세요
얼른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아주지 못한 죄
간곡히 참회합니다
저희가 지은 죄는 덮어주시고
그녀의 아름다운 마음 예쁘게 받아주소서
벗과 저의 소망을 들어주소서
저는 오늘 기도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사슴 / 노천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내곤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데 산을 쳐다본다 <1938년>
이름없는 여인이 되어 / 노천명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 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삼밭에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소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
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나은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소<1953>
장날 / 노천명
대추 밤을 돈사야 추석을 차렸다.
20리를 걸어 열하룻 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
막내딸 이쁜이는 대추를 안 준다고 울었다
송편 같은 반달이 싸릿문 위에 돋고
건너편 성황당 사시나무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저녁
나귀 방울에 지껄이는 소리가 고개를 넘어 가차워지면
이쁜이보다 삽살개가 먼저 마중을 나갔다<여성 1939>
노천명(盧天命-1911~1957) 시인은〈사슴〉을 비롯한 고독과 애수가 깃든 시들을 썼다. 초명은 기선(基善). 시인은 어릴 때 홍역을 앓아 사경을 헤매다 다시 소생했는데 이 때문에 이름을 '천명(天命)'으로 바꾸었다. 하늘로부터 다시 받은 목숨으로 천수(天壽)를 누리라는 뜻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평생 독신으로 살다 1957년 타계했다. 1920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서울로 이사하여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34년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그해 조선중앙일보 학예부 기자가 되었다.
그녀가 자기중심적인 내면세계로 빠져들려는 모습은 이후 일관된 시세계를 이루었다. 남색 치마, 흰 저고리를 즐겨 입고 약간의 골동취미도 갖고 있었으며, 다른 여성 시인들과 구분되는 명확한 시세계를 갖고 있었다.
1958년 유작시집으로 〈사슴의 노래〉를 펴냈는데 여기에 실린 〈유월의 언덕〉에서는 〈사슴〉에서보다 훨씬 짙은 고독과 애수가 엿보인다. 그녀의 시는 고독을 극복하려는 의지보다 그곳에 빠져들려는 모습이 더욱 강하여 절망과 허무에 이르는 길이 되고 말았으며, 그것은 죽기 직전에 쓴 시 〈나에게 레몬을〉에 잘 나타나 있다. 수필집으로 〈산딸기〉(1948), 저서로 〈여성서간문독본〉(1955)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