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강 스피치와 시낭송 문학의 집‧구로 2013. 11. 18. 월
인사
오늘은 인사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수많은 사람과 만납니다. 그 수많은 사람을 마주 대하거나 헤어질 때에 각기 다른 인사말이나 행동으로 예를 표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에 걸맞게 인사를 하게 되지요.
어떤 사람에게는 정중하게, 또 어떤 사람에게는 밝은 미소로 포옹까지, 어떤 사람에게는 눈 인사로 미소만, 또 고개만 까딱하기도 합니다. 인사말도 때와 장소에 따라 천차만별이지요.
처음 만나는 사람끼리는 서로 이름을 밝히며 자기를 소개합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 입은 은혜를 갚거나 치하할 일 따위에 대하여 예의를 차릴 때에는 그 상황에 맞는 말이나 행동을 합니다.
때로는 보기 싫은 사람을 만나면 못 본 척 고개를 돌리기도 하고, 눈도 안 마주치고 건성으로 인사를 받는 경우는 불쾌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인사는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사를 할 때에는 밝은 표정으로 상대를 기쁘게 해 주어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인사를 아주 잘하는 청년이 있습니다. 그는 동네 할머니를 만나면 하루 열 번이면 열 번 인사합니다.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어깨를 감싸 안고 두어 번 꾹꾹 눌러드리며 인사를 합니다. 자라서 사회에 나가서도 동료나 상사에게 언제나 밝은 표정으로 기쁜말 한마디를 곁들여 먼저 인사합니다.
때로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상대방의 어려운 점을 해결해 주기도 합니다. 직장에서도 남보다 더 부지런하고 인사 씨가 밝은 이 청년의 인기가 제일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이 청년은 인사를 잘해서 반드시 성공할 줄 믿습니다.
문학기행으로 몇 년 전 춘천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고려의 개국공신 신숭겸 묘역에서 만난 한 청년을 때때로 잊을 수가 없어 그때 그 장면을 떠올리곤 합니다.
준수하게 잘 생긴 청년이 홀로 신숭겸 장군을 찾아와 정중하게 참배하는 모습, 의아하여 물어보니 내일 군에 입대하게 되어 조상님을 찾아뵙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갸륵한 마음입니까? 저는 이 청년이 반드시 크게 될 인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쯤 제대하고 사회에 복귀하여 큰 인물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세상에 조상을 숭모하는 정신으로 인사예절이 깍듯한 그 모습을 본 이후 신 씨에 대한 저의 생각이 남달라졌습니다. 신 씨 성을 가진 분들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는 사람들이 만나면 서로
“진지 잡수셨습니까?” “밤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이런 인사였습니다.
현재는 어떻습니까?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안녕!”
인사말도 시대를 반영 하는가 봅니다.
먹을 것이 없어 걱정하던 때, 연탄가스 중독 사망자 ○명으로 연일 신문지면을 장식하던 때로부터 해방되어 부자가 된 우리나라의 인사말이 많이 밝아졌습니다.
우리 모두 더욱 친절하게 밝은 표정으로 인사하며 지냅시다.
오늘은 인사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설야(雪夜)
김광균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야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취인 양 흰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女人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을 하고
흰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시집 「와사등」(1939)> <조선일보, 1938.1.8>
와사등(瓦斯登)
김광균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
내 호올로 어딜 가라는 슬픈 신호(信號)냐.
긴-여름 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
늘어선 고층 창백한 묘석(墓石)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夜景)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클어진 채
사념(思念) 벙어리 되여 입을 다물다.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
까닭도 없이 눈물겹구나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여
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고 왔기에
기일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기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조선일보', 1939.6.3, 시집 '와사등', 1939>
추일서정(秋日序情)
김광균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 열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나무의 근골(근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 인 채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 저 쪽에
고독한 반원을 긋고 잠기어 간다.
<인문평론 1940>
◉김광균 金光均 [1914.1.19.~1993.11.23] 경기 개성 출생. 송도상고 졸업.
《중앙일보》에 시 《가는 누님》(1926)을 발표한 뒤《동아일보》에 시 《병》(1929) 《야경차(夜警車)》(1930) 등을 발표했으며, 《시인부락》(1936) 동인, 《자오선(子午線)》(1937) 동인으로 활동했다. T.E.흄, E.파운드, T.S.엘리엇 등 영국 주지주의 시운동을 도입 소개한 김기림(金起林)의 이론과 시작에 영향을 받고 시는 회화(繪畵)다라는 모더니즘의 시론을 실천했다. 도시적 소재와 공감각적(共感覺的) 이미지를 즐겨 사용했으며, 이미지의 공간적인 조형(造形)을 시도한 점 등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시집으로 《와사등(瓦斯燈)》(1939) 《기항지(寄港地)》(1947)가 있다. 6 ․25전쟁 후에는 실업계에 투신, 문단과는 거의 인연을 끊었으며, 제2시집 이후 10여 년 만에 문단 고별 시집 《황혼가(黃昏歌)》(1969)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