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치유하는 씨앗이 되고 싶다
며칠 있으면 설날이다. 마음 설레며 설날 이전에 나올 제5 시집 『금혼식』을 기다린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라고 온 세상이 우울했지만 십여 년 만에 시집을 내놓고 전국에 흩어져있는 지인들에게 문안 인사 겸해서, 그 시집 『꽃시』를 우송하느라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평년보다 행복감을 많이 누렸다. 세필로 한 사람 한 사람 주소를 적는 재미와 우송할 시집을 양손에 들고 등짐까지 지고 무거운 줄도 모르고 우체국을 향하여 걷던 걸음은 뿌듯한 마음이었다.
어느덧 77 희수喜壽와 금혼식金婚式을 맞고 보니 바쁜 마음은 촌각도 허술하게 쓰면 안 되겠다는 2020년 한 해 자각의 소산으로 한 권의 시집 원고를 다시 내놓았다. 그때그때 솟아나는 감정을 일기처럼 개발새발 날 것 그대로 일 년간 엮은 시집이다.
이제 팔순을 바라보는 우리 세대는 일본으로부터 해방되기 전에 태어나서 어린 나이에 6·25전쟁을 겪었다. 우리나라 전체가 겪었던 피압박의 생활과 전쟁의 후유증은 가난과 질병의 도가니에서 굶어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일곱 살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던 세상에 그래도 농촌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아침밥 저녁 죽으로 끼니는 이을 수 있었다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때의 경험은 아침저녁으로 깡통을 들고 대문 앞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주눅 든 목소리로 “밥 좀 주세요!”라고 하면서 구걸하던 내 또래 아이의 불쌍해 보이던 모습과, 어른들이 뭐니 뭐니 해도 배고픈 설움이 제일이라는 말씀이, 나의 뇌리 한구석에 저장되었다가 가끔 떠오른다.
또 우리 밭에 가는 길가에서 바라다보이던 산마루턱의 뗏집의 모습도 가끔 떠오른다. 집이라고 할 수도 없는 형태의 야트막하던 외딴집에 남루한 차림의 아이 셋이나 딸린 부부가 살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축의 우리만도 못하던 집이었다.
이런 환경이었던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경제발전과 문화 융성으로 나라와 개인이 모두 부자가 되어 최소한 밥걱정은 하지 않게 되었다. 지난해에는 전 국민이 정부 지원으로 쌀 사고 맛 좋은 쇠고기 실컷 먹어본 경험도 했다. 김일성이 그토록 원하던 이밥에 고깃국을 대한민국은 벌써 실현한 것이고, 이제는 너무 잘 먹는 식습관으로 효과적인 체중감량을 위해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21세기에 북한의 현실은 아직도 우리가 반세기 이전에 겪었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찾아와 대한민국에 정착한 탈북민이 3만3천여 명이나 된다지 않는가.
사람이 의식주가 해결되면 다음은 사회에 적응하는데 필요한 지식, 알고 싶은 욕구, 공부하고 싶은 욕구가 일어난다. 최소한의 의식주는 정부에서 지원하지만 교육에 대해서는 정부의 도움이 미미한 것 같다. 우리 동네에는 <남북 사랑학교>라는 대안학교가 있다.
대한민국에 적응하기 위한 대학 진학할 학생들과 취업 준비생들의 희망봉이라 할까?
<남북 사랑학교>의 이메일을 2년 전부터 받고 있다. 후원자를 원하는 메일이었지만 아무런 재산이 없이 자식의 도움으로 노후생활을 하는 나로서는 가슴 아픈 번민으로 지난해에 졸업식에 참가하였다. 지난해 제3회 졸업생 12명에게 각각 정성 어린 격려의 말과 함께 책 한 권은 사 볼 수 있도록 5만 원씩 60만 원을 건네면서 그들의 소망을 이루는데 작은 씨알이 되기를 빌었다.
올해 2021년 제4회 졸업식은 엊그제 지나갔다. 다행히 지난해 12월 29일 <한국현대시>가 『꽃시』로 나에게 2020년 작품상과 상금 100만 원을 안겨 주어서 큰 걱정 없이 졸업식 날 찾아갈 수 있었다. 이번 제4회 졸업생 10명에게 나의 아름다운 시집 『꽃시』와 함께 전원 10만 원씩의 격려금을 줄 수 있었다. 책 두 권씩은 충분히 살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아침에 그 졸업생 중의 한 명인 경인 교육대학에 입학할 학생에게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받았다.
“선생님께서 이번 졸업식 날 코로나 감염병의 불편함도 마다하시고 졸업식 현장을 방문해 주시고 용기와 사랑을 더 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많이 감동 했고 사랑과 헌신에 대하여 다시 한번 배우게 되었습니다. 저도 자신만을 위하는 삶이 아니라 나눌 줄 아는 삶이 되도록 노력하며, 사회의 구성원으로 온전히 준비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삶이 되겠습니다. 선생님의 건강과 가정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모란봉 클럽>과 <이제 만나러 갑시다>의 영상을 통해서 우리는 그들이 얼마나 힘든 역경을 이기고 대한민국에 찾아왔는가를 알고 있다. 우리는 내 나라인 이 땅에서 부모 형제의 따뜻한 배려 속에서 태어나고 성장하여 자유롭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데, 혈혈단신으로 대한민국에 와서 그들은 의지할 곳 없는 현실에 얼마나 막막하겠는가. 어려운 환경을 딛고 그들이 꿈꾸는 대학 생활에, 또는 취업 준비에 이 작은 나눔의 씨가 북한에서, 그리고 탈북과정을 겪으면서 얻은 상처가 치유되고 희망의 씨로 펄펄 자라서 좋은 사회인으로 영글기를 간절히 바란다. <월간 『한국수필』 2021. 4월호>
♣ 민문자 약력
•《한국수필》(2003), 《서울문학》詩(2004) 등단
• 수필집『인생의 등불』
• 칼럼집 『인생에 리허설은 없다』 『아름다운 서정가곡 태극기』
• 부부시집 :『반려자』『꽃바람』
• 시집 :『시인공화국』『독신주의』『공작새 병풍』『꽃시』『금혼식』
• 한국현대시 작품상 수상(2020)
• 이메일 : mjmin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