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금혼식이 눈앞에 민문자
우리 인생은 울고 왔다가 주변을 울리며 세상을 하직합니다. 이왕 세상에 태어났으면 오래 잘 살 일입니다. 인생은 사람마다 모양새가 제각각이지요. 가끔 각별히 지냈던 다섯 명의 벗들과 지냈던 추억을 되돌아보면서 너무 일찍 떠나서 이렇게 발전되고 풍요로운 세상을 함께 즐기지 못함을 애석하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 다섯 명은 모두 천사 같은 성품을 지녔었는데 지금도 내 곁에 있다면 얼마나 보람차고 즐거운 시간을 많이 함께 보내고 있을까요. 오래 살아야, 하고 싶은 일을 할 시간을 벌지 않겠어요?
성공한 노인들을 보면 강한 자가 아니라 자기 분야에 잘 적응하여 오래 살아남은 분들입니다. 그 저력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아마도 사력을 다하여 세상을 살아왔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사력을 다한다는 것은 능력, 매력, 노력, 협력을 다 발휘하면서 건강을 유지한 것이지요. 자신의 타고난 능력에 최선을 다하는 노력파에 매력을 느끼니 주위에서 협력해 주는 좋은 인연도 많이 맺어 자신의 인생을 잘 가꾼 것이 아닐까요?
우리 부부는 올해 12월이면 금혼식을 맞이하게 됩니다. 50년, 반세기는 짧은 기간이 아니지요. 결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결정을 고민하던 때, 노총각 노처녀가 세월에 쫓기듯 연말에 결혼식을 올린 것이 엊그제 같은데 우리도 어느새 팔순 노인이 됩니다.
1970년 8월 초 유난히 비대한 몸집을 가진 남자를 처음 만났을 때 매력적인 목소리에는 마음이 끌렸지만 과연 오래도록 나와 함께 살아갈 수가 있을까 의심을 했었지요. 일찍 아버지를 여읜 나는 ‘딸은 부모 닮는다’는 속설과 초임 교사 시절 같은 학교 중년 남성 교사가 내 손금을 보고 50대에 과부가 될 것이라고 예언해 주던 말이 내 뒤통수를 오래도록 잡아당기고 있어 늘 불안했습니다.
아무튼 인생은 오래 살고 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0년 전에, 20년 전에 세상을 하직한 벗들을 안타까워하면서 이렇게 발전된 좋은 세상에서 그들이 누리지 못했던 혜택을 받으며 살고 있는 내가 얼마나 행복한가 뒤돌아보게 합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을 여러 번 실감하고 우리 부부는 주경야독도 하면서 인생을 가꾸어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수필가 입네, 시인 입네’하면서 자신의 수필집과 시집도 간직할 수가 있게 되었네요. 먼저 세상 하직한 친구들보다 오래 산 덕이지요.
남편에게 어떤 매력이 있었던지 서른 살 노총각에게 스물일곱 노처녀는 하루건너 그의 사무실 앞에서 기다리곤 했었지요. 스물다섯 번 만나는 날 약혼식을 하고 마흔 번째 만나는 날 그해 12월 26일 결혼식을 했습니다. 결혼기념일이면 해마다 축하 케이크를 사 오던 남편이 이제는 무심코 지나칠 때도 있고 달랑 차 한 봉지 사 올 때도 있었지요.
금혼식을 기대하며 지난 세월을 뒤돌아보면 우리 부부의 덕목은 신뢰가 바탕이 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것 하나는 튼튼했다고 자부합니다. 모든 걸 서로 믿고 있으니 용케도 50년을 버티어 왔다고 생각해요. 어찌 나의 모든 것이 그의 마음에 다 들었겠어요. 나 또한 그가 내 마음에 안들 때도 많았지요. 이리 오래 살다 보니 우린 미운 정 고운 정이 우리도 모르게 스며든 것 같습니다.
첫째 남편이 고마운 것은 ‘과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게 지금까지 살아준 것입니다. 12년째 혈액 투석 중이면서도 자신의 건강관리를 잘하고 있는 것이 고맙습니다. 둘째 제가 하고 싶은 일이면 적극 후원해 주고 믿어주는 점 늘 고맙게 생각합니다. 문학기행이라고 며칠씩 집을 비우거나 여러 행사 나들이를 할 때는 밖에서 외식을 하는 불편이 있어도 쾌히 허락해 주어 마음으로 늘 고맙게 생각합니다.
결혼초에 ‘여성중앙’이나 ‘여원’ 등 여성 잡지와 ‘육아일기’를 사다 주던 일이 되돌아보면 사랑의 표현이었던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스웨터나 블라우스 신상품을 사 오면 나는 집에 있는 사람이라고 학교 다니는 동생에게 주었는데 그때는 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도 사랑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시집 쪽 보다 친정 쪽 집안이 번족합니다. 맏사위인 남편은 나의 고모님 숙모님과 사촌들에게도 퍽 따뜻하게 신경을 많이 써 주었지요. 그때그때 말이라도 천량 빚을 갚을 걸 그랬어요.
100세 시대라지만 듣기 좋은 목소리였던 남편도 짱짱한 목소리를 지녔던 나도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는 것만도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조심조심 황혼 인생을 걷습니다. 이해도 절반이 지났네요. 세월의 흐름은 급류, 금혼식에 멋진 케이크를 누가 사다 줄까 점을 쳐 보며 기대해 봅니다. (2020. 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