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하룻밤 꿈처럼 흘렀다. 가을 햇볕이 쨍쨍한 날 바깥마당에 멍석 여러 개가 펼쳐져 있었다. 스물다섯 엄마는 고무래로 벼를 고루고루 펼쳐 널고 있다가, 마당 한편 둥구미 안에서 흔들흔들 몸을 움직이며 깨소금 비빔밥을 먹던 다섯 살 내게 큰소리로 외치셨다.
“흔들지 마라, 뒤집힐라!” 아직도 내 귀청을 울리는 엄마의 젊은 목소리 어제 낮처럼 생생하다.
그 후 우리 마을에서는 처음으로 중학교 여학생이 되어 아침마다 등교하는 모습을 내심 무척 자랑스러우셨는지, 산마루 너머로 내 모습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시던 어머니셨다. 황새라는 별명을 가진 허약한 다리로 6㎞를 등하교를 하다가 처음으로 생긴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던 어렵던 시절, 수학여행도 겨울 코트와 맞바꾸고 못내 서운해 하던 때도 엊그제 같다.
그동안 열다섯 살에 아버지를 여읜 사 남매의 맏이로 제대로 딸 노릇 누나 노릇, 언니 노릇도 못했는데 어머니는 어느새 백수가 눈앞이시다. 따라서 올해 너도 희수가 되었다고 2020년 달력이 은근히 눈짓을 한다.
아버지 안 계신 것이 무슨 죄인 양 늘 기죽은 모습으로 우울하게 보낸 뒤에 다행히 아버지처럼 이끌어주는 배우자를 만나게 되면서부터 평생을 공부하며 살아야 한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흐르고 보니 남 앞에서는 말 한마디 못하던 소극적이던 성격이 나이 들수록 내 안에서 망설이던 자신감을 곧추세울 수가 있었다. 참 자랑스러운 세월이었다. 사십 대 이후 늘 배움터를 찾아 여러 훌륭한 스승과 동문들을 만나게 되니 자연히 자존감을 회복할 수가 있었다. 둔재 중의 둔재가 “계속은 힘이다”라는 말만 믿고 여기까지 달려온 것이다.
늦은 나이에 수필과 시 공부를 하고 글씨와 문인화 공부를 하다 보니 도낏자루가 다 썩어 버렸다. 이룬 것은 없어도 이제껏 공부해오던 과정이 소중한 행복의 시간이었다. 좋은 선생님을 여러분 모실 수 있어 행복했다. 오빠 같은, 언니 같은 선배와 동생 같은, 딸 같은 벗을 많이 사귈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나의 지론은 약속은 꼭 지킨다는 틀림없는 사람이라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내는 일이었다. 그것은 나의 성격이고 나의 장점이었다. 이것이 나를 현재 내 안의 행복감을 만끽하는 결과를 가져다주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그날그날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면서 산다. 그러다 보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최선을 다하면 80%는 이루어진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요사이 나는 무척 행복하다. 남이 볼 때 경제적으로 넉넉한 것도 아니고 병든 남편을 모시는 주제에 무엇이 그리 행복하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참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 97세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는 효자효부 남동생 내외와 어머니께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효녀 여동생 둘이나 있어 우애롭고, 자식들은 나를 굶기지 않으니 이만하면 행복하지 않은가. 내 나이에 때때로 소통할 수 있는 어머니가 계시다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이고 자랑스럽다.
12년째 혈액투석을 하는 가장은 본인이야 무척 괴롭겠지만 그런대로 일주일에 3회씩 병원을 오가며 건강관리 잘하고 있다. 우리 집에 배달되는 수많은 문학 서적을 섭렵하면서 아내의 바깥나들이 행사에도 거부감 없이 성원해 주는 편이니 이 또한 행복이다. 지난해 가을 막내 여동생과 함께 여행하고 룸메이트로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도 또한 소소한 행복이었다.
여기저기 그동안 배움터를 찾아서 살다 보니 여러 단체의 회원이 되어 있다. 그중에서 시문학과 시낭송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그 회원 역할을 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최선을 다하는 마음으로 참석한다. 뿐만 아니라 더 많은 회원이 참석하도록 누가 부탁하지도 않지만 몇몇 사람에게는 일일이 전화를 걸어 함께 참석하자고 권유를 한다. 그러면 대부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나의 의견에 적극 호응을 해 주니 이 아니 기쁜 일인가? 신뢰를 한다는 것 아닌가.
그래서 행복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몇 년 전부터 여름이면 두 군데 문학회에서 여름 시인학교와 문학기행에 십여 명씩 함께 참여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 보니 지난해 <구마루 무지개> 송년회에도 20명이 참석하여 한 해를 무척 보람 있는 해로 마무리하였다. <구마루 무지개>는 내가 이끄는 시낭송회로 매달 둘째 토요일 5시 구로 예술극장 무대에서 시낭송도 하고 가곡 감상도 하는 그룹이다.
2013년부터이니 이 또한 적지 않은 세월 기쁨의 시간이었다. 올해는 5월에 청주에서 제1회 대한민국 시인축제가 1박 2일 열린다고 하는데, 여기도 우리 그룹에서 대형버스를 가득 채울45명이 참석하겠다고 등록하였다. 일일이 전화를 건 소득이다. 내 고향을 빛내는 행사에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으로 시간을 많이 제공하였다. 여기에 대회장은 나의 시에 박이제 작곡가가 작곡한 가곡 <무심천 꿈길>을 오프닝 행사에 부르도록 지정해 주었다. 청주여고 후배 노태숙 성악가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으려니 이 또한 행복한 일이다.
2009년 두 번째 부부 시집과 2010년 첫 수필집 <인생의 등불>을 내놓고 시라고 써놓은 것을 갈무리를 못했다. 창고에서 울고 있던 시 나부랭이들을 간추려보니 4권의 시집이 되었다. 큰 마음먹고 정리해서 십여 년 만에 <소정 민문자 제1시집, 제2시집, 제3시집, 제4시집> 네 권의 시집이 한꺼번에 곧 나온다. 이 또한 내 마음을 기쁘게 하는 일이다. 이렇게 요즈음 나는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산다. (2020.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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