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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왕비의 신발을 설명하는 황규형(94․해설사)씨 |
9월 29일 국립공주박물관을 방문하여 이 박물관의 역사와 내력, 보관된 문화재 등에 대한 것을 알아보았다.
해설을 맡은 안내자는 황규형(94) 씨다. 그는 65세에 직장을 정년퇴임을 하고 이 박물관에 봉사자로 올해까지 30년간을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일본인 관광객이 오면 혼자서 안내를 다 맡는다고 한다. 그의 설명을 들으며 국립 공주박물관을 돌아봤다. 그는 이 박물관의 역사를 생생하게 자기의 삶의 과정과 관련지어 설명했다.
“이 국립공주박물관은 지역의 웅진백제문화를 보존하고자 하는 주민들이 뜻을 모은 ‘공주고적보존희’를 모태로 출발하여 1940년 공주시 중동에 ‘공주박물관’이란 이름으로 개관되었고, 1945년 격상하여 국립박물관이 되었습니다."
이 박물관의 중요 유물과 역할에 대해서도 또렷하게 설명했다.
“이곳에는 1971년 공주시 송산리 고분군에서 발굴 조사된 무령왕릉과 대전 충남 지역에서 출토된 국보 18점을 포함한 4만 점의 문화재를 수집 보관하고 있습니다. 학술적 가치가 높은 중요 유물은 상설 전시와 특별 전시를 통해 관람객이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매년 다양한 주제의 특별전을 개최하여 우리의 문화를 국내외에 널리 소개하며 지금도 발굴조사와 국가문화재 조사 등을 지속해서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는 스크린(screen)으로 사진을 보며 설명을 한 후 다시 전시실을 향해 앞서 걸었다. 무령왕릉실을 제일 먼저 찾아갔다.
“무령왕릉실은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문화재를 전시하는 공간입니다. 1971년 발굴 조사된 무령왕릉에서는 108종 총 4,6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어 전시되고 있습니다. 무령왕 왕비가 사용했다는 화려한 금 은제 장식품을 비롯하여 왕릉을 지키던 석수, 무령왕의 이름을 적은 지석과 각종 금속제품, 중국 도자기, 옥 유리구슬 등 전시된 유물들을 자세히 볼 수가 있습니다. 저 왕비의 신발은 왕의 신발과 크기나 모양은 매우 유사하지만, 세부 무늬와 재료에서 많은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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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무령왕 왕비가 사용했던 신발 |
우리 일행은 전시실 내에 있는 유물들을 일일이 살펴보며 안내하는 94세 해설사의 뒤를 초등학생이 된 기분으로 졸졸 따라 다녔다.
설명하시는 모습이 참으로 진지하고 멋있다고 다들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가 설명대로 자세히 드려다 보니 안쪽의 금동 판에는 별다른 무늬나 장식이 없지만, 바깥쪽에 투조(透彫) 금동 판은 육각무늬로 구획을 하고 그 안에 봉화 무늬 등을 장식해 화려하게 꾸며놓았다.
왕비 신발의 두 축 일부가 유실된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최근 수년간의 정리과정에서 나머지 파편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왕비의 금동제 신발은 투박하였고 겉은 아름답지만, 바닥에 9개의 못이 박혀 있었다. 표면에 육각무늬가 있고 그 안에 꽃잎무늬를 맞새김 하거나 점줄로 장식된 화려했다.
황규형 씨의 건강과 일에 대한 정열이 충만해 있음에 놀라며 그의 전직과 식구, 평소 하는 일이 궁금하며 물어보았다.
- 여기 박물관에서 봉사활동을 하기 전에 무슨 일을 하셨으며 식구들과는 어떻게 지내시고 계신가요?
“오랫동안 교직에 있었지요. 충남 장항초등학교에 있다가 공주 정안으로 전근하게 되었고 교육청에서도 10년 넘게 근무했습니다. 제 처는 5년 전에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큰아들 부부와 함께 살지만 제가 하는 일이 많아 혼자서 지내는 시간이 많지요. 저는 클래식 음악 감상을 좋아하고 붓글씨도 쓰고 있으며 한문에도 조예가 깊어 할 일이 많아 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갑니다."
- 역사나 유물 해설을 특별히 즐겨 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유물은 그 시대의 역사를 필설보다 더 정확히 증명합니다. 우리는 누가 뭐래도 문화민족이지요. 우리 문화를 대내외에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일에 더욱 열중할 계획입니다."
실버넷뉴스 이정님 기자 leeruth1@silver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