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서당/이기호
내가 너를 보고
말 못할 것을
여기에 싣고
보낼 수 있으니
아심 찬한 하고
아싸라비아이다
세월은
아승지겁 산 넘어
황혼에 접어들었어도
너에게 가는 편지는
솟구치는 환희심
누가 무어라고 말한들
소용이 있으랴
내 마음의 불꽃인 것을
내 사연은 남겨져
울창한 숲이 되었답니다
너에게 보낸 사랑
버려져 있으나
눈물로 변하여
옥로는 온기로 사뿐
하늘문 열고 날아가
나그네처럼
떠돌다
빛 방울이 되었답니다
내 가슴에 남겨진 사랑
너의 그림자로 변하여
앵돌아져 찾아오는
애타는 마음
시시때때로 빈 가슴에
채워지지 않는 정 접혔나 보다
그 불씨는 다시금 살아난다
어둠의 모닥불처럼
활활 타오르는 불꽃인 것을
아! 어찌 잊으랴
너의 가슴에 불을 밝힌다
누가 와서
타오르는
모닥불을 잡아 줄 것인가
화엄세상 편지를 띄워 보낸다.
작품해설
유한근(문학평론가, 문학박사, 한성대지털대학교 교수)
이 시에서 먼저 주목되는 부분은 시어(글 쓰는 이가 밑줄 친 낱말)들이다. ‘아심 찬한’ ‘아싸라비아’ ‘앵돌
아’와 가은 시인의 고향 말과 ‘아승지겁’ ‘환희심’ ‘옥로’ ‘화엄세상’ 등 불교관련의 시어들이다. 이러한 이색
적인 시어를 통해 연서를 쓰는 시인의 마음에는 특별한 문학적인 전략이 있기 마련이다. 여느 시인과는 다른
사랑의 시를 써보겠다는 것이고 그보다는 고향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향토적이고 속된 고백을 통해서 꾸밈
없는 감정을 전하겠다는 의도와 시인의 사랑이 한 순간의 열정이 아닌 영원불멸의 것이며 인연에 의한 것임
을 표현하고자 하는 전략에 의해서 써지고 있는 것이다. ‘너에게 보낸 사랑이→눈물로 변하여→옥로가 되어
→하늘 문 열고 나아가 나그네처럼 떠돌다→빗방울이 된다’ 는 불교의 연기론적인 시적 형상화는 그 사랑의
영원불멸성을 형상화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표현구조이다.
그 뿐 아니라, 이 시를 통해서 시인 이기호는 사랑을 통해 이세상이 ‘화엄세상’이 되기를 꿈꾸는 몽상의 시인
임을 드러내고 있다. 깨달음을 통해 환희만이 존재하는 아름다운 유토피아의 세상, 그 세상을 시인은 시로도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